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에 이어 등장한 기마군단 선비(鮮卑)는 시라무렌강에서 일어나 몽골고원과 만주의 경계를 이루는 대흥안령산맥에서 목축과 수렵을 하던 유목민족이다. 이들은 흉노의 지배를 받다가, AD 156년 영걸 '단석괴'가 등장하여 몽골고원-바이칼호-만주-오르도스 일대에 걸쳐 500만㎢ 가까운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단석괴 사후 다시 분열되어 내몽골지역에 흩어진 선비는 모용, 우문, 단, 탁발 등 부족별로 세력화하여 후일을 기약한다. 후한, 삼국시대를 거쳐 진(晋)이 중국을 통일하나, 혼란을 틈타 흉노·선비 등 5개 북방기마민족이 화북지역을 점령하고 나라를 세운 것이 '5호 16국'이다. 이때 선비의 '모용부족'은 전연, 후연 등을 세운다. '탁발부족'은 다시 화북을 통일하여 북위를 세워 송과 더불어 남북조시대를 연다. '우문부족'은 후에 거란을 건국하며, 선비족 일파인 '실위부족'에서 칭기즈칸이 등장해 나중에 대몽골제국시대를 연다.
북방민족과 중국의 쟁패는 계속된다. 후한은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책으로 선비족과 협력하여 북흉노를 멸망시키나, 몽골고원을 제패한 선비는 다시 후한을 공략한다. 이후에도 5호 16국, 북위 등이 북방에서 중국을 위협한다. 분열된 중국을 통일한 수 문제(양견)와 이은 당 고조(이연)도 한족과 선비족의 혼합혈통 군벌 출신이다.
선비족과 한민족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다. 선비족 발원지 시라무렌강은 홍산문화지역을 흐르는 강으로, 요하와 이어져 고조선 중심부를 관통하며 흐른다. 신채호 선생은 선비를 '본래 아(我)의 동족'이라고 했다.
내몽골 조양의 선비족 무덤 벽화는 고구려 무용총수렵도와 너무나 흡사하다. 고조선은 선비족의 연나라와 대치했고, 고구려는 선비족 모용황과 서북방을 경계로 싸웠으며, 이후 선비족의 수·당나라와 국운을 건 대전쟁을 치렀다.
흉노, 선비 등 초원제국의 주인공들은 문자기록을 거의 남기지 않았다. 그들로부터 침략을 받거나 정복당한 정주민의 기록만이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남은 역사기록을 토대로 유적과 유물 등을 통해 역사를 재구성해야 한다. 우리의 고대 역사를 찾는 노력은 남아 있는 중국의 사서, 특히 정사인 '25사'를 번역하는 데서 시작했으면 한다. 현재 극히 일부만 번역되어 있는 '25사'의 완역을 기대하며, 이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오호십육국사'를 번역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