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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2-05 00:25
[기타] 고구려는 중국의 주변국이 아니라 천하 중심국가
 글쓴이 : 두부국
조회 : 5,968  

중국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 역사를 논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한민족의 자존심인 고구려사를 논할 땐 중국이 여지없이 등장한다. 중국은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며 천하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동북공정을 내세우며,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서글픈 건 한국과 일본의 학자들은 중국문화가 고구려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며, 고구려의 유물 하나가 발견되면 먼저 중국에 그 비슷한 것이 있는지 찾아 비교하려 애쓴다. 이는 고구려를 고구려로 이해하는데 커다란 방해 요인이 될 뿐이다.

 

물론 중국이 고구려에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겠지만, 중국이 일방적으로 고구려보다 앞선 선진국이라는 것은 사대주의적 사고가 아닐까 싶다.

 

물론 국초의 고구려는 동방지역의 소국으로서, 동시에 존재하던 한나라에 비하면 양국 간의 문화적 격차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광개토태왕 이후 동방지역의 통합을 완성하고, 저 멀리 사마르칸트에 사신을 보내는 등 세계제국으로 성장하던 고구려 중기에 와서는 중국은 남북조로 분열되고, 한나라가 가진 문화적 역량이 쇠퇴하여 고구려보다 뒤쳐진 부분이 한 둘은 아니었다. 시대별로 고구려와 중국왕조를 비교하면 고구려가 중국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으며, 사회발전 정도도 뒤쳐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구당서』「고구려전」의 "밭농사와 양잠이 중국과 비슷하다"는 문구는 고구려가 생산기술면, 생산관계, 사회발전단계, 사회기반이 중국과 유사하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수서』에는 고구려의 병장기가 중국과 대략 같다고 했다. 이는 고구려의 무기체계가 중국과 비교해서 뒤쳐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성의 축조기술은 오히려 고구려가 중국보다 앞섰다. 당나라 정천숙은 당 태종이 고구려 침공을 결심하자, 고구려가 성을 잘 쌓고 잘 방어하므로 갑자기 항복시킬 수 없다며 당 태종의 침공을 반대하기도 했다.

 

『삼국사기』장수왕 26년(438)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와있다. "정치와 법률제도가 (북연과) 비교해 모자람이 없다" 당시 북연은 한족들이 많이 살았고, 고구려의 속국이었다. 북연이 북위의 침공에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장수태왕은 북연동부지방을 접수하고 상당수의 북연백성과 북연왕 풍홍을 고구려로 데려왔는데, 북연왕이 고구려의 소홀한 대접에 불만을 품자, 장수태왕은 우리보다 여러가지로 모자란 북연이 불만을 품는다며 북연왕을 죽였다. 이는 고구려가 북연보다 앞선 사회문화체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광개토태왕의 신하였던 모두루의 묘지명에 보면 "고구려의 땅이 가장 성스러움은 천하사방 모든 자들이 알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는 단순한 자부심의 표현이 아니라 당시 고구려가 주변국에 비해 많이 발전했음을 의미한다.

 

고국양왕 2년인 385년 북중국의 유주와 기주의 백성들이 고구려로 투항했다는 기록이 있다. 『십육국춘추보』에 의하면 백성들이 고구려로 넘어가는 사태에 직면한 후연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제를 너그럽고 간편하게 고치고, 형벌을 공평히 하고, 노동력 징발을 줄이고 농사와 양잠을 권하니 그 땅에 사는 백성들이 흡족하고 풍족해져서 사방에서 몰려오는 백성들이 수만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이 기록은 역으로 보면 고국양왕 시기 고구려가 강성해지고 후연보다 정치를 잘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고구려로 몰려왔다 볼 수 있다. 백성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후연은 고구려를 벤치마킹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고구려 연구가인 김용만 선생님의 의견에 따르면 이 시기 고구려는 농업을 비롯한 산업이 발달하고, 조세제도나 법률이 중국의 여러나라보다 백성들에게 유리한 살기 좋은 나라였다고 한다.

 

광개토태왕의 뒤를 이은 장수태왕 시기는 고구려의 태평성세였다. 장수태왕 시기 큰 전쟁은 475년 백제 정벌인데, 이는 일방적인 압승이라 고구려의 피해는 없었다. 5세기 고구려는 북방의 유연, 중국의 남북조와 함께 국제정세를 이끌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평화와 번영을 누렸다.

 

광개토태왕의 대대적인 정복활동은 고구려의 위협요소를 제거하고, 고구려를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뒤를 이은 장수태왕 시기 고구려는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장수태왕은 상업을 권장하고, 대동강가에 다리를 만들었고, 당시 남북조로 분열된 중국의 상황을 이용하여 이중외교를 펼침으로써 고구려 백성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북방으로 진출하여 유연과 더불어 지두우를 분할하고, 거란8부를 붕괴시키는 등 고구려 제국의 위용을 과시했다.

 

그래서 고구려는 북위로부터 "해외를 마음대로 제어하여, 오랑캐들을 전부 정복하여 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변의 실위, 지두우, 거란, 말갈, 북연, 백제, 신라, 가야 등을 통제하며 고구려 중심의 천하를 구축하고 있었다.

