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그러나 안타깝게도 근세사에 '코리아'는 반도역사가 분명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일본인들을 서세가 보호하거나 옹호하지 않을 수 없는 합체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꺼꾸로 풀이 하면 그들에게 근세기 이전역사에서 두렵고 극복의 대상이 되었던 실체가 '코리아'이며 때문에 네덜란드가 세계대양을 휘어잡으면서도 배를 만들어 상납한 과거의 무서움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한반도에 가둬놓고 앙갚음을 한다고 생각하면 틀림 없다.
지금도'코리아' 란 이름의 국가는 지구상에서 지워버리고 싶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거대한 세계지배국 코리아, 삼한의 대조선은 당연히 지금의 대서양인 대동양을 동해라고 하였던 세력이었고 그 세력을 서세들은 '코리아'라고 하였으며 그 주체들이 있었던 곳은 다름아닌 북아메리카대륙이며 그곳에 존재하던 모든 역사가 서세에 의해 철저하게 지워지고 없다는 사실은 여기서도 금방 들어나는 이야기다.
코리아, 대조선이 건재했을 때 일본도 네덜란드도 모두 한낱 코리아가 지배한 세력이거나 한낱 조직에 불과하고 장사아치에 불과한 것으로서 코리아의 거대한 영향력아래에서 생존하기위해 발버둥치던 해양세력이었다는 사실 또한 그들이 부정하긴 힘들 것이다.
당시 그들이 만든 고대지도를 보면 아시아(亞細亞)란 단어는 지금 아시아대륙보다 아메리카대륙에 더 많이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아시아란 명칭이 결코 현재 동아시아를 기반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과 근세기에 북아메리카대륙에서 떠밀려 동아시아로 이동된 과정에서 생성되거나 근세기 서세가 동양의 근원지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으로 지정한 명칭임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다 근세기에 불과 100년에서 130년 전에 일어난 사실들이란 점에서 할말을 잃는다.
멀지도 않는 100년 또는 130년 정도의 시간에 코리아, 대조선이 해체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버렸다.
그 역사가 코리아 역사라니 어찌 놀라움과 한이 왜 없겠는가?
네덜란드가 코리아와 단지 직교역을 하기 위한 것임에도 거대한 선박을 건조하여 상납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시절 그 시기가 바로 생사여탈지권(生死與奪之權)을 가지고 있었던 코리아, 삼한의 전성시기임을 어찌 어리석은 우리가 알 수 있었겠는가?
조선이 유교국가라서 검약함을 강조하긴 했는데, 아마도 사람들 머릿속엔 그런 이미지로 박혀있는듯..
위에서 인용한 북학의-박제가는 청나라 풍물을 잘 알수 있는 책이지만, 저자 박제가는 당시에도
-당벽-이라고 비웃음 샀던 양반임. 당벽이 뭐냐고 하면, 지금의 중빠라고 번역하면 됨.
이를테면, 중국이 미국을 꺽고 세계를 재패할꺼라는둥,, 중국이 최고! 뭐 이런 분..으로 유명했던 사람ㅋㅋ
박제가가 살았을 당시 청은 건륭제 시기로, 청의 전성기의 거의 끝물이였는데, 뭐, 박제가가 양반이니
좋은 곳만 골라 다녔던 이유도 있고( 부자들이 관광다니는데, 그 나라 뒷골목 다니겠음? 번화가나 관광지만
보고, 살아보지도 않고, 그 나라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과 비슷함)
그후, 박제가가 찬양하던 청나라는 쇠퇴기 고고씽. 사실 건륭제 치세 후반부터는 청나라도 부패하고 있었는데, 박제가가 찬양하고 있던 동시대 서양 상인들이나 선교사들은 오히려 청나라를 걱정하고 있었음.
일동장유가도 일본풍물을 알수 있는 사신의 기행문인데, 조선의 사신들 기행문은 이거 아니라도 많아요.
