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일본 면적이라는 것이 훗카이도와 같은 근대에 합병된 섬을 포함시킨 건데 이런 섬들이 포함된 것은 140년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이런 섬들을 제외하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면적은 대략 엇비슷해지는데.. 일본이 조선의 인구를 넘었다고 예측되는 시기는 대략 임진왜란 전후입니다. 임진왜란 전에도 일본이 약소하게 더 많았다 생각하지만 일단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과 일본의 인구차가 차이나기 시작하죠.. 조선같은 경우는 농경지의 3분의 2 가량이 손실되었으니.. 게다가 조선은 그 전후에도 몽골이나 청나라 등과 같은 이민족들과 전쟁을 벌였던 데 반해 일본 같은 경우는 사면이 바다로 막혀있어 그럴 일이 없죠
한반도 기준으로도 일본열도가 약 2배정도 큽니다. 남북한 인구 합치면 땅크기 배율하고 엇비슷해요.
일본이 재난이 잦아 쓸수있는 면적이 적다고 하는데, 한반도는 딱히 재난은 없지만 북한지역은 평지보다 산악지역이 더 많고, 개마고원처럼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지역이 대부분입니다.
경작가능지역 대비로 생각하면 우리나라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고 봐야합니다.
한반도 인구는 대략 삼국시대에 고구려 70만호, 백제 76만호 정도로 봤을 때..
삼국은 총 210만호 정도로 추정되며.. 이걸 1호 당 5명이라 잡으면 인구 1천만 정도에 달하죠.
그런데 이후로도 고려나 조선시대 때에도 대략 이 1천만 내외를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반도는 쌀농사에 있어서 사실 동남아 같은 온난다습하고, 덥고 일조량이 쨍쨍한 환경에 비해 불리한 편입니다.
베트남 같은 곳은 일년에 3모작을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해 한국은 나름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서 2모작을 조선시대 쯤에야 가능하게 되죠.
결국 먹는 식량 = 인구 부양력 = 인구 숫자이기 때문에.. 식량 문제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인구를 대폭 늘릴 수가 없게 되지요.
거기에 비하면.. 일본은 일단.. 한반도가 대규모 외세 침공을 막아주는 성벽 역할을 해왔고,
일본은 그런 고마운 한반도의 통수를 치며, 부족한 식량을 노략질해가는 상습적인 강도질을 해왔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성진국이었죠.
지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내전을 벌이면서도 그 와중에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
과부들을 범하거나, 길거리의 여자들을 범하는 짓을 무수히 저질렀고..
이런건 일본 사회지도층에서도 인구증가를 위해 장려하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절은 딱히 콘돔이나 피임약도 없던 시대라 애를 순풍 순풍 낳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한반도는 거란, 몽골, 여진족, 홍건적, 왜구 등의 싸움에 대규모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했고,
이런 전란기에는 농사짓기도 사실 힘들어 농경지가 황폐화되고, 많은 인구가 약탈과 살인 강도에 죽어나가고,
포로로 끌려가다 보니, 나라가 휘청이고 인구가 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거죠.
게다가, 지도층이 부패하여 권문세족이니 탐관오리니 이런 부류가 설치면,
살기는 더 팍팍해지고, 굶주리거나 굶어죽는 사람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정치가 막장이면 인구가 안 늘어납니다.
그래서 중국의 인구가 대폭 늘어난 시기가 청나라 강건성세라고 하는데..
강희제와 건륭제의 치적으로.. 중국 인구가 3배로 뻥튀기 되는 시절이지요.
일본은 거기에 비해, 외세의 침략이 아닌, 내전 양상이라..
지들끼리 지배계급 사무라이급들은 죽이고 죽여도.. 피지배계급 농민들은 또 막 죽이진 않았죠.
얘네들도 칼로 막 농민을 심심풀이로 썰어죽이곤 했지만,
농민=세금 + 병력이라 또 그렇게 막대한것만은 아닙니다.
