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 년 8월 14일 일본 제국주의가 무조건 투항을 선포하자, 8월 18일 소련은 동북항일연군과 함께 일본 보병 127사단과 싸워 연길시에 진주하였다. 연길시를 해방시킨 동시에 훈춘, 라자구, 왕청, 도문, 용정, 돈화를 해방시키고 8월 20일에 이르러서 전 연변을 해방시켰다.
당시의 조선족 인구를 보면 동북과 관내를 합친 총 인구는 216만이었는데, 그 대부분은 동북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100만여에 달하는 인구는 한반도로 돌아가고, 1947년 동북 지방의 조선족 인구는 11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일 제와의 싸움에 의해 중국으로 넘어왔던 자들이 다시 고향을 찾아 돌아간 셈이다.
그 러나 아직 해방된 걸 모르던 사람도 있었다. 지난 호에서도 잠깐 얘기했지만, 광복 직전에 일본군에 징집당했다가 소련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 소련으로 끌려간 사람들 중 창씨 개명하여 입대한 조선인들은 일본인으로 오인을 받아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소련군은 타민족은 전쟁에 대한 죄가 없다고 풀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한족이나 몽고족은 모두 석방했다. 그러나 소련 말을 모르는 조선인들은 그런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통역도 없어서 전부가 일본인으로 오해를 받았다. 개중에는 일본인 포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석방되지 않고 끌려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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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중국조선족이 독립군 후손이라고 졸라 우기던 조선족 색x 때문에... 중국조선족 이주사란 책을 다 뒤졌다.
위에도 나왔다 시피... 해방후 소련군에 의해서 만주의 일본인들은 싸그리 포로로 잡혔는디... 그중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하고 일본 앞잡이 짓꺼리 하던 색x들은 전부 소련군 포로가 되어 한반도로 돌아오지 못했다.
류은규의 중국조선족 이주사 내용 중-
정리하자면
1. 일제치하 시 약210만명의 재중조선족은 광복과 동시에 만주의 광복군과 함께 그
절반인 100만명이 한반도로 돌아온다.
만일 현재의 재중조선족들이 정말 광복군의 후예였으면 어찌 광복의 사실을 모를 수
가 있단 말인가?
2. 광복이후 연변에 주둔한 소련군은 일본인과 귀화(창씨개명, 일본군 영내거주)한 황
인종들은 모조리 포로로 잡는다. 당시 소련군은 포로를 많이 잡아 실적을 올리려고 혈
안이 되었었는데 여기서의 기준은 일본인 뿐 아니라, 일본식으로 귀화한 모든 황인종
(조선족, 몽골족, 만주족, 한족 등등)을 대상으로 했다.
여기서 또한번, 광복군의 후예라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고 광복군이였다는 주장이 말이 되는가?
결론은
현재 중국에 남아있는 조선족은
1. 광복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 광복군과 조금이라도 연관
이 있다면 불가능
2. 소련군에 포로로 수용되어 <---- 일제의 앞잡이들
3. 아예 한반도로 돌아올 뜻이 없는 사람 <--- 영화 '놈놈놈'에서 나
오듯 죄를 짓고 만주로 도피하여 한반도로 돌아올 수 없는 인간들...
이 세가지 유형이었다.
그런데, 과거 조국이 힘들고 가난하며 어려울때는 외면하고 오히려
매국했던 부류들이
이제 대한민국이 살기좋아지니... 슬슬 기어들어오면서...
한국인들이 자신들을 대우하지 않는 다고... 적대하며
자신들을 독립군의 후예라고 주장하니.. 이 매국노들의 행위에 분노
를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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