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의 화지산 서쪽 사면부 전경. 건축물 축조를 위한 대지조성 흔적과 건물지 유구 등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 제공- 부여 화지산유적 발굴 성과
건축 위한 대지조성 시설 등
당시 건물지 유구 대거 확인백제의 도읍이 지금 충남 부여였던 사비(泗비)시대는 문화의 황금기로 평가받는다. 당시 부여는 중국과 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문화의 ‘허브’였고, 백제금동대향로, 황금사리병 등 세계적인 명품도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그러나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수도 부여가 함락되며 패자의 역사는 왜곡됐고, 문화적 우수성도 그 빛을 잃었다. 사비시대의 백제문화는 그래서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 있다. 그만큼 미발굴된 채 땅속에 잠들어 있는 문화재가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최근 부여군과 (재)백제고도문화재단이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시행한 부여 화지산유적(사적 제425호) 발굴조사에서 백제 사비기 건물지의 흔적 등 다수의 유구가 발굴돼 주목을 받고 있다. 26일 문화재청(청장 김종진)은 화지산 정상부와 남서쪽 사면부 일대에 대규모 대지조성시설(건축물을 축조하기 위해 흙을 되메우는 시설)과 백제 시대 초석 건물지 등의 유구가 확인됐다고 밝혔다.부여 화지산유적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부소산성, 관북리 유적 등과 함께 백제 사비기의 중요한 유적이다. 예로부터 이궁지(異宮地), 정자인 망해정(望海亭)과 어정(御井)이 있었다고 전해져 백제 사비기의 중요 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화지산유적은 2000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한 긴급발굴조사에서도 초석 건물지, 벽주(壁柱) 건물지(외곽에 벽을 돌린 형태로 벽 사이에 기둥을 세운 건물지 ), 기단유구, 목책시설 등 다양한 백제 시대 유구가 확인돼 2001년 1월 사적 제425호로 지정됐다. 이번 조사에서는 또한 통일신라 시대 화장묘와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토광묘들과 백제 개배(蓋杯, 뚜껑이 있는 접시)조각, 통일신라 화장묘에서 사용했던 질그릇과 뼈단지, 고려의 도자기 조각들도 나와 화지산 일대가 백제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여러 시대를 거치면서 꾸준히 사용되었던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화지산은 그 가치에 비해 아직 고고학적 조사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2018년에는 정밀발굴조사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사비백제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심 유적을 발굴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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