전국시대 패권 경쟁을 위해서 자기 영지 내 주민들에게서 어느 정도 충성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반면,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중국, 조선의 경우엔..
관료들이 자기가 자리에 앉아있을 때 최대한 뽕을 뽑자는 개념으로 주민을 달달 볶는 그런 케이스도 상당했지요..
게다가 아무래도 반란이 일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딱히 경쟁할 상대가 없는 중앙조정과 왕, 왕족, 대신들이 백성들을 가볍게 보는 감도 있구요.
그래서 창업군주는 인심이 좋고, 덕망이 넘치는 사람,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 꽤 있지만...
그 뒤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군주들은 개막장들이 많죠..
대기업을 일궈낸 재벌1세랑 그걸 물려받은 재벌2세, 재벌3세를 비교해 보면 그런게 딱 보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경우는 대체로 대식가였습니다. 밥을 많이 먹었다는 소리죠.
반면, 일본의 경우는 대체로 소식가였습니다. 밥을 적게 먹었다는 소리죠.
같은 농사를 지어도, 조선 사람이 한그릇 먹을 분량을 일본인들은 절반도 안되게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면..
왜? 인구가 일본이 많은지 답이 나오겠지요..
왜인이라는게 왜소하다할 때의 왜인데.. 일본인들 체격이 조선인들에 비해서도 훨씬 작은 편이었죠.
조선 사람들이 대략 160대 중후반이었다면, 일본은 한 130~140대 수준의 난쟁이들이 많았으니까요.
이런건 결국 영양상태도 무시못한다고 봐야겠죠.
일본이 나름 체격이 많이 커진 것도... 육식과 영양섭취가 좋아진 근현대 들어서라고 하죠..
(얘네들은 불교에 심취한 일왕이 육식을 금지시켜, 생선만 먹고 살았습니다)
어쨌든 다양한 원인을 꼽을 수 있겠는데..
정리하자면...
첫번째.. 한반도보단 좀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온난한 기후..(쌀농사에 유리)
두번째.. 외세 침략이 없음..(내전은 있었지만, 지배층간의 싸움이라 농민들 피해가 크지 않음)
세번째.. 성진국.. 섹스에 미치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음.
네번째.. 밥을 적게 먹는 편.. 그러니 쌀생산량에 비해 인구를 뻥튀기하기에 유리함..
다섯번째.. 개항이 빨라서 메이지유신 이후로 인구가 대폭 늘어남.. 조선은 개항이 늦어서 인구가 늘어나는 시기가 조금 늦어짐..
도데체 한반도 왕조의 군왕중에서 개막장 군주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게다가 고구려가 한반도 내의 국가였나요? 삼국 인구가 천만이라고 하면서 한반도 내 국가로 한정하는 이유는 뭐죠?
일본의 인구가 많은 이유는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근친상간뿐 아니라 성윤리가 없어 남녀간의 성교에 제한이 없어 출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애도시대 일본인구가 가장 많았지만 신장은 일본 역사상 가장 작은 140cm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녀 성교를 열심히 해서 출산은 많이 헀는데 먹을 건 없었단 말이죠
반면에 한반도 내 국가는 유교 질서를 중요시 하고 남녀 교제에 규제가 엄했기 때문에 인구가 많이 증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근대시기 인구증가가 부진한 이유는 한반도 지도층의 부정부패때문이 아닙니다.
한반도 국가 중 막장 군왕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수준이 나빠도 중국황제에 비해선 성군소리를 들을 만한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왜냐하면 거대국가 중국과 강력한 무력의 북쪽 유목민족에 둘려싸여 막장짓 했다간 민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중국황제중에는 까막눈이 부지기수입니다. 인간을 인간취급안하는 인간 백정 황제도 부지기였습니다.
한반도 국가의 인구증가율은 타 대륙의 인구증가율과 비슷했습니다.
오히려 타 대륙국가보다도 인구밀도가 높습니다
"반면,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중국, 조선의 경우엔..
