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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8 11:38
[한국사] 80000명 vs 1600명 용인전투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1,641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8/486263/789752372/830079210/08b2d663a6006fe92cb39c213ab817fa.JPG

1592년 음력 6월 5일~6일

용인전투

 

전쟁발발 약 두달이 못된 시점

그동안의 전투에서 계속해서 패배만 반복하던 조선군.

 

해유령에서 빛과 같은 승전보를 올렸지만,

작은 실수로 인하여 승전의 주인공인 부원수 신각을 참수해버리면서

조선육군의 사기는 걷잡을 수 없게 추락한다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리고 때마침 조선군의 대대적인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전라도의 주력병력과

 경상도, 충청도의 패잔병을 합쳐서 만든

 3도근왕군

 

 이광, 곽영, 윤선각, 김수, 권율, 백광언, 이지시, 이경복, 이지례, 윤국형, 식익, 유옥, 유세옥, 김충민, 박태고, 정기룡, 강만남, 김경로, 황진, 이광인, 정연 등

엄청난 장수진과

그 수가 무려 8만에 육박하는 병력

 

예상치 못한 대병력에 당황한 왜군은

 우선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방어를 위해 출진하였다

와키자카가 급히 끌어모은 병력은 약 1600여명이었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8/486263/789752372/830079210/0991022faed4ff54afb6d5a419939e48.JPG

하지만 이 덩치만 큰 대병력은

종이 호랑이였다

 

급조된 통합부대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보급선도 준비되지 않았었고,

병사들은 물론 오합지졸이었고 장수들의 지휘역량도 미달이었다

 

그리고

광주목사 권율은 아군의 사기를 축적하면서 조정의 명을 받아 움직이자는

신중론을 내세웠으나,

다른 장수들의 산성 농성 의견에 막히는 등 의견 합의도 되지 않았다

 

 

음력 6월 5일 조선군이 초기 작은 교전에서 왜군 5명을 베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총사령관인 전라도 순찰사 이광은

 전병력의 돌격을 명령했고,

광주 목사 '권율'을 비롯한 여러 제장들이 반대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접전에서 

조방장 백광언은 단신으로 23명의 왜병을 베는 등 분전하였지만,

결국 백광언을 비롯한 이지시, 이지례, 이광인, 정연

5명의 장수를 잃었고 병력도 큰 피해를 입었다

결국 사기가 꺾여 한차례 후퇴한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8/486263/789752372/830079210/99b983892094b5c6d2fc3736e15da7d1.JPG

다음날, 음력 6월 6일 조선군이 밥을 짓는 때를 노려

왜군이 기습을 가했고

이광을 비롯한 지휘부가 도주하자 병력 역시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약 천여명의 전사자를 내고 말았다

 

다행히도 전사자가 전체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

대다수의 병력은 무사했지만, 

이 병력이 무사히 한양을 탈환하고 왜군의 보급선을 끊었다면

이미 내륙 깊숙히 들어와 있던 왜군은 큰 피해를 입었을 확률이 높으며,

그렇게 되었다면 전쟁은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를 일이다

 

이광은 결국 이 전투의 책임을 물어 파직되어 유배되었으며,

권율은 이 전투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훗날 큰 활약을 보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렇게 기세등등했던 3도근왕군은 허무하게 와해되고 말았고

조선군이 한양을 탈환한 것은 1년 뒤인 1593년 음력 5월이 되어서였다

 

훗날 당시 재상이었던 류성룡은 이 전투를

"흡사 봄놀이같았더라" 라고 평가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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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제국 17-11-08 11:42
   
군대는 편제가 가장 중요하지요

편제가 안되면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군대는 오합지졸이 되죠




당시 조선군은 편제도 엉망이고 훈련도 엉망이니 초반에는 일본군한테 썰렸죠



실제 용인전투에서는 일본군한테 죽는 군인보다는 후퇴하려다 깔려죽은 사망자가 더 많았습니다
쌍령전투도 마찬가지이고요
촐라롱콘 17-11-08 14:33
   
용인전투 동원된 조선군 병력규모를 일반적으로 5만 규모로 알고 있습니다!

