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2003년, 청주시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가 1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벼 농사의 기원이 중국이 아닌 한국일 것이라는 학계 주장이 나왔다.[7] '빙하기였을 당시 기후에서 벼가 발아할 수 있는가?'라던가 '재배벼인가, 야생벼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전자는 냉해실험을 통해 발아할 수 있었다고 밝혀졌으며 후자는 그 중간 단계인 '순화벼'에 해당된다고 밝혀졌다. 다만 유전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의 벼와 유사성은 조금 낮다고.
콜린 렌프류의 《현대고고학의 이해》에서는 쌀의 기원을 한국으로 수정하였다.
농경 사회의 증거인 세계 최초의 볍씨(1만 3000년~1만 5000년 전,구석기 시대)가 흥수아이와 같은 지역인 충청도 청주시에서 발굴되었으며 미국의 지오크론 연구소와 애리조나대와 서울대 AMS 연구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등 국내외4개 연구기관에서 흙과 볍씨, 토탄 등을 시료로 해서 방사선 탄소연대 측정을 통해 교차검증 하였으며 모두 동일한 결과를 얻어냈다. 볍씨가 많이 출토된 2토탄층의 화분 분석 자료는 ‘상대적으로 온난 습윤한 저습지에 형성된 토탄층’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나무분석 자료를 봐도 오리나무-밤나무 류의 낙엽활엽수가 주로 나타났다. 이 시기는 전세계적으로 온난한 기후였던 알레뢰드/뵈링 간빙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소로리 토탄층의 보존’을 일축해버린 문화재위원회의 처사가 두고두고 한심할 따름이다. 지금 청주시 소유지가 된 보존지역이 약간 남아있지만 다른 공장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제대로 된 토탄층 발굴은 쉽지 않다. 적어도 10~15m 이상의 깊이에 200㎡(10×20m) 면적을 발굴하기는 턱없이 좁다. 이융조 교수는 “폐교된 인근 소로분교를 박물관으로 조성하고 소로리 주변 지역의 농지에 대한 학술발굴을 벌여야 할 것”이라고 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