관료들이 자기가 자리에 앉아있을 때 최대한 뽕을 뽑자는 개념으로 주민을 달달 볶는 그런 케이스도 상당했지요.. "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중국, 조선을 언급했고, 거기서 부패 관료(지방관)를 언급..
"그래서 창업군주는 인심이 좋고, 덕망이 넘치는 사람,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 꽤 있지만..."
"그 뒤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군주들은 개막장들이 많죠.."
자, 여기서 비교대상은 엄연히 창업군주와 다른
혈통상 군주직위를 세습한 후대의 군주를 말합니다.
=> 중국과 조선의 중앙집권제를 동시에 말하는 것으로.. 조선 한정이 아닙니다.
일본전국시대 상황에서 농민은 그냥 단순한 농민보다는..
일종의 다이묘의 가신개념이었기 때문에.. 땅을 분배받아 농사짓다가,
농번기에 전쟁에 동원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너무 괴롭히면 군사력 약화 혹은 반란, 세력이탈 등으로 이어집니다.
(즉, 일본통일한 상태에서 쥐어짜는거면 모를까. 다른 세력과 경쟁하며
패권 다투는 전쟁 중에 민심을 이반시키는 건.. xx행위라 이거죠.)
=>예를 들어 삼국, 후삼국 시대에 이런 막장짓한 케이스? 잘없습니다.
있긴 한데.. 고구려 간첩 도림한테 놀아나 국력을 함부로 낭비하다 침공당해 죽은 개로왕..
자기 아들들 좌평자리에 무더기로 앉히고, 막장으로 과장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방세력의 지원을 얻지못하고, 나당연합군에 망해 끌려간 의자왕.
후삼국 시대에 자기 신하들에게 막장짓하다 반란으로 죽은 궁예 정도.. 역시나 xx행위.
즉, 경쟁상황에서는 함부로 쥐어짜기를 못하는겁니다.
하지만, 중앙집권화된 왕조국가에선 이런걸 두려워하질 않습니다.
구한말 민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백성들을 존중하고, 무서워하던가요?
그리고 탐관오리 지방관 위주로 말한거긴 하지만..
한반도 군왕 중에 막장 군왕이 없다니요. 연산군 있잖습니까?
자기 사냥한답시고 민가를 헐어버린 사람 말이죠.
재벌 2세, 3세는 대접만 받고 자라고, 갑질만 익숙한 사람들 많습니다.
세습군주의 문제점이 바로 그런데 있는거구요.
세종대왕 같은 케이스는 왕조초기에나 잠시나타나는 특이 케이스인겁니다.
그리고 폭군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존재감 없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제위기간을 흘러보낸 평범한 군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이에 백골징포니 조세제도의 문란이니.. 일어나고 나라가 막장되고, 백성들이 고통받고,
군사체계가 부실화된 걸 성군의 치적이라 볼 수 있나요?
연산군이 중국 황제 막장 케이스보단좀 성군 소리 들을만한 케이스였는지는 잘모르겠군요.
뭐.. 상상 초월하는 북제 황제들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중국의 거대국가와 북쪽 유목민족들한테 눈깜빡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었던 시절도..
조선시대는 빼줘야 됩니다. 사실상 그건 고려시절까지만 해당되고.
명나라와는 그런 관계도 아니었고, 여진족도 누르하치 이전까지는 그렇게 심각한 위협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대륙국가와의 비교도 아니고, 한-일 인구비교하는 자리에서 타대륙국가를 논하는건 논점이탈이군요.
난 난독증이 아니오.
"창업군주는 인심이 좋고, 덕망이 넘치는 사람,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 꽤 있지만... 그 뒤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군주들은 개막장들이 많죠.:"
이라고 분명히 말헀소. 도대체 그 개막장 군주는 누구를 지칭하는 거요?
영조? 정조? 내가 알기로는 조선왕중에 연산군빼고는 개막장 군주는 없었소. 근거도 없이 개막장 군주 운운하니 말을 싸지른다고 한거요. 내가 틀린말 했소?