 

고구려는 안정된 국력으로 점차 국가의 규모를 키워갔다. 『통전』에 고구려가 수나라 때 이르러 점점 커져 "동서 6천리"가 된다는 기록은 고구려의 국력과 위세가 어떤지 능히 짐작하게 해준다.

 

정치, 외교적 안정을 바탕으로 고구려에는 거대한 상업도시들이 등장했으며, 광업생산도 늘어나 철과 금, 은이 주요 수출품이 되었다. 특히 철 생산은 고구려 병사들의 무장에 영향을 주어, 동북아 최강의 중장기마병인 개마무사들을 탄생시키는 힘이 되었다.

 

산업과 군사력 등 외형적 힘만 커진 것도 아니었다. 염립본의 왕회도는 당 태종 때 벌어진 행사에 참석한 23개국 사신의 모습을 그린 것 중 일부이다. 2개의 깃털이 장식된 관모를 쓰고, 붉은 바탕에 위 아래가 뒤집힌 하트 무늬가 새겨진 두루마기, 붉은 단을 두른 녹색바지에 장화를 신고 둥글고 큰 귀걸이를 한 고구려 사신의 모습은 세련되어 보인다. 고구려의 앞선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광개토태왕릉비를 보자. 이는 중국의 묘비와는 전혀 다른 비이며, 그 내용이나 크기 모두 당시 중국왕조에서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것이다. 무덤 양식인 적석총도 중국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비록 벽화가 나오는 봉토석실묘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지만, 중국의 벽돌무덤과는 다르게 고구려 식으로 발전시켰다. 고구려 자체 방식의 발전이 중국의 발전을 압도하고 있었다.

 

광개토태왕릉비

 

김용만 소장님의 주장에 의하면, 최근 고분벽화를 통한 고구려의 천문연구를 조사한 결과 일월, 사신도, 성수도 (星宿圖)등 천문 요소에 대한 표현과 방위표지 시스템과 관련된 천문사상은 고구려가 북제, 당 등에 크게 영향을 준 것이라 한다. 남북조시기 중국 고분벽화에 별자리의 밝기에 대한 구분이나 정확한 관측에 의한 성수도가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반면, 고구려는 진파리 4호분에 알 수 있듯, 밝기에 따라 별들의 크기를 다르게 묘사할 만큼 천문학에 있어서 중국보다 크게 앞서고 있었다.

 

7세기 초 강서대묘의 현무도와 강서중묘의 주작도에 보이듯, 고구려의 사신도 표현은 절정의 수준에 이른데 비해, 7세기 말 당의 금동촌 7호묘에 보이는 사신도의 표현은 5세기 초 고구려 약수리고분보다 크게 뒤떨어져 매우 투박하다.

 

금동촌 7호묘의 사신도(당)

고구려 강서대묘의 현무도

 

중국의 예술은 돈황에서 꽃피웠다. 이 곳은 변방 서역지방으로 중국의 전통적 중심지인 낙양, 장안에서 볼 때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런데 당시 중국예술 가운데 고구려와 교류를 많이 한 곳은 돈황이었다. 고구려와 돈황의 중간지역인 중국의 중심지대에는 문화의 꽃이 피우지 않았다. 이는 고구려와 돈황이 북쪽 초원길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교류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의 궁중의례에 고려무, 고려악이 채택되었는데 이는 고구려의 문화가 당보다 앞섰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특히 고구려 멸망 후 당은 성당(成唐)시기를 누리는데, 당이 성당시기라는 번영기를 누릴 수 있었던 건 고구려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서 아닐까 싶다.

 

고구려는 중국의 주변국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천손이라 여기며 천하의 중심이라 여겼고, 문화적인 면에서 보면 중국과 비슷하거나, 영향을 준 것이 많았고, 어떤 시기에는 고구려가 더 번영했다. 고구려가 강력한 것은 군사력이 강해서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문화를 향유해서가 아닐까?

 

고구려는 중국의 주변국, 종속국이 아니라, 그들에게 문화를 전파하고 그들의 문화발전에 영향을 끼친 천하의 중심국이라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참고 : 김용만,  『고구려의 그 많던 수레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바다출판사, 1999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100119107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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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x4rider 15-12-05 06:33
   
지나족 수도를 보면 그나라의 위치와 사이즈를 알수 있어요.
지나족은 주나라 와 전국시대 부터 장안성이 중심 이엇지요.
그후 한나라때 낙양으로 내려 왓고...
송나라가 되어서야 평야 지대로 내려 왓지만...
그것도 5호 16국 이라는 말만 들어도 5호가 작은 16국을 대리고 놀 정도로 지나족이 약햇던거죠.

고구려와 백제는 바다를 둘러싼 평야 지대를 양분하고 지나족은 고도 1500 이상의 고지대에서 살앗던 작은 민족 이었다는점..
그노스 15-12-05 09:20
   
당나라는 천자 아래에 모든 민족이 종속된다는 일원화된 천하관을 추구했으나, 고구려는 다른 천하를 존중하되 자신들의 천하에서 고구려가 중심이라 생각했던 다원화된 천하관을 추구했다는 주장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동방불패 15-12-06 14:06
   
도올 교수님 말처럼 고구려 지도를  위아래를 돌려서 봐보십시요
천하 중심국가가 맞습니다
세상캐니 15-12-13 08:57
   
예전에 먼.?얼어죽을 민족타령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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