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에서
새누리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필리핀 출신 결혼이주여성 이자스민(35·전 서울시 직원)씨에게 일부 네티즌들이 "불법체류가 판치고, 매매혼이 늘어나겠다"며 공격을 퍼붓자, 결혼이주여성들이 분노와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자스민씨의 당선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혐오' 현상이 확산될 경우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16일 본지가 이 문제에 대해 취재에 나서자 결혼이주여성들은 대부분 이름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 이자스민씨가 당한 것처럼 자칫 네티즌의 공격을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번 '이자스민 사건'은 거의 20만명에 달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을 위축시키는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셈이다.
서울 지역 결혼이주여성 센터에서 상담을 하는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씨는 "새누리당도 자스민씨가 결혼이주여성을 대표해서 일을 잘할 것으로 믿고 비례대표로 뽑았을 텐데, (일부 한국인 네티즌들은) 왜 시켜보지도 않고 욕을 하느냐"고 했다. 그는 "한국 사람도 미국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미국에서는 그 사람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왜 한국 사람들은 (자스민씨 당선을) 무조건 반대하느냐"고도 했다. A씨는 "이런 내용이 나가면 나도 공격을 당할 것 같다"며 익명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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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다문화부부 합동 결혼식
올해 이주 9년차인
몽골 출신 B(35)씨는 "자스민씨에게 퍼부은 악성 글들을 읽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들 나빠요. (자스민씨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막말부터 하는지…"라면서 "'왜 이 사람이 국회의원까지 나오게 됐을까'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살고 있을까'에 대한 관심을 먼저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문화가정모임 '아름다우' 회장을 맡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황의순(36·대만)씨는 "자스민씨의 마음이 얼마나 슬플지 결혼이주여성들은 모두 똑같이 느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2002년 한국 남성과 결혼해 세 자녀를 둔 황씨는 다문화모임 회장을 맡아 활발히 활동하면서
TV에도 자주 출연했다. 이후 황씨에게도 "남편이 변호사란다", "몸 팔러 왔다", "세금 혈세 쫙쫙 빼는 다문화가정" 등 네티즌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황씨는 "한국 사회가 다문화 되는 것을 반대하는 카페에 그런 글이 올라오더라"며 "한국 사람들 '다문화'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지만, 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상남도의 한 중소도시에 사는 베트남 출신 C씨는 "자스민씨가 결혼이주여성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되어서 많이 반가웠는데, 한국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너무너무 놀라고 황당했다"며 "요즘 어딜 가나 다문화, 다문화 하는데 결혼이주여성이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그렇게 싫어하고 욕을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결혼 12년차 몽골 출신 결혼이주여성 정모씨는 "자스민씨에 대한 (한국인들의) 공격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데 같은 결혼이주여성인 우리가 보호해줄 방법이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이번 사태를 보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더 열심히 활동해서 더 자리를 많이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