조선통신사들가 열몇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니, 그때마다 저자에 따라, 그리고 시기에 따라 조금씩 논조가 다양하죠, 주로 일본의 번화함을 주장하려고 일동장유가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간혹 보이는데, 그 중에 일본에 좋게 쓴 문장만 뽑아서 보여주는 식이라고 할까?
일동장유가는 일단, 무척 방대한 내용으로 유명합니다. 아마도? 원본을 다 읽어본 사람이 드물겁니다.
있어도 청소년용 축약용 정도가 있을까? 저 블로그의 주인도 못 읽어봤을껄요? 사실 저도 듣기론 일동장유가 내용중엔 일본 찬양뿐만이 아니라 일본을 까는 내용도 제법 있는 것으로 아는데 ㅋㅋㅋ 인터넷에선 어디서 복사했는지, 늘 같은 문장만 보게 되는군요.
제가 하고픈 말은, 기행문이란 것은 글쓴이가 여행(유람)을 다녀와서 쓴 글이기 때문에
자기 주관이 많이 개입된 글이라는 겁니다. 그럼으로, 재밌게 읽으면 될뿐,
그게 꼭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알수 있게 하는건 아닙니다.
박제가나 김인겸 모두 청, 일본에 있었던 시기는 짧습니다. 몇달정도?
그 나라에서 정착을 하고 사는게 아닌 이상,그렇기 때문에, 그 나라 속속들이 알기엔 한계가 있을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차가 있고, 인터넷이 있는 편한 세상이 아니던 교통시설이 열악하던 과거엔 더더욱 그렇구요.
옛날엔, 외국경험을 해볼수 있었던건 상인들이나, 외교관들 같이 특수한 신분계층이 아니면 하기 힘들었죠. 박제가나 김인겸 모두 사신행렬에 속하여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한 것입니다.
이 분들이 보고 느낀 것을 읽되, 위에서도 말했듯이 저자의 주관과 그 나라의 짧은 경험만을 맛보았기에 겉면위주로 봤을수도 있단겁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조선이 가난했냐?고 물어보셨는데,
사실, 이건 산업혁명 후에 산업국가들이 농경국가를 깔때 흔히 가난하다던가. 미개하다던가 잘 까는 레파토리죠. 특히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조선은 가난하고 미개하니 문명국인 우리가 보호해 주겠다는 선전을 많이 했기에, 그런 인식이 박혔다고 생각합니다.
뭐-상대적으로 청, 일본에 비해 조선이 가난하게 보일순 있다고 생각합니다. 걍- 중국이야 고대부터 물량빨 강한 나라니까 넘어가고, 일본도 에도막부 시기엔 기본적으론 쇄국이나, 한편으론 도자기 수출하고 국부를 늘린것으로 압니다. 우리나라도 영정조 시기엔 상업이 번창했으나, 사람들 인식이, 흔히 조선은 유교 국가라서 가난할 것이다고 무턱대고 그런 이미지로 생각하죠. 뭔가 강대국인 청일에 비해 우리가 밑져보이는 기분이랄까? 뭐, 편견일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도 자신감 없고, 무지한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조선이 세계에서 하위권에서 놀던 가난국이냐? 물으신다면 그건 아닙니다.
현대gdp 개념을 조선에 그대로 적용할순 없겠으나,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자인 제임스루이스 교수는 2007년 ‘Research in economic history vo 24'에서 1780년~1809년까지의 조선 숙련노동자의 하루 임금(쌀 8.3kg)은 이탈리아 밀라노 숙련노동자 하루 임금(빵 6.3kg)이나 영국 숙련노동자 하루 임금(빵 8.13kg)을 상회하였고 이는 영‧정조시대 조선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잘사는 나라였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영국의 경제학자인 앵거스 2001년 OECD의 발행물로 발간한 ‘Development Centre Studies The World Economy A Millennial Perspective’에서 1900년 조선의 1인당 GDP는 $850였으며 이는 세계27위이고 이 시기 영국은 $4593로 세계 1위, 일본은 $1135로 세계 24위, 중국은 $652로 35위였다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청나라는 제가 잘 모르니 넘어가고...일본 이야기가 영 괴랄한데요.