영토면적 남한이 10만 북한12만 일본이 38만으로 남한의 3.8배, 한반도의 1.7배.
인구 남한5000만 북한2400만 일본이 1억2천7백만으로 남한의 2.54배, 남북한의 1.7배.
영토면적에 비해 많은인구도 아님. 밀도를 보면 상당히 높은비율이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면적은 3.8배차인데 인구는 2.54배 차이니 면적에 비해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더 적은 비율이네요
<≪삼국유사≫ 권1 칠십이국조(七十二國條)에 인용된 ≪후한서 後漢書≫에 의하면 “사한(四漢)이 조선사지(朝鮮四地)에 처음으로 사군(四郡)을 두었다가 …… 법령이 번거로워 칠십팔국(七十八國)으로 나누었으며, 각 만호(萬戶)”라고 기록돼 있으며, 그 중 서쪽의 마한이 54읍, 동쪽의 진한이 12읍, 그리고 남쪽의 변한이 12읍으로, 각기 나라라고 불렀다고 돼 있다.
또한 고구려조에 보면, “고구려 전성기에 21만500호”라는 구절이 있으며, ≪구당서 舊唐書≫의 고종건봉3년(高宗乾封三年) 계사조(癸巳條)에는 “고구려 멸망 때(668) 민호(民戶)의 수가 총계 69만7000호가 되었다.”고 부기하고 있다.
변한·백제조에는 “백제의 전성기에 15만2300호”라고 나와 있으며, 태종춘추공조(太宗春秋公條)에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660)에…… 약 76만호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진한조에는 “신라 전성기에 경중(京中)의 호구수는 17만8936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삼국유사≫에서 삼국시대의 인구분석에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기록으로는 <가락국기 駕洛國記>에 기록된 “구간자시추장령총백성구일백호칠만오천인(九干者是酋長領總百姓{{%310}}一百戶七萬五千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百姓{{%310}}一百戶’라는 대목에서 ‘{{%310}}’자가 ‘凡’자냐 ‘九’자냐, 또한 ‘{{%310}}一百戶’가 ‘9,000백호’를 의미하는 것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합리적으로 추정하여 본다면 이 구절은 호당 인구수를 계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310}}’을 ‘구(九)’로 하여 ‘구일백호’로 하면, 백호(百戶)가 91개라는 뜻이 되므로 총호수는 9,100호에 인구수가 7만5000명으로 호당 평균인구는 8.2명이 된다.
한편 ≪삼국사기≫는 편제상 이 시대의 인구분석에 도움을 줄만한 기록이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삼국유사≫의 단편적인 기록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본기(本紀) 9의 6면(六面)에 신라 경덕왕 16년(757) 행정구역을 개명(改名)하여 9주(州)가 관할하는 경(京)·군(郡)·현(縣)의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이 9주·5경·117군·293현으로 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어 현당 평균호수를 추정할 수 있다면 이 시기의 개략적인 인구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단편적인 기록들을 종합해서 고대의 인구규모를 재구성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당시기록들의 정확성여부도 문제려니와 당시에는 백성들이 병역기피나 조공부역을 포탈하기 위하여 신고를 허위로 한 일이 많았으며, 더욱이 여자나 유년·노년 인구는 부분적으로밖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당시의 인구수 파악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록을 통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본다면, 우선 ≪삼국유사≫ 칠십이국조의 78국각1만호(七十八國各萬戶)의 시기를 삼한시대 초기인 서기 1년으로 잡고 이 시기의 호당 평균인구수를 앞서 계산한 8.2명으로 가정하였을 경우, 마한 54개 국이 54만 호에 인구 약 443만 명, 진한과 변한이 각기 12개 국으로 각각 12만 호에 인구 98만 명씩 있게 되므로 서기초 삼한에는 모두 78만 호에 약 640만 명의 인구가 있었던 것이 된다.
