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개성시 외곽 만수산 자락에 있는 고려 태조의 황릉(왼쪽)과 중국 베이징 시 팡산(房山)에 있는 금 태조 황릉. 배산임수의 요지에 조성했단 공통점을 지녔다. 장경희 교수 제공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학계 차원에서 금사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고 활발히 진행되는건 좋은 일이죠.
학문적 차원에서 말이죠.
근데, 그게 왜 한국역사에 넣기 위한 거라고 앞서 생각하는건지? 모르겠네요-.-
일본이 제국주의 시절부터 여러 북방사에 손되고 있는건 잘 압니다.
일본 특유의 대륙사관? 만선사관? 뭐 이런것들도 따지고 보면,
대동아 공영권이라고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패자가 되고 싶은 열망에 그런 연구를 정책적으로 하기도 한게 사실이구요.
그에 따르면, 일본사=조선사=만주사=몽골사가 되었죠.
그렇게 확장시키다보면, 어디까지 갈런지 알수 없게 됩니다.
멀리, 돌궐(투르크)까지 형제라고 그러고 위아더 월드가 되는거죠.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주일대를 단절, 단정으로 재단한다? 뭔말인지 모르겠는데-
만주일대를 연구하는거야 좋은 일이죠. 위에서도 말했잖아요.
금사 연구가 활발히 되고 있는건 좋은일이라고, 공부해서 남 주는 것도 아니고
뭐든지 배우고 익히면 좋죠. 학문적 연구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반대할 이유도 없구요.
만주라는 공간 자체가 애초에, 다민족체제였습니다.
거기서, 우리 직계 조상분들도 나오시고, 여진애들, 몽골계통, 기타 퉁구스계통,
여럿 부류가 있었죠. 지금도 있구요.
지리적으로 가깝고, 각 부족들간에는 통혼이나 교류에 의해 섞이기도 했을꺼고,
어느정도 친연관계가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거구요.
한때 같은 나라를 세우기도 했지만, 또 각자 다른 길을 가기도 하고 그러한거죠.
민족이란게 분열과 통합의 연속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구요.
뭐라고 단정짓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순수한 학문적으로 금청사 연구를 반대하진 않아요.
저도 만주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구요.
하지만, 그게 한국역사에 편입시키려고라곤 생각치 않는 편이죠
(확실히 말해두지만. 저는 중국의 동북공정 사관 혐오합니다.)
잽학계에서 동북아 여러 다양한 부분에 관여해서 연관성을 찾고 노력한다?
명분은 그럴싸하죠. 실상은 대략난감이였지만..
그 나라는 섬이다보니,, 대륙에 대한.. 뭐랄까? 호기심과 질투도 묘하게 섞인 동네고/
조선실록이 그때그때 쓰여졌다? 그때그때 쓰여진건 승정원일기고.
실록은 왕이 죽고나서, 왕이 살아생전 그때까지 썼던 사초들과 신하들에게 내린 문장이나..뭐 그런것들을 총합해서 다시 재정리하는 사업이였죠.
실록이 일개 왕이 죽고 나서 쓰여진거라면
정사는 왕조 하나가 망하고 난뒤에
그 왕조에 대해서 총합적으로 내리는 평가를 말합니다.
고려에서 삼국사기를 썼고,
조선초에 지금은 소실된 고려실록을 토대로 고려사를 썼죠.
사실, 요사, 금사는 중국이 정통국가로 여기지 않았기에, 신경도 안쓰다가
원나라 탈탈 승상이 지들처럼 북방민족의 중원 정복왕조였기에, 관심이 있었는지?
이 사람대에 겨우 정사가 나왔지요.
님말대로, 발해가 우리역사에 편입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조선시대에도 고구려까진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었으나,
발해는 胡족계통이라고 낮추어보다? 조선후기에 들어서야 유득공의 발해고가 나왔죠. 발해고는 고려사처럼 정식으로 조선조정이 출판한 관학 정사는 아닙니다.
-考라고 붙은것도 발해에 관한 충분한 자료가 확보되지 않아 정리된 내용이 정확한 역사서로 보기엔 미흡하다고 유득공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으니까요.
다만, 발해를 새롭게 조명하고 환기키켰다는 의의는 가지고 있죠.
발해고를 썼던 정조시대조차 발해가 국사로 편입되진 않다가
본격적으로 발해가 편입된건, 일제강점기때 역으로 부흥한 민족사관과 더불어서인데..
실제로 일제 해방후 한창 민족사관이 대세이던시절 625전쟁으로 중단되긴 했지만, 발해, 금, 청까지 한국사에 넣을뻔한 적이 있지요 ㅋㅋㅋ 손진태 선생이 납북당해 올스돕해서 그렇지-.-
(그렇담. 병자호란은 내전이 되었을까? ㅋㅋㅋ 무척 궁금해지네요;;
민족사학이란게 일제강점기때 불운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것으로 의의는 있지만.. 다소 정신승리 하는 면도 많은건 사실이라고 볼때.. 글쎄.. 이게 막상 실현 되었으면 어떠했을지 자뭇 궁금해지더란 말이죠-.- 뭐 우리땅 중원대륙으로 넓어지니 좋다고 할 사람도 많을거 같긴함ㅋㅋ)
실질, 발해가 국사영역에 있지만, 중국은 또 당근 지들꺼라고 하고,
외국에서 보는 입장은 또 다릅니다.
