대한민국 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께서 저술하시고
1915년 출간된 『한국통사』 서언의 내용은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서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나라는 멸할 수 있으나 역사는 멸할 수가 없다고 하였으니 그것은 나라는 형체이고 역사는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의 형체(形體)는 허물어졌으나 정신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통사(痛史)를 쓴 까닭이다. 정신이 살아있어 멸하지 아니하면 형체는 부활 때가 있을 것이다."(『한국통사』 서언 中)
1915년 박은식 선생의 『한국통사』가 상하이에서 출간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일제는 중추원 산하 조선반도사 편찬위원회(1916년)를 발족해 대응합니다.
이후 조선총독부 산하의 조선사편찬위원회(1922년)로 바뀌었고, 일본 왕의 칙령으로 조선사편수회(1925)가 조직되면서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했습니다.
우리의 상고사를 없애 실존한 역사 단군조선을 단군신화로 만들었으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 '한사군 한반도주둔설', '임나일본부설' 등으로 상고사에 이어 고대사까지 왜곡 조작하면서 일그러진 고대사를 만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중국과 일본은 한국인의 영원한 뿌리이며 무지하고 게으르고 싸움만 하는 한국인에게 큰 은혜를 준 나라라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일제가 조작해 만든 조선 총독부사관은 해방 후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주류가 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우리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단군세기 서문 檀君世紀 序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법도
爲國之道가 莫先於士氣하고 莫急於史學은 何也오 史學이 不明則士氣가 不振하고 士氣가 不振則國本이 搖矣오 政法岐矣니라.
나라를 위하는 길에는 선비의 기개보다 더 앞서는 것이 없고, 사학(史學)보다 더 급한 것이 없음은 무엇 때문인가?
사학이 분명하지 못하면 선비의 기개를 진작시킬 수 없고, 선비의 기개가 진작되지 못하면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나라를 다스리는 법도가 갈라지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중요성
盖史學之法이 可貶者貶하고 可褒者褒하야 衡量人物하고 論診時像하니 莫非標準萬世者也라 斯民之生이 厥惟久矣오 創世條序가 亦加訂證하야 國與史가 竝存하고 人與政이 俱擧하니 皆 自我所先所重者也라.
대개 역사학을 하는 방법이란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可貶者貶), 찬양할 것은 찬양해서 인물을 저울질하여 평가하고, 시대의 모습을 논하여 진단하는 것이니, 만세의 표준이 아닐 수 없스리라.
이 민족의 삶은 참으로 유구하도다. 세상을 개창한 내용(創世條序)이 바르게 밝혀져 있어, 나라와 역사가 같이 존재하며 사람과 정치가 함께 열거되어 있나니, 나라와 역사와 사람과 정치(國, 史, 人, 政), 이 네 가지 모두 우리 자신이 우선시 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바로다.
자아 인식의 중요성
嗚呼라 政猶器하고 人猶道하니 器可離道而存乎며 國猶形하고 史猶魂하니 形可失魂而保乎아.竝修道器者도 我也며 俱衍形魂者도 亦我也니 故로 天下萬事가 先在知我也니라. 然則其欲知 我者인댄 自何而始乎아.
아아! 정치는 그릇과 같고 사람은 도道와 같으니, 그릇이 도道를 떠나서 어찌 존재할 수 있으며, 나라는 형체와 같고 역사는 혼魂과 같으니, 형체가 그 혼魂을 잃고서 어찌 보존될 수 있겠는가.
도道와 그릇을 함께 닦는 자도 나요, 형체와 혼魂을 함께 키워 나가는 자도 나다. 그러므로 천하만사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아는 데 있다. 그런즉 나를 알려고 할진대 무엇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는가?
우주의 삼신(三神)과 인간의 탄생 원리
三神一體之道는 在大圓一之義하니 造化之神은 降爲我性하고 敎化之神은 降爲我命하고 治化之神은 降爲我精하니 故로 惟人이 爲最貴最尊於萬物者也라.
대저 삼신일체의 도(三神一體之道)는 ‘무한히 크고 원융무애하며 하나 되는 정신(大圓一)에 있으니, 이 삼신일체의 조화로부터 인간이 화생되어 나올 때 그 생성 원리는 이러하다.
하늘의 조화신(造化神)이 내 몸에 내려와 나의 본성(性,天命之謂性)이 되고, 교화신敎化神이 내 몸에 내려와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命)이 되며, 치화신治化神이 내몸에 내려와 나의 정기(精)가 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만이 만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존엄한 존재이다.
사람의 본성과 목숨의 존재 원리
성性 명命과 신神 기氣의 상호 관계
夫性者는 神之根也니 神本於性이나 而性未是神也오 氣之炯炯不昧者가 乃眞性也라 是以로 神不離氣하고 氣不離神하나니 吾身之神이 與氣로 合而後에 吾身之性與命을 可見矣오
대저 성(性)이란 신(神)이 생겨나고 자리를 잡는 근거이다. 신神이 성性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성性이 곧 신神인 것은 아니다.
기氣가 환히 빛나 어둡지 않는 것이 곧 참된 본성이다. 그러므로 신(神)은 기(氣)를 떠날 수 없고, 기氣 또한 신神을 떠날 수 없으니,
내 몸 속의 신(吾身之神)이 기氣와 결합된 후에야 내 몸 속의 본성(吾身之性, 조화신)과 삼신의 영원한 생명인 나의 목숨(명命, 교화신)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神) : 여기서 신(神)은 인간 몸속의 신(神)이다. 대우주의 조물주 삼신(三神: 조화(天)신, 교화(地)신, 치화(人)신은 우주를 채우고 있는 일기(一氣)를 타고, 기(氣)는 신(神)의 숨결과 하나 되어 만물을 생성한다.
