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말해왔지만 역사는 유물 캐내서 연도측정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과학이 아니라
현재 역사공동체(국가,민족)의 집단적으로 구성된 과거기억, 그리고 정체성, 세계관을 형성하는 서사의 틀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가 역사학임.
단언하지만 역사는 과학이 아니라 '서사'입니다. 이 말의 핵심을 간과하거나 자신이 모른다고 넘겨짚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실적인 것을 가지고 역사 논쟁해야 한다'라고 우기는 건 역사가 가지는 기능에 관해서 조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라는 방증이죠.
역사는 과거에 어떠했는가를 따지는게 본질이 아니라 현재 사람들이 과거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가 본질입니다.
여기서 파생적인 의문이 나오죠.
그럼 과거는 어떻게 기억되게 만들어야 하는가? 역사는 서사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달려 있어요. 과거의 사실, 기억의 단편, 사료 들을 조합해서 어떻게 공동체가 흥망성쇠했는가의 스토리를 짜내는 걸 말합니다. 식민사관처럼 자국사를 극도로 비하해서 스토리를 만들고 이걸 과거기억으로 삼는다면 국가, 민족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게 되는지는 뻔한 사실이죠. 반대로 민족사학처럼 자국사의 위대한 부분을 되살려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사관도 있습니다. 중요한건 '서사'입니다.
공동체(나와 우리 자신)이 어떻게 과거로부터 살아왔었고 현재에 존재하고 있으며 미래를 나아가는가의 연대기를 '서사'라는 방식으로 푸는것이 역사가 하는 일이었고 이런 시간의문=의식에 자리잡게 되어서 사회여론, 개인의 세계관을 구성하게 되는 겁니다.
고려가 만주를 먹었다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생각이 들고 현실적인 역사 논쟁을 운운할 거면 역사이야기는 그만 두시고 나와 세계경제에 관해서 토론하면 됩니다. 저는 언제나 받아쳐드릴테니까요.
예를 들어서 고려가 만주를 경영했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고려가 정말로 그걸 했는가의 여부보다 한반도,만주를 둘러싼 정치지형, 세계관에 변경을 주는걸 말하는겁니다. 식민사관이 제공한 역사카탈로그를 보면 한국사는 반도내에서 머물러 있고 여기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의식/무의식적으로 한국의 영토, 이익, 국민, 주권의 한계를 암묵적으로 압록-두만강으로 삼는 버릇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압록-두만이 절대적인 선인것처럼 여겨지는 세계인식이 나오게 되죠.
여기에 백제요서경략, 고려의 만주경영, 조선의 간도를 등장시키고 환기를 하고 변화를 준다면 압록-두만의 절대적인 영역이 침식되고 단지 동아시아 만주와 한반도라고 불리는 더 큰 영역내에 있는 강이라고 인식 할 겁니다. 이미 한반도내에서 통일된 정권이 오랫동안 나온 지금에 와서야 금강, 낙동강, 영산강, 섬진강, 한강을 민족, 이익, 국가, 주권을 결정적으로 가르는 선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이 없듯이요. 이미 우리는 한반도 전체를 동일문화, 문명이라고 인식하는 서사를 받아들였기에 이런 인식이 있는겁니다.
결국 답은 이렇게 나오죠.
어떻게 서사를 짜야 우리나라사람들의 역사인식에 변화를 주고 세계관을 지배할 것인가?
실질적인 문제는 이겁니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과도 일맥 상통하는게 있어요. 역사의 주류영역을 지배하고자 하는 진지싸움.
그러니까 여기서도 식민빠VS환빠로 싸우는 겁니다. 이 지겨운 싸움질이 과거 역사가 어떠했는가를 확정하고 거기에 만족할려고 싸우는게 아니에요. 이 싸움질의 진짜 목적은 현재 한국인들의 역사, 과거, 국가, 영토에 관한 관점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의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