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요동쪽 점령전에 소고구려국이라는 부용국이 있었다고도 하죠. 당에서 지배하기 힘드니까 고구려 왕족을 보내서 지배하게 했던 국가죠. 그리고 나중에 발해가 팽창하면서 흡수 되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초반에 한사군의 경우에 현재 논란이 많아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고 동예의 경우 책에서 볼때는 항상 옥저랑 같이 나와서 동예와 옥저가 저는 나란히 있을줄 알았는데 여기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인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초반 고조선이 너무 작은게 아닌지요? 한나라에게 요서에서 밀려나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위 첫 지도에는 요동한정으로 나와있군요.
<1968년 역사학자 천판(陳槃)이 펴낸 ‘춘추대사표열국작성급존멸선이(春秋大事表列國爵姓及存滅선異)’라는 책이었다. 기존 사서를 근거로 중국 중원에 산재했던 춘추시대 170여 소국의 역사를 비정한 역사책인데, 바로 선우라는 항목이 있다.
“선우는 일명 중산이라 한다. 회남자는 우(虞)는 혹 우(于)라 했다. 선우(鮮于)는 그 선조가 자성인데(其先子姓), 기자는 조선에 봉하고(以箕子封朝鮮), 기자의 둘째 아들은 우(于·핑산으로 추정)에 봉했다. 여기서 자손들은 조선의 선(鮮)과 봉지 우(于)를 따서 선우(鮮于)씨라 했다.(子孫因合 ‘鮮于’爲氏)”(천판)>
은나라의 후예 어쩌고 금석문이 발견되었고 여기에 기자의 후예
어쩌고로 이 선우씨의 유래가 참 재미있고 눈에 확띄는 대목이 선자가 조선의 선자와 봉지의 우자가
1. 예맥족 거주지역 안에 조선이 있다?
아니죠.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조선은 9이족 9개 국가로 이루어진 나라 입니다.
고로 조선⊃조선, 고례, 시라, 동부여, 북부여, 북옥저, 남옥저, 예, 맥 이렇게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선은 첫번째 지도 보다 영토가 더 커야되고, 예족과 맥족 거주지는 조선영토 보다 작아야 합니다.
사기 조선열전에 보면 한무제가 공격한 위만조선은 발해만에서 산동반도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그곳이 위만조선 즉 기자조선이 있던 지역이라는 것이죠.
그러면 기자/ 위만 조선은 고조선 영토 끝자락에 위치를 한 곳이니
고조선의 영토는 산동반도, 발해만, 만주, 한반도 북부 까지가 고조선의 영토가 됩니다.
지금의 북경 까지도 고조선 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는데...
2. 조선 영토가 작아지고 부여, 옥저가 나온다?
1번에서도 말했지만 조선이 유지되고 부여, 옥저가 나오는 겁니다.
조선이 건국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명성왕이 예족, 맥족 거주지에서 부여를 건국하는 겁니다.
흔히 동명성왕이 예족, 맥족 거주지에 나라를 세웠다고 부여인들이 예맥족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고구려비에 보면 고구려인은 고리족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시말해 고리족 동명성왕이 예족, 맥족 거주지에 정착해 부여를 세우고
후에 동부여, 북부여로 나뉘며, 고구려가 되는 겁니다.
지도에 보면 고조선과 예족, 맥족, 부여, 옥저가 전부 별개의 국가로 그려져 있는데
전부 잘못된 겁니다.
3. 조선 남쪽에 진나라가 있다?
기록에 조선 동쪽에 진이 있다고 했는데 한반도로 비정하면 조선 남쪽이 되므로 기록과 틀리다는 정도만 알뿐
자세히 알지 못하니 넘어 갑니다.
4. 위만조선과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
이건 1981년 국회 공청회에서 이미 깨진 내용인데도 강단사학에서 아직도 가르치고 있죠.
당시 강단사학과 한빠와 유사학자로 불리는 역사사학자 까지 해서 6명의 학자들이
사서와 유물로 토론해 강단사학은 이미 깨졌던 내용 입니다.
당시 공청회 기록이 궁금하시면 국회 홈페이지에서 내려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위만 조선과 전쟁을 한 한무제 때 기록인 사기 조선열전과
기자조선 후손이라 자처하는 선비족 금석문에는 한사군은 보이지 않습니다.
한사군의 시초가 후한 때 만들어진 전한서에서 부터 나오는데 이게 조작이라는 거죠.
한무제 당시 기록 사기에는 한나라가 전쟁에 져서 한사군이 나오지도 않는데
전한서에 사기 기록 그대로 베껴놓고 사기에는 없던 한사군을 적어 놓죠.
한사군은 위만조선과의 전쟁으로 생긴게 아니라
후대에 생긴걸 한무제 때 위만조선과 전쟁에 승리해 만든 것으로 조작을 했다는 겁니다.
5. 백제 영토는 한반도 뿐 이다?
이것도 1981년 국회 공청회에서 강단사학이 깨졌던 내용 입니다.
이 내용도 1981년 국회 기록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1981년 국회 공청회 결과
교과서에 단군의 조선건국 인정, 대륙 백제설 기록, 한사군 한반도설 삭제 등을 지시 했으나
강단사학계에서 지시대로 수정하지 않았다가
지금에 와서 단군의 조선건국 인정 한가지만 서술어만 바꿔 기록한 것으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