고구려까진 코리아-때문에, 또 평양이 수도여서 그런가..
한국사란게 어느정도 먹혀들지만, 발해는 외국에서도 애매하게 보긴 하거든요.
그래도, 고구려가 망한지 30년밖에 안되고, 고구려 사람들이 다 어딜 갔겠냐?
빡빡 우겨서,, 국사로 취급하는거지만.. 러샤는 또 러샤대로 발해입장이 있고..
발해도 외국 시각에선 애매한데- 금청사까지 한국사로 주장하면,, 으음..
애네들은 확실히 만주족 지분이 지배적이라고 봐야하고
뭐.. 국내서 금청이 한국사니 뭐니 하는거야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외국학계에 인정받거나 그런건 현실적으로 무척 어려운 일이죠.
워낙, 만청에 대한 연구는 외국학계 연구가 깊기도 하고, 자료도 많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다보니, 중국에서 떼어낸다? 가능성 거의 없습니다.
新만청학-이라고 청나라를 단순히 중국왕조가 아니라, 만주족 시각으로 들여다본다는 새로운 학파가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고 만주어 학습도 중요시 여기는 학자부류들이 있는데..중국학중에 가장 진보적이라는 이 분들에게도 금청사가 한국사라고 한다? 말해주면 미친놈으로 볼듯..
금나라나 청나라나 우리 역사라고 하기는 좀... 지배층이 신라계 였다고 해도 5대손이고 당시에 여진족 추장이였는데 유목민족 특성상 거의 섞여있는 수준인데다가 지배층은 여진계였지만 그밑을 이루는 대부분의 민족은 한족이였으니.. 지배층이 단순이 우리나라계열이였다고 해서 우리역사로 보는건 무리가 있지않을아요? 이런식으로 본다면 위만조선도 중국역사이고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도 일본역사이고 유럽에서도 왕이 없으면 다른나라에서 왕을 선출해오는 경우도 있었으니 단순히 지배계층이 그렇다고해서 우리역사라는건 어폐가 있을듯
뭔가 오해가 있으신거 같은데 금나라의 인구 대부분이 한족인데 지배층이 우리민족과 피가 섞였다고 우리역사라고 하기 힘들다는 말이였어요.. 그리고 금나라는 여진과 발해뿐만 아니라 거란 그리고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던 한족까지 여러민족이 있던 나라인데 우리역사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듯.. 그리고 중원에 정착하고 나서는 유교를 받아들이고 한족도 적극기용하면서 명부의 모든 복장을 송나라식으로 바꿨으며 여진족 스스로가 여진의 문자를 버리고 한자를 더 선호하면서 한족화 되었는데 우리역사라고 하기는 좀... 모르겠네요..
뭐 길게 쓰실필요 없고 중요한부분만 말하자면 북송을 이루던 그 수많은 한족들이 금나라로 엄연히 흡수되었을텐데요? 그리고 해릉양왕은 중요관직에 황족과 여진족 신하들을 내치고 중국인들을 기용했다고 되어있는데요? 그리고 금세종이 한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한족들에게 여진족언어를 쓰게만들고 수많은 책들의 여진어로 번역하게 만들 필요가 없었겠죠.. 그리고 발해가 지배층이며 그계열도 여진족보다 많았다면 왜 고구려어를 사용안하고 여진어를 사용했을까요? 그리고 여진족들이 나중에 가서는 한족화 되어갔다는거는 복장이나 정치제도 등에서 보이고 있고 애초에 금의 세락의 원인에는 여진족의 한족에 대한 차별대우로 인한 갈등의 심화도 포함된다고 보는데 이래도 한족이 금나라를 이루는 민족이 아니였다고 하실껀가요? 그리고 왜 하지도 않은말을 반박하십니까? 제가 언제 아골타가 한족 핏줄이 라고 말했습니까? 저는 피지배층인 대다수의 한족들과 거란족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기 애매하다고 말하는데 지배층이 발해니 뭐니 라고 하면 대화를 하겠다는겁니까 뭡니까... 그리고 보는 관점이 충분히 다를 수 부분이라고저는 생각하는데 무조건 너 틀림이라고 말하는건 뭐하는 태도인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영국 브리타니아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것도 엄연히 영국사에 포함되는걸로 아는데요? 영국의 준 국가라고 불리우는 룰브리타니아의 명칭도 바로 로마의 식민국인 브리타니아이고 자기들 국사를 배울때 포함하는걸로 알고있는데요.?
원래 한족은 황허[黃河]의 중ㆍ하류 유역인 화북(華北) 일대에 분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서쪽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황허[黃河] 강 유역에서 대하(大河) 문명을 개화시켰고, 이곳을 중심으로 점차 중국 중ㆍ남부 지역을 뜻하는 화중(華中), 화남(華南) 지역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리고 그 지방 선주민들을 한문화에 동화시켰다.