도쿠가와 막부 집권기인데. 그 시대면 일본 미인의 조건중 하나가 그 악명높은 흑치입니다. 이빨 까맣게 칠하고 다니는거. 미적기준이 판이하게 다른 서양인들조차 아름답다며 농부 딸내미를 귀족 아가씨로 착각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게 조선 여성입니다. 그런데 그런 여성들 보고 살던 조선인이 이빨을 까맣게 칠하고 생활하는 일본 여자들을 보고 아름답다며 헤벌레한다...? 상식적으로 이게 말이 되나요?;;
말도 안되는 소리네요. 위에 마이미키님이 잘 설명해 주셨듯이, 당시 청나라가 경제규모로 따진다면 세계 최고수준이긴 했으나 박제가는 확실히 중국빠돌이 맞습니다. 좋게 말하면 중국 보고 배우자인데 솔직히 거의 신봉수준까지 갔죠. 그리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도 이후 일본이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위의 블로그처럼 오바 떨 수준은 아니죠. 누군가가 비하를 목적으로 일동장유가에서도 간추려서 저런 말을 뽑아서 보여준 거 맞습니다.
저양반 블로거 이전부터 조선을 희한하게 까대는게 이상하다 싶더만 저 글의 원문 왜곡까지 쳐해서
까대는 것 보고 진짜 전형적 잽뽕스럽다는 생각이 확 들었던.
1764년 1월 22일 오사카
100 만채는 정도는 될 듯한 집의 모두는「기와 지붕」이다. 굉장하다. 오사카의 부호의 집은「조선의 최대의 대저택」의 10배 이상의 크기로, 구리 지붕에,내부는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 사치스러움은 비정상이다.도시의 크기는 약 40 km 이며, 그 모두가 번영하고 있다.믿을 수 없다.중국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이란, 사실은 오사카 였다. 세상에, 이와 같이 훌륭한 도시가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서울의 번화가의 10000배의 발전이다. 북경을 본 통역이 통신사도 있지만 북경의 번영도 오사카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한다.
더럽고 어리석은 피를 가진 짐승과 같은 왜놈이 중화주의 시대에, 이 토지에 왔다. 그리고 2000년간, 평화롭게 번영해, 하나의 천황가를 존속시키고 있다. 한심스럽고, 원망스럽다.
>>> 실제 원문내용
마농수의 숙소 곁에 높은 난간 위에 앉아 사면을 바라보니,
지형도 기절하고 인호도 많을시고 백안이나 되어 뵌다.
우리나라 도성 안은 동에서 서에 오기 십리라 하지마는 채 십리가 못되는데,
부귀한 재상들도 백간집이 금법이요, 다 모두 흙기와를 이었어도 장타는데,
장할 손 왜놈들은 천간이나 지었으며,
그 중에 호부한 놈 구리기와 이어놓고, 황금으로 집을 꾸며 사치키 이상하고,
남에서 북에 오기 백리나 거의 되되, 여염이 빈 틈 없이 빽빽이 들었으며,
한 가운데 낭화강이 남북으로 흘러가니, 천하에 이러한 경 또 어디 있단 말고?
북경을 본 역관이 행중에 와 있으되, 중원의 장려하기 이에서 낫잖다네.
이러한 좋은 세계 해외에 배판하고, 더럽고 못쓸씨로 구혈을 삼아 있어
주평왕 때 입국하여 이제까지 이천년을 흥망을 모르고서
한 성으로 전하여서 인민이 생식하여 이처럼 번성하니,
모를 이는 하늘이라. 가탄하고 가한이라.
1764년 1월 28일 쿄토
거리의 번영이 오사카에는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천황이 사는 도시이며, 매우 사치스러운 도시다. 산의 모습은 용장, 강은 평야를 둘러싸 흘러 비옥한 농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
이 풍부한 낙원을 왜인이 소유하고 있다. 분하다.「황제」이나「천황」를 자칭 해, 아이나 손자에게까지 불리고 있다.분하다.
