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왕님이 평양성을 서술하시면서, 평양성주 장군 검용에 대해 논 하셨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1.평양성주 장군 검용은 어디에 소속된 자인가?
a) 발해인으로 발해에 속한 평양을 다스리던 자이다.
b) 신라인으로 신라에 속한 평양을 다스리던 자이다.
c) 당시 준 독립된 평양지역을 다스리던 군왕과 같은 자이다.
2.현 평양은 왜이리 소홀히 받았는지.....
a) 평양이 고구려의 수도라면 왜? 발해는 저토록 평양을 방치해 놓았는가?
왜 발해의 지리를 적힌 신당서, 요서지리지와 청일통지에 이르기 까지 현 평양에 대해
제대로 된 기록이 없는가?
오히려 현 요양일대가 평양이라는 기록은 찾을 수 있다 - 요서지리지
평양은 당시 신라와 접한 국경지역인데 국경수비의 역할이라도 있었을 텐데, 왜 저토록 방치
되었을까? (하다못해 신라와의 길도, 한반도 동해안의 남해부에 존재했다)
b) 신라 성덕왕이 대동강 이남을 당으로 부터 공인을 받았는데, 현 평양을 다스릴 수 있었을까?
그리고 굳이 대동강을 국경선으로 삼은 이유가 무엇일까? 차라리 평양을 점유하고 말지
그러면 평양 성주 장군 검용은 신라인은 아닌것이 되는가?
c) 평양의 독자적 군왕 같은 존재였다면, 기록이 그토록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
단지, 태봉에 귀부했다는 한줄기사...가 전부
그리고 발해나 신라가 현 평양에 독자세력이 있었다면 그냥 두었을리 만무하다
아니면,,,,원래 이 지역은 낙랑국(실재했다면)의 전통처럼 '독고다이'의 풍습이 강해서
그냥 둔 것 인가?
근대 그 이 후 검용은 어디로 간 것인지.....왕식렴이 평양을 개척할 때도, 이 검룡이란 자의 모습은
등장 하지 않는다.
*현 평양의 모습을 보면, 농업생산량도 좋아 입지도 좋아 뭐 하나 떨어지는 것이 없는데, 완전히 잊혀진
형국이다...
3. 발해의 현덕부
a) 신당서에는 숙신의 거주지(고구려가 아니다. 압록,장령이 고구려 지역으로 명기, 부여, 박
길은 부여지역, 그건 그렇다 치고)로 되어있다.
b) 요서지리지에는 고조선 땅으로 평양성이며, 기자가 봉해 진 지역이며, 공손씨가 한 때 차지했으며,
안동도호부를 둔 지역이라 했는데, 이 현덕부에는 노주, 현주, 철주, 탕주, 영주, 흥주가 소속되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철주는 안시현 즉 안시성이고, 탕주는 한나라때 양평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럼 현덕부가 한반도는 아니라는 말 이다.
c) 청일통지는 현덕부는 길림 오라성 동남쪽인데,,,이라고 적혀있다. 여기도 한반도는 아니다.
아무튼, 모든 사서를 봐도, 고구려의 평양이 현 평양 같지는 않고, 또 이곳을 딱히 중요시 했다는 기록은
정말 어디어도 없고, 평양성주 검용의 기록도 없다.
결론) 현 평양의 역사는 왕식렴 때 부터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것이 사실이다.
현 평양은 도대체 정체가 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