한족이 뭐냐고 물으시니 설명을 가져왔습니다 당연히 모르실리는 없을테고 지금 중국에 살고 있는 한족들이 실제한족들이 아니라는 연구결과는 들어봤어도 한족자체가 허구라는거는 처음 들어보네요... 그럼 한나라를 이루던 민족 중국의 토착민족들은 뭡니까? 일단 한족자체를 부정한다면 더이상 말해봐야 소용 없을꺼 같은데 그만하고요 그리고 우리 지금 금나라 이야기 하는거 아닙니까? 왜 청나라 이야기가 나오는거죠? 청나라의 만주족들이 옷과 변발을 강요하는 이유가 바로 금나라의 멸망원인을 금나라의 한족화로 보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금나라가 한문을 사용하고 복장을 남송식으로 했다는거는 역사에 나와있는 사실 아닙니까? 왜 갑자기 만주족 이야기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우리역사라고 하기 더 결정적으로 힘든 것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점이죠.. 혈통은 신라계열의 피가 조금 섞여있을수는 있으나 여진족은 독자적인 언어를 사용했으며 나라를 이룬뒤에도 여진어와 거란어 그리고 중세중국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님 말처럼 발해유민들이 세운 국가이고 발해가 주류였다면 왜 고구려어를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이해가 안되는군요..
'中國'이란 말은 西周 初에 출현한 것이다. 당시의 수도를 가리키고 지역이름이며 지리명사가 아니다. '毛傳'에 "中國은 京師다"라는 것이 가장 적절한 주석이다.
1912년 손문이 중화민국을 창립한 이후 '중국'은 근대국가의 정식명칭으로서의 뜻을 가지게 되었고 정치명사이며 지리명사다. 청말에 많은 나라가 있었고 정식은 아니지만 만청을 합해 중국이라 했다.
다만 정식 문서상의 이름은 '청국'이었다. 예를 들면 '마관조약' 일문판제2조에 "청국은 장차 아래 토지주권(요동반도, 대만팽호) 및 그 위의 성루병기제조소관물을 영구히 일본에 떼어준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옛날에 '중국'은 그 古都 하남의 낙양지구를 가리킨다.
'중국인'이란 낙양지구의 주민을 가리킨다.
한인이라 하면 황제의 자손인데 전설 속의 황제는 낙양분지에서 건국했다.
낙양분지가 중국 고유영토의 전부다. 그 면적은 대만에 비해 오히려 적다.
대만국의 고유영토는 중국의 고유영토에 비해 오히려 큰 것이다.
'중국'은 지역명 외에 한족이라는 인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중국인'이 한족이라면 그 조선(祖先)을 황제로 한다.
그 조선(祖先)이 황제가 아니라면 모두 한족이나 중국인이 아니다. 한족의 원래이름은 화하 혹은 줄여서 하족이라 부른다(這和夏禹의 '夏'와는 무관하다).
예를 들면 "화하가 중국의 예악을 행하지 않으면 이적으로 볼 수 있지만 이적이 중국의 예악을 행하면 중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漢族向為少數民族,早已被眾蕃包圍消滅
한족은 소수민족을 가리키는 것인데 일찍이 주변의 여러 번(다른 새력)에 포위되어 소멸되었다.
금의 역사를 연구하는것 자체는 좋은데
잡스님 댓글을 읽어보면 그이유도 그럴듯 해보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죠
발해유민과 여진족 인구비나 아골타 여러가지
말한 자료가 믿을만한 문헌이나 고고학 자료등의
추론의 근거가 합당한가 의 문제 입니다
혐한 대만인 들이 왜 환국지도를 세계에 홍보 할까요
한국인들 이렇게 날조를 주장해서라도
자국역사를 뻥튀기해서 자위할려고 한다고 폄하하고
조롱하여 국가이미지 추락을 노리는거죠
각종 기원설도 우익 일본놈이나 대만이 만들어서
퍼트린 경우가 많아요
금의 역사도 근거없이 접근했다가 같은소재로
전락할수도 있습니다
잡스님 실망입니다
지금 논의가 아닌 저격글 링크 해서 언플을 하시는데
이는 부끄러운 처사입니다
요즘보면 게시판에서 자신이 마치 구국의 영웅인냥
글 쓰시는 분들이 간혹 보입니다.
과연 그분들이 실생활에서도 영웅적 삶을 살고있는지
궁금 합니다.
논의는 논의로 가볍게 받아들이고
서로간의 의사개진의 장이 되어야죠
어쨌든 본인게시물 홍보는 감사합니다.
