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도 바빠서 가생이에 오랜만에 들렸는데 뭔 야스나가부터 엄청 난리네요.
하여간 우연히 본 글인데 퍼온글이고 링크는
http://www.pluskorea.net/sub_read.html?uid=36222
조선이 16세기에 발명한 세계 최초 신문
--------------------------------------------------------
조선의 신문 조보(朝報). 우리에겐 낯설기만 하다. 조선시대에 매일 아침 나라(조정)에서 조보(朝報)라는 신문을 발행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 때문이다. 더우기 당시 활자인쇄로된 조선시대 신문은 세계 어느 나라와 국가에서도 없었다. 16세기에 한 때 이 신문을 민간에서 활자로 인쇄하여 시중에 판매도 했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최초의 활자신문이다. 우리는 식민사학의 역사만 알고 있는데 역사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이에 대해 지난 2일 EBS의 역사채널e - 조선의 신문 방영된 조선시대에 있었던 아침 신문인 조보에 대해 사진으로 알아 본다. 영상링크는 제일 아래.
---------------------------------------------------------------------------
그리고 이건 아빠늑대 블로그 글:
알다시피 한반도에서 근대적 신문의 효시라면 1883년 발행된 한성순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신문의 성격을 가진 출판물이 존재했었습니다, 바로 조보(朝報)라는 것이죠. 이 조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조선 전기부터라고 추정되며 선조10년 1577년에는 민간 업자들이 이 조보의 발행권을 얻어 내기도 했었습니다.
<신문처럼 나온 조보>
원래 조선초에는 ‘기별’ 또는 ‘기별지(寄別紙)’라 해서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사관(史官)이 조정의 결정사항과 견문록 등을 기록하여 각 관청에 돌렸던 것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승정원에서 이를 받아다가 조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내용을 보면 임금의 지시사항과 각종 국가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과 진행과정등이 적혀 있고 각 관리의 임명 및 과거시험의 공지 그리고 외국과의 외교사항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또한 유교사상에 입각한 충효 사례라던가 훈육내용이 있을때도 있었고 천재지변이나 기문기사(奇聞奇事)의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종 보고서들의 내용 또한 요약되어 올리기도 했었죠, 사람들이 특히 관심을 가지는 분야는 외국과의 교역이나 전쟁에 관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Q&A란처럼 선비들이 올린 상소문과 임금의 화답내용을 기록하여 민의를 수렴함과 동시에 결정내용을 널리 알려지도록 노력했습니다.
이 조보는 일종의 조간신문으로 매일 1회 발행되었는데 조보를 담당하는 조보소(朝報所)에서 주로 필사로 원본을 작성하여 내리면 에하 관청에서는 다시 이를 배껴 전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조보는 특유의 날려쓴 필기체 형식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리고 발행 기간이나 구독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면도 있었는데 구독자가 고위 관리면 글씨도 좀 정성들여 쓰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한성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독자들은 날짜가 기록된 신문을 매일 받아 보았으나 지방의 독자들은 거리상 5~10일 사이의 내용을 묶은 형태의 그리고 날짜가 없는 신문을 보기도 했고 거리에 따라서는 한달분치가 묶여 신문이 아니라 월간지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조보는 처음에는 관청등에 들어가는 국정홍보자료로서 배포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에도 전달되는 지역신문으로 나오다가 나중에는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관보가 되었으며 그 구독층도 처음에는 관청 관리들이었다가 양반들로 퍼져 나가고 그리고 1520년(중종15년)에는 상.공관계자들에게 까지 배포되어 정보전달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577년(선조10년) 8월에 민간에서도 이를 보고는 의정부와 사헌부의 허가를 받아 구독료를 받고 신문 발행업을 시작했는데 선조가 발행된 내용을 보고는 "이는 사국(史局)을 사설화하는 것과 같은 조치이며, 이것이 다른 나라에 흘러나가면 나라의 기밀을 알리는 결과가 된다"고 하여 활자를 몰수하고 관계자 30여 명을 귀양보내 버렸죠, 이 민간인에 의한 조보의 인쇄는 1633년에 처음으로 활판인쇄된 중국의 저보(邸報)나 유럽의 주간 인쇄신문의 출현보다 50여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볼때 약간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이 조보는 구한말까지 발행되다가 1894년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관보 官報>라는 이름이 붙어 나올때까지 존속하다가 사라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