한편, 기록에 따르면 백제멸망기 및 통일신라시대가 전개되는 7세기 중엽, 백제의 인구가 76만 호에 약 623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매우 개괄적이기는 하나 삼한시대의 마한을 삼국시대의 백제와 동일한 지역으로 가정한다면, 서기초의 마한인구와 660년 경의 백제인구를 대비하는 데에서 이 지역의 연평균인구증가율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를 계산하면, 그 치(値)는 연평균 0.0518%가 되는데, 이 성장률은 서기 이후 17세기 중엽까지의 세계인구의 연평균증가율인 0.04∼0.05%의 수준과 비슷하여 그 타당성이 높다.
따라서 그 타당도를 고려하여 역으로 근대적 인구조사가 실시된 1906년 일본관헌에 의해서 조사된 우리 나라의 인구수를 기수(基數)로 이 성장률 0. 0518%를 대입시켜 고대의 인구수를 추정하면, 통일신라시대를 전후한 7세기 중엽 우리 나라 인구는 약 675만 명이 되고 서기초 삼한시대의 인구는 약 482만 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1933년 10월 일본 도다이사(東大寺)의 쇼소원에서 발견된 8세기 중엽 신라시대의 4개 촌락의 촌적부에 관한 인구통계학적 분석은 한정된 사례수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발견된 4개 촌락의 호수는 모두 43호에 지나지 않으며, 기록상의 총 인구수도 442명으로, 이 기록에 의한 호당인구는 10.3명이다.
이는 앞에서 삼한 및 통일신라시대의 호당평균인구 8.2명보다 높다. 기록에 따른 이들의 성별·연령별 인구구조는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선 전체인구의 성비(性比)가 78.2로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정수(丁數:15∼59세의 생산연령인구)에 있어서는 68.3으로 매우 낮다.>
출처 : from the 2007 monograph 'Contours of the World Economy, 1–2030 AD' by the British economist Angus Maddison. (China, India, Japan, Korea, Indonesia, Indochina, Other East Asia)
고구려인구가 천만? 하하핳하ㅏ 조선시대 중종때가되서야 이모작시작하고 16세기초에야 겨우 천만찍는데 1925년 통계를봐도 이북지역인구 다합해봐야 600만정도밖에안되는데 뭘로 고구려가 인구 천만명을 먹여살린다는건지 ㅋㅋ 고대보다 농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기대수명도 늘어난 6.25때 북한인구가 1000만 남한인구가 2500만인데 고구려시대때 화학비료라도 발명하지않는이상 고구려 인구 1000만명은 웃기는소리
"거란이 영주지역에 들어와 노략질을 하니 위운기에게 명을 내려 돌궐의 병사를 이끌고서 거란부락을 토벌하도록 보냈다. 돌궐의 계민가한이 병사 2만명을 동원했다. (중략) 운기가 거란의 경계에 들어갈 때에 돌궐의 병사 2만을 상인단으로 위장시켜 유성에서 고구려와 교역하러 간다고 거란에게 속이고, 무리 가운데 수나라 사신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감히 말하는 자는 죽여버렸다. 거란이 방어를 하지 않았다."
그러게요... 중국은 넘사벽이라 그렇다치고 일본의 인구와 우경화는 걱정스러운 수준이죠... 자위대가 얼마 안된다고 안심하시는 분도 있는데 일본이 군 입영체제를 어떻게든지 바꾸게 되면 그 자위대가 모두 하사관급 이상으로 편제되어 시스템이 잡히는데 몇년 안걸립니다. 한 두달의 기초훈련과 일년 이년을 오로지 군사훈련에 매달리는데 저질 체력이며 정신이며 다 날이 서지요. 거기다 알게 모르게 단순한 위계질서가 스며든 문화가 있어서 군대식 사고방식에 금방 전염될걸요... 매일 김정은 죽일놈이라며 속빈강정만 만드는 안보의식에 가려 일본 우경화와 그 이후에 대한 염려는 참 한심한 수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