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yukjunseo.egloos.com/m/3103647
예전부터 수도 없이 나온 야기고, 답도 한참 전에 나온 야기지만 이글루스에서도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한번 써갈겨 봅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살아남은 비유럽권 국가는 아시다시피 일본, 태국, 에티오피아 뿐입니다. 이집트는 명목적으로는 살아남았지만 영국의 사실상 식민지였고 오스만 튀르크는 그 영역이 비유럽권이라고만 하기 힘드니 패스. 그 중에서 근대화에 성공해서 서구국가와 같은 반열에 든 나라는 아시다시피 일본 뿐입니다. 그럼 왜 일본만 근대화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보통은 그동안 화폐경제가 활성화되었다는 것과 정치인의 의식수준이 높았다고 말하는데 그게 과연 일본만의 특징이자 장점이었느냐는.. 다른 나라들을 알아보면 아닙니다.
제가 주로 파고 있는 베트남만 봐도, 전체적인 국력은 일본보다 모자랄지라도 서구화의 수준, 그리고 근대화의 필요를 느끼는 지식인의 수를 보면 서구화에서는 일본을 한참 앞서있었고, 근대화의 경우는 유교적인 면모로 보수적일지라도 의외로 프랑스 침공 이전부터 서구의 기술의 도입의 필요를 느끼고 나름 꾸준히 도입했습니다. 또한 일본보다 모자라는 국력이더라도 생각외로 탄실해서 일본과 이웃상태에서 전쟁을 한다는 전쟁사 역덕후들의 로망(...)의 가정을 하면 일본이 이긴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오히려 일본이 깨질 가능성도 높은 나라였죠.
한편 시암도 19세기의 전쟁에서 의외일지는 몰라도 뇌관식 머스킷정도는 널리 운용하던 나라였습니다(그 시기가 초반인지 후반인지는 모르겠군요. 제 기억상으로는 전통복장의 군인이 사용하던 뇌관식 머스킷이니 19세기 중반정도로 보입니다만-_-;). 거기에 라마 4세, 라마 5세로 이어지는 60년간의 치세에서 왕실이 주도적으로 개화, 근대화 정책을 이끌던 나라였고요. 비록 인구가 400~700만정도로 매우 적긴 했지만.; 근대화의 의지, 그리고 그 정도를 보면 결코 무시할만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이집트의 사례는.. 오스만사를 아는 분들은 다들 아실 무함마드 알리로 설명 끝. 무함마드 알리의 군대가 오스만 튀르크의 근대화 군대를 격파하고 이스탄불을 위협했을 정도고, 그게 19세기 초반이라면 말이 더 필요합니까?(....) 비록 서구열강의 간섭으로 점령지를 토해낼 수 밖에 없었지만 근대화의 정도만으로 따지면 영국의 사실상 식민지가 될 나라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근대화와 정치인들의 의식만 보면 명실상부한 자주독립국 상태를 꾸준히 유지하는게 정상일 나라죠.
하지만 이 나라들은 다 실패했습니다. 시암은 독립을 유지하고 근대화도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의 완충위치, 그리고 중국과 무역이 다이렉트로 가능한 무역로가 없다는 이유가 매우 컸고, 베트남은 프랑스의 1차 베트남 침공 때 프랑스가 예상치 못한 고전으로 3000여명, 20~30여척의 전함을 보낸 원정을 무려 4년간이나 끌게 할 수 있었지만 프렌치 인도차이나로 변신(...)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국화, 에티오피아는,, 독립은 지켰지만 완전한 근대화라고 보기는 글쎄올씨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죠. 일본만 근대화를 하고 제국주의 열강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번째로는, 기본적인 국력입니다.
일본의 인구는 에도말기 3000만이었습니다. 어지간한 유럽국가라도 그냥 삼키기는 힘들정도의 인구였죠. 아무리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라도 이정도의 인구, 즉 기초국력을 가진 나라를 바로 꿀꺽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물론 먹는다면 먹을 수는 있죠. 하지만 상당한 수의 군대를 원정군으로 보내야 했고,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니만 다 해먹냐? 라는 질투의 눈총을 사기에 충분한 정도. 그래서 오스만 튀르크가 종이 호랑이 신세가 된 이후에도 비록 영토는 조금씩 삥뜯겼어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고, 중국도 마찬가지였죠. 그럼 인도는 뭐냐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데, 인도는 식민화 과정이 200년입니다-_-; 그 사이에 열강간의 경쟁, 인도 토착국가들의 격렬한 항쟁 등을 끊임 없이 격은 후였고요. 영국도 프랑스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의 경쟁국을 모두 처리하고 마라타 동맹, 티푸 술탄 등의 격렬한 항쟁을 다 격파하고, 세포이의 항쟁까지 진압한 뒤에야 인도를 완전히 먹을 수 있었죠.; 일본도 마찬가지로 한번에 먹기는 힘들고 서서히 삥뜯어야 할텐데, 일본의 기본국력을 보면 이런 맛있는 떡을(...) 니만 다먹냐고 열강끼리 서로 눈치주고 서로 싸우기 쉽상이었습니다-_-; 참고로 19세기 초반 인구를 보면 이집트가 300~400만, 베트남 1000만, 시암 500만 정도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정치체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일본의 막번체제를 말하는 것이 아닌 메이지 유신 이후의 상황을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메이지 유신이라는 내전으로 갈아 엎은 정부의 특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아니 지금 현대 정치상황을 봐도 시대적으로 필수적인 개혁도 기존 권력층의 동의가 없으면 진행되기 힘듭니다. 