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 때의 유명한 문인 홍매(洪邁, 1123-1202)는 소흥 말년에 한림학사의 신분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간적 있다. 금나라에서는 그를 강박하여 그가 올린 표(表) 중에서 남송을 신하의 나라라고 고치라고 하였으나 그가 거절하는 바람에 금나라의 사관에 억류되여 있다가 겨우 풀려나서 남송으로 돌아온 적 있다. 그 때의 체험으로 바탕으로 하여 저술한 잡록집『이견지(夷堅志)』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재미나는 사실을 기록했다.
거란족의 아이들이 서당에 가서 글을 읽기 시작할 때에는 습관적으로 그네들의 말로 원문의 어구들을 거꾸로 놓고 익혔는데 원래는 한자인데 결국에는 두자, 석자로 늘어났다. 이전에 내가 어명을 받들어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비서성 부장관 왕보라는 사람이 나를 배동하는 부사로 있었다. 우리들이 함께 있을 때 왕보는 늘 나에게 이러한 우스개를 들려주었는데, 이를테면 “조숙지변수, 승고월하문”이라는 두 구절의 시구를 읽을 경우에 거란사람들은 “달이 밝은데 중이 문을 두드리고 물밑의 나무우에 까마귀가 앉아있네”라고 읽는다고 했다. 대가 모두 이러하였다.
한족인 홍매가 한어의 자대로 거란어나 녀진어를 가늠해보니 거란어나 녀진어는 한어와 다른 두 가지 점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첫째, 단음단자단의(單音單字單義)인 한자한어와는 달리 거란어나 여진어는 다음절어라는 점이다. 그래서 홍매는 “원래는 한자인데 결국에는 두자, 석자로 늘어났다.”고 기록하였다.
둘째, 일반적으로 “주어→술어→보어”의 어순을 가진 한어의 어순으로 일반적으로 ““주어→보어→술어”의 어순을 가진 거란어를 바라보면서 홍매는 “ 그네들의 말로 원문의 어구들을 거꾸로 놓고 익혔다”고 기록했던 것이다. 이밖에도 한어의 개사, 련사들은 흔히 앞에 놓이나 개사(介詞)나 관련사(關連詞)들과 비슷한 문법적기능을 갖고 있는 거란어의 조사들은 뒤에 놓이니 홍매 같은 한인들이 바라보니 자기네의 한어와는 어순이 전도되였다고 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로부터 거란어나 녀진어는 는 분명히 조선어와 비슷한 어순을 갖고 다음절어를 위주로 하는 점착어로서의 알타이어계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거란인들은 중국 동북경내에서 활약했던 고대 민족 동호(東胡)에서 발전된 민족이였다. 동호와 숙신의 중간에 위치하여 살았던 조선민족의 조상인 예맥(濊貊)은 혈통적으로나 언어적으로 동질성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홍매의 이상의 문자기록은 아주 짧은 기록이지만 상당히 소중하다.
당나라시기의 시인 가도(賈島)의 “烏宿池邊樹, 僧敲月下門”이라는 이 시구를 조선어로 번역해도 “月明里和尙門子打, 水底里樹上老鴉坐.”와 어순이 거의 완전히 같아진다. 즉 “까마귀는 못가의 나무우에 깃들고, 중은 달빛아래서 문을 두드리네.” 라고 번역을 하겠으니 역시 거란족의 아이들이 가도의 이 시를 어순을 전도하여 읽은 것과 꼭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