전라-충청-경상의 3도 근왕군이라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 전라도군이 4만명으로 병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충청도군은 오늘날 기준으로 대체로 충북일대의 가용병력은 이미 용인전투보다 이전의

충주 탄금대전투, 추풍령 전투 등에 동원되어 상당한 병력손실을 겪었기 때문에...

대체로 오늘날의 충남일대의 병력 위주로 8천~1만명 규모가 동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미 일본군들의 교두보로 전락해버린 경상도는 관찰사 김수 이하 100여명이 참가하는 그냥 상징적인

규모에 불과했구요....!!!

그래도 용인전투는 조선군 피해규모로만 보자면 사상자 수 천 이내에 머물렀습니다.

주력군끼리 제대로 붙어보기도 전에 조선군이 패주-분산하였고... 추격하는 일본군 대부분이 보병인지라

10리~20리 가량 추격하다가 제풀에 지쳐 그만두었던 반면에......

병자호란에서의 쌍령전투는 수 만명이 좁은 계곡지형에서 도주하는 바람에 최고지휘관인 병마절도사 1인을

포함하여 같은 아군끼리 압사한 인원도 엄청났으며....

300명 규모의 청군에게 전열이 와해되기는 했지만, 청군 또한 최고지휘관이 청태종의 조카인 패륵 악탁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 쌍령전투에서의 청군 총 규모도 최소 3,000명 ~ 최대 6,000명으로 추정됩니다.

게다가 청군은 일반적인 병력비율 가운데 기병이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도주하는 조선군을 뒤쫓아

토끼몰이 식으로 사냥하는 수준이었으니... 4만병력 가운데 희생자만 최소 2만 이상에 달하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숲속의소녀 17-11-08 16:30
   
용인전투의 일본 측 영웅인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좀 더 일본과 한국에서 조명받을 가치가 큰 인물입니다. 한 마디로 그의 일생은 16세기 조선과 일본의 극적인 사건 거의 모두의 주연 또는 조연으로 참여한 인물이기 때문인데요.. 잠시 간략히 그의 이력을 소개해 드립니다.

1.시즈가타케 전투 참여 - 큰 전공으로 시즈가타케 칠본창의 일인이 되는 명성을 얻음 (3,000석 고위 무사가 됨)
2.일본 통일 전쟁의 대미인 큐슈정벌 및 오다와라정별에 참여 (이 전쟁 기간 30,000석 영주가 됨)
3.임진왜란 및 정유재란 참여 : 용인전투의 승장 -> 한산도 해전의 패장 -> 2차 진주성 전투 참여 ->
  칠천량 해전의 토도 타카도라 등과 함께 승장  -> 명량해전 참여 -> 1차 울산성 전투 참여 (33,000석으로 승진)
4.세키가하라 전투에 본의아니게 미쓰나리의 서군으로 참여 후, 전장에서 이에야스에게 돌아서 전공을 세움
  (이후 53,000석으로 승진)

이 정도면 그의 일대기를 드라마로 찍으면 아마 대성공은 예약 수준이 아닐까? 합니다.
     
레스토랑스 17-11-08 16:38
   
일본 사극보다 한국 사극에 더 많이 출현한 인물같음 ㅋㅋ
     
뭐꼬이떡밥 17-11-08 17:48
   
오만삼천석이면....

말석이죠.
아시겠지만  히데요시의 직속 무장중.. 가다기리가스모또 1만석 외에는 전부 와끼자까 보다 월등히 많죠.

전국시대 녹봉은 곧 실력이구요.  임란이전 두 가또 만 해도 둘다 20만18만여석씩 고니시도 18만석 등
비교가 안되죠

그만큼 히데요시 직속 무장으로서 공과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뭐 나름 손꼽는 인물들이라면. 무에서 큰 영지를 얻은 마에다 도시이에나 야마우찌가스도 등등 많지요 이것도 준수한 수준이지 더큰영지를 당대에 얻은자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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