그런 개혁을 위해 동양에서는 일명 역성혁명이란 기회와 수단을 활용했죠. 기존의 권력층을 완전히 뒤엎고 개혁을 주도할 사람들이 정치, 군사적으로 여타 파벌을 압도하고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문제에서 에티오피아, 태국, 베트남 등이 부족했죠. 에티오피아는 메넬리크 2세 직전에 겨우 통일된 봉건제 사회(...) 태국은 안습한 수준의 봉건제, 베트남은 중앙집권이었지만 19세기 중반에 갈아업지는 않은 상황이었죠. 이 때문에 태국은 근대화를 하긴 하는데 그 와중에 중앙집권화를 '내전없이' 동시에 진행한다고 시간을 주구장창 날려 먹었고, 베트남은 서구의 기술에 대한 필요를 느꼈지만 일본만큼 적극적인 도입을 하지 못합니다. 거기에다가 일본의 유신전쟁이라는 내전은 서구의 무기를 도입할 수 있던 새로운 기회였습니다. 유신전쟁 준비를 위해 도입한 무기들은 전쟁 후 유신정부의 군사력의 바탕이 되었고, 그 군사력은 서국국가들도 상당한 출혈을 맛본 후에야 점령이 가능할 정도였죠. 그리고 유신이후 정치적 견제자가 사실상 사라진 유신정부는 메이지 유신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사츠마와 조슈의 대립은 있지만 근대화의 빠른 추진은 당연히 동의 했고(물론 전체적인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자세한 부분을 따지면 문제가 보이지만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군요), 사이고 타카모리가 세이난 전쟁을 일으킬 무렵에는 뭐-_-; 유신 정부도 나름 고생한 전쟁이었지만 이미 승산없던 그런 전쟁이었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하지만 매우 허무한 문제. 바로 운빨(...)입니다.
일본도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갈라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운만 아니었다면요. 1854~1868년 동안 이어진 막부말 혼란과 유신전쟁은 서구 열강들이 개입하면서 열심히 뜯어먹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만, 일본은 운이 지독히도 좋았습니다. 그렇게 황금기회인 내전 때 서구 주요열강은 죄다 지네들 사정때문에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미국은 1854년 흑선개항을 시켰지만 먼로주의의 영향으로 아직은 아메리카 이외의 영토를 열심히 뜯어먹기는 망설이던 상황이었고, 그나마도 1861년 일어난 남북전쟁으로 버로우를 할 수 밖에 없던 시츄(...) 러시아는 거대하고 강력하고 일본 옆이었지만 그 옆의 영토라는 연해주는 1860년에 막 삥뜯어서 얻은 영토정리도 정신없던데다, 견제하는 국가가 수도 없이 나오던 시츄. 영국은 러시아 견제도 정신없던 상황에서 유럽대륙에서 프로이센이라는 강대국이 갑자기 일어나서 시선이동에 해외로는 1857년 일어난 세포이의 항쟁과 1856년 일어난 애로호 전쟁에 군사력을 투입해서 일본에 갑자기 군사력을 투입하긴 힘들었습니다. 프랑스는 멕시코 내전에 개입하고, 베트남 침공하고, 애로호 사건에도 군대를 보내고, 크림에도 보내고, 이탈리아에도 보내다가 바로 옆에 프로이센이 갑자기 성장해서 프로이센 막느라고 신경 못쓰던 상황. 대략 서구열강에게 황금같던 시기에 다들 지네 앞가림 한다고 정신이 없었어요-_-; 그 와중에 외부간섭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내전을 후딱 끝내고 정치적으로 갈아엎으면서 개혁을 후딱 진행할 수 있었으니 운이 너무나도 좋았던 것이죠.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썰을 미리 풀까 했는데 귀찮으니 이정도만 하죠. 아마도 사츠에이 전쟁, 4국 연합함대 조슈 포격, 삿쵸간의 갈등, 그러면 조선은 왜? 등이 나올 듯 한데, 이정도 적는 것으로도 너무나도 귀찮아요-_-;; 추가 예시를 들기는 더더욱 귀찮고. 고로 이것으로 끗.
조선에 대해 실망감 가지고 까는건 알겠는데 이것도 역사에 관심가지는 사람들의 정신적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서 어거지 부리거나 반대로 일뽕질처럼 무조건 남 까기위한 뻘짓으로 빠질 때가 문제지...
예송논쟁이 대기근 직후 정통성 싸움질이라는 것은 비판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일본 가지고 조선 경신 대기근 거론하는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구휼제도 같이 정치 시스템이 어느정도 구축된 조선과 다르게 텐메이 기근은 자선사업 빼고는 윗대가리들이 거의 방치 수준까지 가서요....일본의 근대화가 운빨이 크게 작용한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일본이 넘사벽이고 될놈은 된다는 논리는 더 한 놈들도 먹어버리는 열강들에게 아이고 의미없다죠.. 실질적인 경제 잠재력은 조선이든 일본이든 실제로는 큰차이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19세기 후반에 들어서 미친듯이 벌어지죠. 어차피 경제력이니 문화니 해봤자 근대화를 논할 때는 표면상의 비교일 뿐입니다.
지금이야 잘풀렸으니 일본이 대해 이렇게 말하지 내전 하다가 망했으면 구한말과 다를거 없는 취급 받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