그리고 금을 우리역사에 편승하는 것도
우리 역사학자들이 할만하면
했겠죠 그분들이 잡스님 만 못해서
안하겠어요
인터넷이라고 스스로 너무 위대해지려 마세요
그것도 병입니다
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고 우리역사라고 하는거같은데 신라가 발생한 진한은 만리장성 병마용 진시황릉 같은 대규모 건축사업에 노역을 견디지못해 그들을 피해서 한반도 끝자락에 자리잡은 진나라 노예들이야 그것도 소국연맹 국가 마한에 지배를 받으면서 그 신라 사로국 부족장도 바다를 건너온 야마토계 왜인이고 ㅋㅋ 신라는 부족사회였어 ㅋ 이후에 남하한 부여계 백제 고구려에 선진문화에 영향으로 문명인으로 거듭날수있던거지
후한서 동이전中 [편찬 약 432년~445년]
고구려(高句驪)
동이(東夷)들이 서로 전(傳)하여 오기를 [고구려(高句驪)는] 부여(夫餘)의 별종(別種)이라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칙(法則)이 [부여와] 많이 같다.
동옥저(東沃沮)
읍(邑)과 촌락에는 우두머리(장수,長帥)가 있다.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창을 잘 다루며 보전(步戰)을 잘한다. 언어(言語)·음식(飮食)·거처(居處)·의복(衣服)은 [고]구려와 비슷하다.
예(濊)
[예(濊)에는] 대군장(大君長)이 없고, 그들의 관직으로는 후(侯)와 읍군(邑君)과 삼로(三老)가 있다.
[예(濊)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말하는데, 언어와 법령과 풍속이 대체로 비슷하다.
읍루(挹婁)
그 지역은 산이 많고 험준하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들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서로 다르다.
한(韓)
한(韓)은 세 종족이 있으니, 하나는 마한(馬韓), 둘째는 진한(辰韓), 셋째는 변진(弁辰)이다. (중략)
변진(弁辰) 사람들은 진한(辰韓) 사람들과 뒤섞여 사는데, 성곽과 의복은 모두 [진한(辰韓)과] 같으나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中 [편찬 약 280년~289년]
고구려(高句麗)
동이(東夷)의 옛 말에 의하면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別種)이라 하는데,
말이나 풍속 따위는 부여와 같은 점이 많았으나, 그들의 기질이나 의복은 다름이 있다.
예(濊)
언어와 예절 및 풍속은 대체로 [고]구려와 같지만 의복은 다르다.
동옥저(東沃沮)
그들의 말은 [고]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부분도 있다.
읍루(挹婁)
그 지역은 산이 많고 험준하다. 사람들의 생김새는 부여 사람과 흡사하지만,
언어는 부여나 [고(高)]구려(句麗)와 같지 않다.
한(韓)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은 [외지(外地)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분명하기 때문에 마한(馬韓)의 제재를 받는 것이다. (중략)
변진(弁辰)은 진한(辰韓) 사람들과 뒤섞여 살며 성곽(城郭)도 있다. 의복(衣服)과 주택은 진한(辰韓)과 같다.
언어(言語)와 법속(法俗)이 서로 비슷하지만,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방식은 달라서
문의 서쪽에 모두들 조신(竈神=조왕신:부엌신)을 모신다.
진서 동이열전中 [편찬 약 644년]
진한(辰韓)
진한(辰韓)은 마한(馬韓)의 동쪽에 있다. [진한 사람들은] 스스로 말하기를,
진(秦)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로서 [진(秦)의] 고역(苦役)을 피하여 한(韓)에 들어왔는데,
한(韓)이 동쪽 지역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성책(城柵)을 세웠으며,
언어는 진(秦)나라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혹은 진한(秦韓)이라고도 하였다.
양서 동이열전中 [편찬 약 629년]
고구려(高句驪)
언어나 생활 관습은 부여(夫餘)와 같은 점이 많았으나, 그들의 기질 및 의복은 서로 달랐다.
백제(百濟)
지금의 언어와 복장은 고(高)[구(句)]려(驪)와 거의 같지만, 걸을 때 두 팔을 벌리지 않는 것과
절할 때 한 쪽 다리를 펴지 않는 것은 다르다. (중략)
그 나라 말에는 중국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秦)나라와 한(韓)나라의 습속(習俗)이 남은 때문이라고 한다.
신라(新羅)
신라(新羅)는 그 선조가 본래 진한(辰韓)의 종족이었다. 진한(辰韓)을 진한(秦韓)이라고도 하는데,
[양(梁)나라와는] 서로 1만리 쯤 떨어져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진(秦)나라 때 유망인(流亡人)들이 역(役)을 피하여 마한(馬韓)으로 가니, 마한에서는 동쪽 땅을 분할하여 그들을 살게 하고, 그들이 진(秦)나라 사람인 까닭에 그 나라 이름을 진한(秦韓)이라 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언어와 물건 이름은 중국 사람이 쓰는 것과 비슷하니 나라(국,國)를 방(邦)이라 하고, 활(궁,弓)을 고(孤), 도둑(적,賊)을 구(寇), 연회석에서 술잔을 돌리는 것(행주,行酒)을 행상(行觴)이라 한다.
서로 부르는 데는 모두 도(徒)라고 하여 마한과 같지 아니하다.
