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머리 좋은 선배들은 많이 있었지만
그중 최고의 시험귀신은 구도장원공 율곡 이이다.
장원급제를 9번... 고시합격을 넘어서 봤다하면 수석을 차지한 인물.
어찌 보면 한국사회의 교육열과 무관치않은 조선시대의 과거제도에서 ,
롤모델을 넘어선 슈퍼스타이자 이상향 그자체였던 존재라 칭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한국사회는 각종 시험에서도 8대고시를 제일로 쳐주고 그안에서도 서열을 나눈다.
변호사조차도 학벌로 차이를 두고 판검사 역시 그 급수를 나눠 경판이니 향판이니 한다.
이국종 교수조차도 아주대교수 주제에 뭘그렇게 매스컴을 많이 타느냐며, 소위 명문대 교수로부터
멸시를 받는다하지 않던가.
어떻게든 명문대를가야하고 국내에서 안되면 돈으로 미국유학을 보내 일말의 권위를 취해야 한다. 최소 8대 고시의 말석이라도 합격을 해야 일종의 체면치레가 완성되는 것으로 이것은 DNA에 각인된 사고구조, 행동패턴인것 같다.
그러나 이이 이전에 이름없이 죽어간 진짜 천재들이 있었다. 김감불과 광산노비 김검동.
세계최초로 연은분리법을 만들고도 조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 에디슨이나 철강왕 카네기, 잡스를
흠모하면서도 우리는 이 사람들을 알지 못한다.
콜롬부스 이후 스페인제국의 전사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한것은 신세계에서 나는 은이었다. 재밌는 것은 그 광대한 남미대륙에서 다수의 노예를 통해 채굴한 은과 자그마한 일본영토의 은 생산량은 거의 필적하였다.
조선이 아닌 일본에서 연은분리법은 그 진가를 발휘했고 이는 일본 전국시대에 군사를 기르는 수단이 되었다. 이 기술로 조총을 사드리고 인력을 동원했으니까. 은 없이는 노부나가 가문도 히데요시도 등장하지 못 했을 것이다.
이 은으로 명나라에 화폐제도를 통한 자본주의가 등장했고 이 은때문에 누르하치가 부족을 통일할 수 있었다.
세계사에 영향을 더많이 끼친 인물은 구도장원공보다 이름없이 죽은 조선의 광산노비였음에도 우린 아직도 시험과 사회적 권위에 목을 멘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험과 자신의 길 사이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자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