만물을 빚어낸 하늘의 조화삼신(造化三神)이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작용할 때는 머리의 중심과 가슴에서 체(體,본체)와 용(用,작용)의 관계로, 즉 원신(元神)과 식신(識神)으로 나뉘어 작용한다.
여기서는 사물을 인식하는 신, 식신(識神)으로, 즉 모든 사람의 몸 속에서 개별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신(神), 곧 개별화 된 신명(神明)을 말한다.
내 몸 속의 신명(神明)이 기(氣)와 더불어 합해진 후, 즉 내 몸의 현실적인 존재가 성립된 후에 내 몸 속에서 기(氣)가 밝아지면 본래의 성性과 명命을 볼 수 있다. 결론은 수행을 통해 기(氣)가 맑아져야 한다.
서로 분리될 수 없는 본성(本性)과 목숨(命)
性不離命하고 命不離性하나니 吾身之性이 與命으로 合而後에 吾身의 未始神之性과 未始氣之命을 可見矣니라.
본성(性)은 저마다 타고난 목숨(命)과 분리될 수 없고, 목숨(命)도 본성(性)과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내 몸에 깃든 본성(性)이 목숨(命)과 결합된 뒤라야 내 몸에 신화(神化)하기 이전의 본성(性)과 기화氣化하기 이전의 목숨(命)의 조화 경계를 볼 수 있다.
신화(神化) : 인간의 본성(性)은 우주가 열린 삼신(三神)의 광명 자체이다. 이것이 실제 우리 몸에서 작용할 때는 하나의 개별적인 신명(神明)의 광명으로 작용한다.
신화神化란 우주의 삼신이 인격신으로서 우리 몸의 ‘개별화된 신명神明으로 열리는 경계’를 말한다.
기화(氣化) : 삼신의 영원한 생명이 우리 몸 속에서 작용할 때 기氣로 변화 작용하는 그 경계를 기화氣化라고 한다.
성명정(性命精)을 통해 천지와 역사를 보라
故로 其性之靈覺也는 與天神으로 同其源하고 其命之現生也는 與山川으로 同其氣하고 其精之永續也는 與蒼生으로 同其業也니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性)에 담긴 신령스러운 지각(靈覺)의 무궁한 조화능력은 하늘의 신(天神 = 三神)과 그 근원이 같고, 삼신의 영원한 생명 자체인 인간의 본래 목숨(命)은 자연의 산천(山川)과 그 기(氣)가 같고,
인간의 정기(精)가 자손에게 이어져 영원히 지속함은 천지의 이상세계를 이루어가는 과업(業)을 창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영각靈覺 : 사물을 대할 때 그 내면의 모습을 그림 보듯 환히 보고 실상을 깨닫는 직관直觀의 경지를 말한다. 또한 성(性)의 본성인 허령虛靈과 지각知覺의 준말로 볼 수 있다.
과거-현재-미래를 관통하여 만물을 거울에 비추듯 환히 비춰준다. 인간은 신도(神道)로 깨쳐야 사물의 실상을 바로 보게 된다.
신교의 수행 원리 : 우주와 하나 되는 길
乃執一而含三하고 會三而歸一者가 是也니라. 故로 定心不變謂之眞我오 神通萬變을 謂之一神이니 眞我는 一神攸居之宮也라 知此眞源하고 依法修行하면 吉祥自臻하고 光明恒照하나니
此乃天人相與之際에 緣執三神戒盟而始能歸于一者也니라. 故로 性命精之無機는 三神一體之上帝也시니 與宇宙萬物로 渾然同體하시며 與心氣身으로 無跡而長存하시고 感息觸之無機는 桓因主祖也시니
與世界萬邦으로 一施而同樂하시며 與天地人으로 無爲而自化也시니라. 是故로 其欲立敎者는 須先立自我하고 革形者는 須先革無形이니 此乃知我求獨之一道也니라.
바로 하나에는 셋(삼신)이 깃들어 있고(執一含三), 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원리(會三歸一)가 그것이다.
하나(一神)속에 셋(조화造化 성性, 교화敎化 명命, 치화治化 정精)이 있고 셋은 그 근본이 하나(一神)의 조화다. 그러므로 (무궁한 일신의 조화에 머무는) 마음을 바르게 하여 변하지 않는 것을 ‘진아眞我(참된 나)’라 하고,
신통력으로 온갖 변화를 짓는 것을 ‘일신一神’이라 하니, 진아眞我는 우주의 일신一神이 거처하는 궁궐이다. 이 참됨의 근원을 알고 법에 의지해 닦고 행하면 상서로운 기운이 저절로 이르고 신(삼신)의 광명이 항상 비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하늘과 하나 되고자 할 때(天人相與之際), 진실로 삼신의 계율(참전계)을 굳게 지킬 것을 맹세하고(三神戒盟) 진리를 공부를 시작해야만 능히 이 하나됨의 경지 一者(一神)에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성(性)과 목숨(命)과 정기(精)가 혼연일체의 경계에 계신 분은 삼신과 한 몸(三神一體)이신 상제님(三神一體上帝)이시다. 상제님은 천지 만물과 혼연히 한몸이 되시어, 마음心과 기운氣과 몸身으로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으시나 영원히 존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