또 진한(辰韓)의 왕(王)은 항상 마한(馬韓) 사람을 세워 대대로 이어 가고, 진한 스스로 왕을 세울 수 없었으니,
그들이 분명히 흘러 들어와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한(辰韓)은] 항상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
위서 동이전中 [편찬 약 559년]
물길국(勿吉國)
그들은 굳세고 흉폭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가장 강하며, 언어도 그들 만이 다르다.
남사 동이전中 [편찬 약 659년]
고구려(高句麗)
언어나 생활 관습은 부여(夫餘)와 같은 점이 많았으나,그들의 기질 및 의복은 서로 달랐다.
백제(百濟)
언어와 복장은 고구려(高[句]麗)와 거의 같다.
그 나라 말에는 중국의 말이 뒤섞여 있으니, 이것 또한 진(泰)· 한(韓)의 유속(遺俗)이라고 한다.
신라(新羅)
그들의 절하는 방법과 걷는 모양은 고구려(高[句]麗)와 비슷하다.
문자(文字)가 없으므로 나무에 금을 새겨 신표로 삼는다.
의사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소통할 수 있다.
북사 열전中 [편찬 약 659년]
물길
물길국(勿吉國)은 고구려(高句麗)의 북쪽에 있는데, 말갈(靺鞨)이라고도 한다.
읍락(邑落)마다 각각 우두머리가 있으며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그들은 굳세고 흉폭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제일 강하며, 언어(言語)도 그들만이 다르다.
신라(新羅)
그들의 언어와 물건 이름은 중국 사람이 쓰는 것과 비슷하니 나라(국,國)를 방(邦)이라 하고,
활(궁,弓)을 호(弧), 도둑(적,賊)을 구(寇), 연회석에서 술잔을 돌리는 것(행주,行酒)을 행상(行觴)이라 한다.
서로 부르는 데는 모두 도(徒)라고 하여 마한(馬韓)과 같지 아니하다. 또 진왕(辰韓)의 왕(王)은 항상 마한(馬韓) 사람을 세워 대대로 이어가고, 진한(辰韓) 스스로 왕을 세울 수 없었으니, 그들이 분명히 흘러 들어와 산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한(辰韓)은] 항상 마한의 지배를 받았다. 진한은 처음 6국(國)이었다가 차츰 나뉘어져 12국이 되었는데, 신라는 그 중의 한 나라이다.
일설에 의하면 위(魏)나라 장수 관구검(毋丘儉)이 고[구]려를 토벌하여 격파하니, [고구려인들은] 옥저(沃沮)로 쫓겨 갔다가
그 뒤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이 때에 따라가지 않고] 남아 있던 자들이 마침내 신라(新羅)를 세웠다고 한다.
[신라는] 사로(斯盧)라고도 한다. 그 나라는 중국· 고[구]려· 백제의 족속들이 뒤섞여 있으며, 옥저(沃沮)·불내(不耐)· 한(韓)·예(濊)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 나라의 왕(王)은 본래 백제(百濟) 사람이었는데,
바다로 도망쳐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그 나라의 왕이 되었다. 당초에는 백제에 부용(附庸)하였는데, 백제가 고[구]려를 정벌하여
[고구려 사람들이] 군역(軍役)을 견디지 못하고 무리를 지어와 신라에 귀화하니, [신라는] 마침내 강성하여졌다. 그리하여 백제를 습격하고, 가라국(迦羅國)을 부용국(附庸國)으로 삼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원전 57년 기사中
이에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들이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개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첫째는 알천의 양산촌이라 하고, 둘째는 돌산의 고허촌이라 하고, 셋째는 취산의 진지촌[혹은 간진촌이라고도 한다.]이라 하고, 넷째는 무산의 대수촌이라 하고, 다섯째는 금산의 가리촌이라 하고, 여섯째는 명활산의 고야촌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진한 6부가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원전 20년 기사中
이보다 앞서 중국 사람들 중에 진(秦)나라가 일으킨 난리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다가, 동쪽으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가운데의 대부분은 마한 동쪽에서 진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었는데, 이 시기에 이르러 점점 번성하자 마한이 이를 싫어하여 이와 같이 책망했던 것이다.
→ 진나라가 일으킨 난리 : 약 기원전 220년 경
→ 고조선의 멸망 후 유민 : 약 기원전 108년 경
→ 대략 결론 :
동이 중에 언어 면에서 부여=고구려=옥저=동예=백제는 비슷하고 오직 읍루(물길, 말갈, 여진)만은 다르다.
한의 3종족, 마한/변한/진한의 언어는 많이 비슷하나 다른 점도 있다.
특히 변한/진한은 종족 구성이 외지에서 많이 유입되어 중국 말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5~6세기 남북조시대에는 언어면에서 고구려=백제는 거의 동일하지만, 백제 말에는 중국 말이 포함되어 있으며
신라 또한 중국 말이 포함되어 있으나, 중국에서는 백제의 통역이 필요했다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와 신라도 어느 정도 말이 통했다고 추정된다.
금사 숙종 파자숙 본기를 살펴보면 여진족과 거란족 사이에 통역관이 있던 점으로 보아 거란족과도 유별하였으며,
고려사 문종조 나갈촌 전투를 살펴보면, 역시 통역관의 존재가 있어 고려와도 유별하였다.
