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분의 연구사는 누구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의 양동휴교수님께서
논문을 몇편 내신게 있어서 매우 자세한 수치까지도 나와 있는데요 최근에는
영역을 확대하셔서 "중부유럽 경제사"라는 서적도 발간하시고 ㅋ
기본적으로 흔히 일본이 에도시대 번성했다라는 근거로 내세우는게 2ch에서 전형적으로
한때 일본의 은수출량은 전세계의 30%가 가까웠다 이런 것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막연하게 와 엄청났구나 하는 것인데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물론 이런 폭발적 생산량에 기저에는 당시 조선에서 유출된 연은분리법이 존재했지요 심지어 실록에서도 국가 기밀 기술로 유지했는데 최근에 일본에 유출되어서 걱정이라다라는...기록이 등장)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외부의 학자군들은 바로 페어뱅크스와 같이 중국을 전문으로 연구하던 교수들이었어요 왜냐하면 중국은 청나라 들어서면서 그나마 명백을 유지하던 명나라시대의 지폐나 여러 화폐제도들이 모두 쇠퇴하고 거의 silver로 통일되어 유통되는 은본위제 국가로 화폐정책이 퇴행하고 전세계 신대륙및 유럽 일본을 산지로 하는 은을 무지막지하게 일방적으로 흡수하는 블랙홀이었거든요
그리고 게중에는 일본산 은이 적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경로는 직교역 이전에는
조선의 인삼이나 조선에서 수입하여 중계판매한
중국산 비단의 대가로 조선에서 입수한 은을 청나라와의 무역 화폐로 조선이 사용하여 흘러들어간 경우인데
그 양이 막대해서 그렇고용!!!
본론으로 들어오면 우선 한때 1/3이 아니라 전체 수출량을 우선 확인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1560~1640년에 총 9450ton
1601~1708년에 총 3750ton
그리고 이 총 생산량중 75%를 바로 지배층들이 중국의 비단을 구입하거나
조선산 인삼을 구매하는데 사용한다라는 ...(일본이 조선산 인삼의 종자를 입수해서 수십년에 걸쳐 시도해서 자국화 한게 18c초반인데요 이 때가 바로 은이 고갈되어서 더이상 결제수단이 없었을때)
정리하면 일본의 총 은수출량은 148년동안 13200ton의 75%인 9900ton 그래서
연간 수출량은 66ton이고 이걸 당시 일본 쌀 시세로 따지면 35만석 조선 도량으로 환산하면 70만석이 되죠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모두 지배층이 비단옷을 입거나 몸보신을 위해 조선산 인삼을 구매하는데 사용했다라는 점 ㅋ(여기서는 총생산량대비 수출75%로 생각)
그러면 이제 조선의 대표적인 무역물품인 흔히 이야기하는 고려인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면요 이문제는 이철성 교수님이 대청무역사라는 저서에서 상세히 정리해놓신 것이고 이미 책이 출간된지가17년이 된 것인데
조선에서는 이미 그전부터 대중국 무역의 결제수단으로 인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지만 그후 점차 자연산 인삼이 고갈되면서 곤란을 겪던 와중에 인공재배에 성공하게 되면서 그 교역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요 이건 왕조실록에서 공식적으로만 확인할수 있는 무역량을 정리한 표에용
(각종 밀무역이나 사무역 기록은 모두 배제)
공식적으로 실록에 기록이 등장하는 1797년부터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절정일 당시에는 일년에 공무역에서만 4만근이 수출되는데 연평균으로 따지면 1797~1874년까지 2만근 가량이 되고 여기에 각종 밀무역이나 사무역까지 합산하면 최소 4만~5만근 이라고 교수님께서는 밝히시는데요 이게 당시 가격으로 따지면
어느정도냐면
이건 은과 같이 칭량이 가치의 단위가 아니니 계산식이 조금 다른데 조선내에서 홍삼1근이 70석 그러니까 일본석으로 하면 35석이라고 하면 연평균 2만근일때 일본석으로 하면 70만석 그런데 이걸 조선 상인들이 중국에서 판매할때는 이보다 최소 3.5배에서 7배까지 상승하니 중간치로 5배라고 잡으면 무역액만 당시에 무려 조선식으로는 350만석 일본식으로는 175만석 그리고 최대 호황기때는 연간 무려 일본석으로 따지면
350만석의 수출이 이루어진 금액(어디까지나 공식통계에서만) 일본이 연간35만석일때 ...
그런데 이걸 근거라고 비교하고 있으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