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 유효”
정부는 원칙적으로는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개개인에게 여전히 배상청구권이 살아 있다는 입장이다. 개개인의 인적 피해를 한일청구권협정과 같은 국가 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독일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피해자 600만 명에게 개별적인 보상을 했다는 논리다.
박인환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장은 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일본의 해결을 촉구하는 강력한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국민 개개인의 인적 피해는 국가 간 협상 대상이 아니며, 법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독일이 전후배상을 하면서 유태인뿐 아니라 피해 받은 개개인에 대한 배상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켰다. 박 위원장은 일본의 태도와 관련, “일본은 한국 측 인적피해 규모가 어림잡아 200만 명에 해외 피해자도 120만 명에 달하다보니 그 엄청난 숫자에 겁을 먹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독일은 유태인 피해자가 600만 명이나 됐지만 피해를 보상했다”면서 “독일은 당시 분단상황에서도 했는데, 일본은 세계 경제 2위 대국이면서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앞서 박한철 헌법재판소장도 지난 10월 30일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강연에서 “한일청구권협정은 한·일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이어서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까지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같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개인 청구권 살아있다” 일본 정부 ‘자발적 배상 필요성’ 첫 확인
ㆍ외무성 청문 보고서 단독 입수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이 실체적으로는 남아 있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기업이 중국인 징용 피해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한 ‘니시마쓰건설 사건’과 한국인 징용 피해자 보상 청구권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입장은 민간 차원의 배상 요구나 일본 국회의 입법과정을 통해 해결책을 찾는 데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자발적 배상에 나설 경우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 같은 사실은 경향신문이 24일 입수한 ‘한·일 청구권 문제에 대한 외무성 청문 보고서’에서 확인됐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일본 외무성은 한국인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에 대해 “(중국 니시마쓰건설 사건의 청구권 문제와) 실질적으로는 거의 같다는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니시마쓰건설 사건’은 일본의 전범 기업인 니시마쓰가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배상한 사건이다. 니시마쓰건설은 일본 최고재판소의 권고를 받아들여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했다.
이 보고서는 지난달 24일 일본 사회민주당 핫토리 료이치 의원의 중개로 일본 아다치 슈이치, 가와카미 시로 변호사 등이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을 만나 ‘한·일 청구권 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 외무성에서는 아시아·대양주국 중국·몽골과, 북동아시아과 실무자와 국제법국 국제법과 실무자 등 4명이 참석했다. 보고서를 보면 미쓰비시중공업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소송을 맡았던 아다치 변호사는 모임에 앞서 일본 외무성에 질문을 보냈다. 그는 “니시마쓰건설 사건 판결에서 중국인 피해자의 기업에 대한 개인 청구권이 소송 청구는 불가능하지만 채무는 남아 있다고 보고 기업이나 관계자의 자발적 배상을 권고했다”며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개인 청구권도 이와 동일하게 판단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외무성 관계자들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나 중·일 공동성명에서 말하는 청구권 포기와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 포기는 같은 의미”라며 “소송을 청구할 수 없는 권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과 한국은 전쟁상태에 있던 게 아니긴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중국과 한국 청구권 문제가) 거의 같다는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