과거에는 어찌했든간에 조선시대에는 이미 여진족을 오랑케로 배척하면서 서로 융화되지못하는 문화적 차이가 생겨나면서 전쟁도 빈번하게 자주일어났었다 이후에 만주족을 통합한 건주여진 후금(청나라)도 조선과 전쟁 병자호란이 있었고 결과적으로 중국에 마지막왕조가 청나라이기도하고 현재 만주는 전부 중국땅이기때문에 중국역사라고밖에 생각할수가없다 그것을 조선과 청나라 남북국시대라던지 기가찰노릇이다ㅋㅋ
그런것도 모르고 저가 중국에 소수민족을 언급하는것은아니죠 그저 중국은 한족과 여러민족을 포괄한 다민족사회이구 대한민국은 조선왕조가 마지막왕조로 다른 이민족에 왕조를 아우르는 현재 중국같은 큰나라가 아니라 이말입니다 그래서 단일민족적인 우리 기준으로 중국역사를 놓고 얘기하는게 아닌거같다 이말입니다
후한서는 당시에 한반도를 비롯한 동이지역을 집적 순례하면서 기록한 사료이고 삼국유사 삼국사기는 특별한 역사적 기록같은것을 제외하고 몆세기 지난 후에 고대사를 편찬한 중세시대 사서로 단군이라든지 하나에 기원으로 짜맞춘 느낌은 분명 신빙성이 떨어지지 단군에 나이가 몆살인줄암?ㅋㅋㅋ
전문 역사가들이 들음 말도 안되는 코방귀 뀔 얘기를 가지고,
혼자 첨부터 끝까지 발악하는게 안되 보여 한마디 한거임..
여까지..
댁하고 말 섞으믄 끝없어..
(그러고, 시간 나면 게티스버그, 워털루, 영광의 깃발 같은 영화 한번이라도 봐보고 나서
라인배틀이 겜이란 소릴 하길.. 답답하리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줄 세워 싸움.
영화제작자들이 역사적 전투를 고증한 것이고 라인배틀은 겜이 아님,
혼자 모름 모른 것이지, 자기가 모르면 무조건 '겜'이고 '애니'래..)
댁이 배껴온 것에 먼 내용이 있는대요??
기나 고동이나 다 아는 아골타가 신라계라는 소리밖에...
대단한 내용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얘기하시네.
아골타가 신라계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금이 우리 역사라면..
오스트리아인 히틀러의 독일 2차대전사도 오스트리아 역사여야 하는데..
오스트리아가 그렇소?
두 나라가 합병까지 했지만 오스트리아인 히틀러가 벌인 것은 독일의 역사요.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인이지만, 독일의 일원으로 전쟁을 벌렸기에 독일 역사이고,
아골타가 비록 신라계지만 여진의 일원으로 금을 세웠기에 여진의 역사요.
발해인이 금 외척 역할 좀 했다고 금이 발해와 같은 우리 역사라면..
몽골 외척을 끼고 몽골 군대 도움을 받은 청나라 역사도 몽골의 역사여야 하는데..
어뜬 미친늠이 청나라 역사를 몽골의 역사라고 한답니까..
그냥 출신지는 출신지고 외척은 외척일뿐입니다.
내가 한국사람이지만, 아프리카 가서 대통령 한다면 그나라 역사요.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나라를 세우고 통치하고 고구려 문화를 가졌기에'
우리 역사요..
금하고 다른 점이 그것이오.
외부인이 보는 한 꼬락지 시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려, 조선 역사를 통틀어 봐서
고려인들이 조선인들이 보편적으로,
금과 청을 동족으로 보고 있었다고 인정할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금,청사의 한국역사로의 편입필요하다고 봅니다.......분명히 (말갈=여진=만주족)은 만주에서 우리와 같이 수천년을 같은 국가와 문명을 이루고 살았죠...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가 모두 이들과 함께 국가를 구성한 수천년의 역사고....그래서 삼국사기를 읽다보면 말갈족이 수백년간 한반도의 여러곳을 공격한 기록이 많이 보이죠...엄연히 고구려가 있는데 이들이 어디서 왔을까요...이들이 고구려지방민이기에 가능한거죠...즉 이들도 고구려인이자 고구려군....고구려중앙정부의 명령으로 신라등을 공격한거죠...
다만 금나라가 북송점령과 이후 만리장성이남으로 넓어진 영토로 중원을 관리하기위해 북경으로의 천도과정에 따라 많은 발해인이 하북과 산동으로 이주되면서 만주에 발해인들이 공동화가 심화되고 100여년만에 금나라가 망하면서 만리장성이남으로 이주한 수많은 발해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못하고 만리장성이남에 살게되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민족적정체성을 잃고 동화되면서 정작 고향인 만주에 발해인이 거의 사라졌기에 이런 역사 논쟁이 진행되는거죠....
