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그렇지만 백제의 영토는 실제로는 훨씬 더 넓었다. 백제는 서울,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황해도뿐 아니라 바다 건너 중국의 일부까지 점령했다. 국사 교과서에서는 백제가 중국에 '진출'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점령'이었다. (중략)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따르면, 백제 근초고왕近肖古王은 평양에서 고구려군을 격퇴하고 고국원왕古國原王을 전사시킨 뒤 도읍 이전을 단행했다. 백제 본기에서는 새로 옮긴 도읍이 한산漢山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산은 한성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한산은 곧 한성이나 마찬가지다. (중략)

김부식이 공정한 역사가였다면 '백제가 황해도 재령으로 한성을 옮겼다'고 기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백제가 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라고 함으로써 후세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황해도 재령이 백제 도읍이 된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백제가 북으로 팽창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성에서 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고 기술했을 수 있다. 재령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는 재령도 한성으로 불렸으니 '한성에서 한성으로 옮겼다'는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본 셈이다. 이처럼, 김부식은 백제의 중심지가 한때 황해도였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전성기의 백제는 황해도에 거점을 두고 북진을 추진하던 나라였다.

백제의 영토는 중국에도 있었다. 이 점은 중국 역사서인 <송서宋書>, <양서梁書>, <남사南史> 등에 기록되어 있다. <송서> 이만夷蠻 열전에서는 "고구려는 요동을 빼앗고 백제는 요서를 빼앗았다"고 했고, <양서> 諸夷 열전에서는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을 소유하고 직접 백제군을 두었다"고 했으며, <남사> 이맥夷貊 열전에서는 "고구려가 요동을 빼앗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을 소유하고 집접 백제군을 두었다"고 했다. <송서>에서는 백제의 중국 영토를 요서라고 단순하게 표현했지만, <양서>나 <남사>에서는 요서군 및 진평군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요서는 요하강 서쪽을 가리키는 것으로 지금의 요령성(랴오닝성) 서부 지역을 뜻한다. 중국 땅에 설치된 군郡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군보다 훨씬 더 넓었으며, 심지어는 대한민국의 도를 몇 개 합친 것보다 더 큰 경우도 많았다. 백제는 이런 군을 지금의 중국 땅에 두 개나 두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