이 개와 같은 왜인을 모두 소탕 하고 싶다. 이 토지를 조선의 영토로 하고, 조선왕의 덕으로 예절의 나라로 만들고 싶다.
>>> 실제 원문내용
여염도 왕왕있고, 흔할 손 대밭이다. 토지가 기름 져서 전답이 매우 좋네.
이십리 실상사가 삼사상 조복할 때 나는 내리쟎고, 왜성으로 바로 가니,
인민이 부려하기 대판(오사카)만은 못하여도 서에서 동에 가기 삼십리라 하는 구나
관사는 본룡사요, 오층 문루 위에 열 아문 구리 기둥 운소에 닿았구나.
수석도 기절하고, 죽수도 유취있네. 애황이 사는 데라 사치가 측량 없다.
산형이 웅장하고 수세도 환포하여 옥야 천리 생겼으니, 아깝고 애닳을 손
이리 좋은 천부금탕 왜 놈의 기물되어 칭제 칭왕하며 전자 전손 하니
개돝같은 비린 유를 다 모두 소탕하고 사천리 육십주를
조선땅 만들어서 옹화에 목욕감겨 예의국을 만들ㅤㄱㅗㅍ다.
1764년 2월 3 히나 후루야
거 리의 번영, 아름다움은 오사카와 같다. 굉장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인구가 많음, 토지의 풍부함, 가옥의 사치스러움…이 여행의 최고다. 난징에도 없는 풍경이다.조선의 수도도 훌륭하지만, 나고야와 비교하면, 매우 처량하다. 사람들의 아름다움도 최고다.
1764년 2월 16일 에도(도쿄)
좌 측에는 집이 늘어서, 우측에는 바다가 퍼져 있다. 산은 전혀 보이지 않고, 비옥한 토지가 무한하게 퍼지고 있다.누각이나 저택의 사치스러움, , 사람들의 활기차, 남녀의 화려함, 성벽의 아름다움, 다리나 배….모두가 오사카나 쿄토에서 삼배는 우수하다. 이 훌륭함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일은, 나의 재능으로는 불가능하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나고야와 같다.
환곡 1000만석은 쌀로 환산하면 600만석 정도가 되는데, 중앙과 지방을 합한 1년 세입이 400만석 정도였으므로 조선왕조는 국가재정보다 더 큰 규모의 곡물을 저장하고 있었던 셈이다. 같은 시기 1790년대의 중국의 경우에 상평창(常平倉), 의창, 사창(社倉)에 저장한 곡물이 쌀로 환산하여 2300만석이었다. 곡물의 총량은 중국이 더 컸지만 중국의 인구가 3억인 것에 비하여 당시 우리나라는 1600만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1인당으로 계산하면 중국의 5배나 되었다. 국가가 저장한 곡물량으로는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이 틀림없다.
돈 받고 파는 책도 좋은 책을 만나려면 수백권을 거쳐야 하고
이름을 걸고 주장하는 논문도 그나마 내용이라도 있는 것을 찾으려면 몇 달, 몇 년인데요
하물며 아무나 적고 아무나 보는 블로그 내용이라면 어떨지...
그래서 차라리 알려진 책이나 보는 것보다
이렇게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게시판이 운영만 잘 된다면 좋아 보입니다.
임진왜란때 동원한 군대만 봐도 일본은 배만 2천척가량 우리는 120척정도...원래 상대가 안되었기에 기습과 매복 화포를 이용한 공격만 했음. 백병전에서 왜병 한사람이 조선병사 10명을 상대할 정도였고. 당시 일본이 그정도 함선과 군대를 동원했다면 경제력 또한 그정도 격차가 아닐지...
이렇게 화두가 되어 글을 올립니다.
블로그 필자 입니다.. 해당 블로그 글귀는 정보라고 보기보단 유머에 가깝습니다.
유머의 시각으로 봐주세요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성 내용은 kbs역사 저널 프로그램 흥선대원군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시청 후
또한 개인적인 생각을 작성한 것입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