고조선,고구려,발해가 망해도 백성은 그 자리에 거의 그대로 있기에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새롭게 영웅이 출현하면 다시 민족국가를 세우고 그랬는데....만주에서 한민족이 거의 사라지면서 우리의 뇌리에서 만주의 역사도 자연스럽게 한민족의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거죠....
굿잡스, 나와니님 등의 말씀들이 여러모로 가장 옳다고 여겨지는군요. 만법귀일님과 생각이 같은 1인입니다. 다른 분들보다 굿잡스님이 가장 독보적으로 해박하고 옳고 사실적인 지식들과 출중한 설득력을 지니신 반면, 그 반대의 분들은 그다지 옳다고 여겨지지가 않네요. 굿잡스님이나 나와나님 등등의 말씀들이 거진 틀린 거 없이 대부분이 옳다고 여겨집니다. 제 주관으로도 확실하게 금 제국과 청 제국은 우리들 한민족의 역사의 당당한 일원이 맞습니다.
제 1차 남북국시대는 벌해:신라
제 2차 남북국시대는 금 제국:고려
제 3차 남북국시대는 청 제국:조선
애초에 더군다나 읍루족-숙신족-물길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우리들 한민족이며, 서로가 상호간에 동포이며 읍루족-숙신족-물길족-말갈족-여진족-만주족은 우리들 한민족의 일파이자, 100% 완전한 동포입니다. 압록강의 고대 명칭이 바로 읍루강인데, 읍루족이란 현대의 명칭으로는 압록강족에 해당되며, 여진족도...고구려의 끝 글자인 [려&여]와 발해의 전신명칭인 대진의 끝 글자인 [진]을 본따서 여진족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즉, 여진족은 고구려와 발해의 국민이었던 사람들을 일컫던 용어였던 것이지요.
금청사 한국사 복원운동을 여기서 오랫동안 저혼자 하다시피했는데 이제 동참해서 식민빠들과 맞서싸우는 분들이 하나둘 생기는 것을 보니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굿잡스님의 활동 고맙습니다.
식민빠들은 일제시대부터 계속 있었고 지금도 많고 앞으로도 있을겁니다. 금청사는 원래 한국최초 교과서에 편입된 한국사였다는 사실 잊지맙시다. 일제에 맞서 싸우며 금청사를 한국사로 편입했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을 생각하며 그뒤를 따라가야합니다. 일제가 만든 역사는 절대 배우지 않을 것이며 우리가 만든 역사를 배워야합니다. 금청사를 한국사로 복원하는 그날까지 앞으로 계속 싸워야합니다. 뜻있는 분들 많은 관심과 동참을 바랍니다.
상대방을 인정해야 내가 인정 받고, 내가 먼저 존중해야 존중 받는 것입니다.
토론을 통하여 상대의 장점을 거울 삼아 나의 단점을 보완하고, 나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상대에게 전하여 상대방의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의미있는 토론을 통하여 모두가 더불어 향상할 수 있다면 이는 더욱이 우리민족과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찬탄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변방님께서도 좋은 의견을 개진하고 계십니다. 다만, 부분 없는 전체없고, 전체없는 부분없으니, 변방님과 제가 또한 여기서 토론 하는 모든 분들이 이 민족과 국가를 구성하는 부분과 전체인 것입니다.
이러니 변방님과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내가 나에게 침을 뱉거나, 화를 내거나, 부정하는 것은 서로의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 됩니다.
나와 상대..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하는 마음에서 감정이 배제된 논거로서 토론하셨으면 하고 청해 올립니다.
하나의 일파이자 동포면 우리들 한민족의 역사의 당당한 일원이지요. 왠 갑자기 일관성없는 주장이십니까? 아니 그리고 우리들 한민족의 일파이자 100% 완전한 동포인데...우리들 한민족의 역사가 될 수가 없다는 것은 무슨 앞뒤가 안 맞는 논지이신지...??? 그렇게 된다면 우리들 한민족의 역사상의 [국가]들이였었던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모두 부정하시는 것과 똑같다는 거 모르시는지? ;;; 우리들 한민족의 역사의 당당한 일원인 금 제국의 공식적인 역사서인 [금사]와 청 제국의 공식적인 역사서인 [흠정만주원류고]나 제대로 있는 그대로라도 살펴서 읽어오시길 바라겠습니다... 오히려 생각의 전환이 가장 필수적인 사람은 변방경상도님이십니다.
