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abo분들이나 역갤분들이 자주 인용하는 몇건의 사례들 즉 조선통신사의 일본에 대해 기록의 근거가 된 좋은목격은 당시 일본 막부가 철저히 2~3년간 준비해서
이루어진 결과물인데 과연 당시의 일본인들이
조선을 어떤식으로 생각했는지 간단히 논문들에서 발췌해 보아용 ^^
(1).일본에서 임진왜란을 통한? 자신들이 조선보다는 무력에서는 우위에 있다라는 인식이 문화까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시점은 18c중반부터 나타나기 시작 그리고 그 근거가 조선에서는
없는 안경을 우리가 수출한다라는 인식(과연 그게 연간 몇개나 되는지는 알수가 없지만 현재로서는)
즉 우리는 조선에 비해서 더이상 문화적 후진국이 아닐수도 있다라는 자각현상이 보임
(서강대/허지은)
(2).다음은 과연 일본인들은 그렇다면 왜 저렇게 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했나를 알수있는 논문인데용
제목은
"문명의 가격" 17~19세기 조선의 일본으로의 사절과 역할과 비용 "이고 작성자는
옥스포드 동양학 연구소 교수이자 일본사학자로 제임스 르위스 입니다
과연 일본인들의 무의식속에 조선이라는 국가는 무슨 의미인가를 탐구하고 있는 부분인데요
결론은 더 문명화된 국가에 대한 선망이라는 분석
일본 최고의 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 이었으며 동시에 국학의 거두인 아라이 하쿠세키의
인생의 결정적 계기는 바로 일개 조선통신사에게 인정을 받았다라는 것
일본이 조선으로부터 왜 그렇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는지에 대한 본질
대마도와 비슷한 규모의 섬인 이키에서 2~3일동안 통신사를 대접하기 위해 사용된 물품
이런 일들이 수십군데에서 반년정도 행해지고 심지어 모든 인프라도 다시 정비하며 동시에
민들을 철저히 통제하여 초라한 구역은 아예 폐쇄 조치를 함
2번째 사례
3번째 사례 비정상적일 정도 이제는..
그래서 400명을 접대하는데 6개월동안 총 들어간 비용은 당시 전체 GDP의
결국 이러한 엄청난 국가적 사업에 의해 선택된 것들을 본 조선통신사의 입장에서는
별세계에 온 느낌이 들고도 남았겠죠 ^^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요구들은 결국 일반 백성들의 희생위에서
가능한 것인데 당시 일반백성들의 삶을 기록한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