서토가 우리들 한민족에 대한 열등감으로 동북공정이라든지, 몽골족들의 위대한 역사인 몽골제국이 너무나도 탐이 나서 실시하고 있는 탐원공정이라던지 역사적 왜곡을 하는 것이겠지요...미국이나 유럽애들이 다른 나라애들꺼를 지네 역사라던지 라는 뻘짓을 전혀 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그 쪽이야말로 그동안의 잘못되고 편협된 틀에 갇혀버린 자기자신의 역사사고관을 도저히 인정하기 싫어서 남들이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면서 제 3자가 봐도 확실하게 아주 훌륭하게 설득시켜주는데 그 쪽에서 일부러 쓸모가 없는 고집을 피우면서 인정을 안 하시는걸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오히려 그 족이 행하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을 모독하는 역사적 죄인적인 행위라는 걸 아직도 제대로 각인을 못하셨는지요? 참고로 저의 성씨가 안동 권씨이고...금 제국의 건국자이자 태조인 김올출&완안 아골타께서의 성씨가 안동 김씨(*안동 권씨와 100% 완전히 똑같은 일가랍니다.)사람이신데, 저의 직계조상분이시고, 꺼꾸로 생각해본다면, 제가 그분의 직계후손인데, 둘의 사이를 당신이 함부로 뭐라하면서 갈라놓지 말란 말입니다. 당신께서 하는 행위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대했었었던 기독교도의 행위로밖에 안보입니다. 이미 논파가 100% 완전히 된 걸 그저 기존의 틀에 갇히고 편협한 자기자신의 사고관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저 아무런 곳에도 쓸모가 없는 고집을 피우면서 인정을 안하고 거짓된 논리로 발악 아닌 발악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왜 이리 아는 게 하나도 없으신지요. 저보다 많이 안다고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읽은 역사서들 같고 저보다 역사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많이 안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배워오신 논리법이신지요? 이런 것을 근자감이라고 하던가요? 시종일관 논증이 앞뒤가 안맞고 일관성도 없고...차라리 굿잡스님과 나와나님 등에게 역사과외수업이라도 직접적으로 가셔서 받아보시는게 어떠신지요? 거짓말같아 보이네요.
이런게 모두 종교와 집적적인 연관이잇는 단체에 소행입니다 가장큰 예가 바로 근본도없는 대순진리회.증산도(사이비교)가 그 주체입니다 혐한단체에 좋은 먹잇감이지요 이사람들에 병적인 망상력은 객관적인 사고가 통하지않는 굉장히 위험한 암적인 존재들입니다 현실세계에서 철저히 격리가 필요한 집단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당신들은 서토의 한족들에게 세뇌된 한족동북공정역사팀의 스파이가 분명해보이는구려. 아니면 그 흔히 말하든 일본제국이 일본제국강점기(*약칭:일제강점기=1910년 8월 29일~1945년 8월 15일:총 36년)동안에 가르치다가 현대와서는 거의 100% 완전히 사라지고 재반박을 열심히 당해서 사라져가는 중인 식민사관의 열성적인 추종자가 아니신지요? 여기서 그런 사이비교주나, 혹은 좀...신흥으로 생겨난 종교와 종교자들을 모시거나 조금이라도 동조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릿속을 갱생시키고 다시 세상에 내보내야할 사람들은 바로 당신과 니르같은 인간들이오.
그렇게 설득력을 얻고 싶은게 아니라, 당신의 지금의 행위자체가 우리들 한민족의 위대한 역사를 모독하는 동북공정과 탐원공정의 스파이나 다름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아직도 온몸으로 각인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요...ㅎㅎㅎ 자기자신이 아직도 매국적 역사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를 못하는 건...이것도 신종정신병인가봐요? 더군다나 현대의 일본인&일본민족들도 이미 명명백백히 확인될 대로 확인되어진 것이지만서도, 최대한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상세히 말씀드리자면, 현대의 일본인&일본민족들도 우리들 한민족의 직계후손입니다. 꺼꾸로 생각해본다면, 우리들 한민족이 현대의 일본인&일본민족들의 직계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일본인&일본민족이 우리들 한민족의...일종의...일파이자...동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이건 알 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잘 알고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들이니깐요. 앵글로색슨족이 주류민족인 국가들인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약칭:호주), 뉴질랜드까지인 총 4개국들 중에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약칭:호주), 뉴질랜드까지인 총 4개국들이 (영국)으로부터 탄생해나온 것처럼, [우리나라(대한민국)]으로부터 일본이 탄생해나온 것이랍니다. 설마, 이것마저도 모른다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ㅎㅎㅎ...
그 근거를 대라니까? 정작 현장의 만주족들은 그렇게 생각을 전혀 안한대도 저렇게 그냥 자기입맛에 맞는 자료만 교묘하게 편집해서 주장하는 저 위대한 능력이란...참으로 치졸합니다그려...ㅎㅎㅎ 세상이 아무리 치졸하다뭐하다 하지만...당신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치졸함 그 자체이네요.ㅎㅎㅎ
친척이 아니라 우리들 한민족의 역사의 당당한 일원이자 일부분임. 증거를 갖고오라니까요? 다큐멘터리라도 링크로 대보시던가. 무슨 자기자신의 기존의 사고관과 좀만 다르면 뭐 환빠라네...정신병자라네...라며 매도하지 마시구요.ㅎㅎㅎ 그것도 자기자신의 기존의 사고관이 너무나도 한참 잘못됬는데도...참 질기다...ㅎㅎㅎ 똑같은 말을 수없이 해주는데도 못 알아듣는 걸 보면, 정말로 이것도 신종정신병인듯.특히 반인간, 야사나가, 니르, 변방경상도 같은 인간들...대체 어릴 때부터 뭘 보고 자란거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