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가 백제, 고구려 멸망후, 동맹국이였던 신라까지 쳐먹을려고 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신라는 -.- 어제의 적인, 고구려의 부흥세력과 다시 손을 잡게 되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아 냅다 압록강 넘어 만주로 달려가 당나라군을 먼저 쳐갈깁니다.
(아오, 쓰기 귀찮아서, 위키에서 나당전쟁 찾아 붙일테니 참고 ㅋㅋ)
나당 전쟁은 670년 3월, 신라군 1만과 고구려 유민군 1만이 압록강을 건너 당군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와 동시에, 신라군은 옛 백제 지역을 공격하여 당나라 주둔군과 웅진도독 부여융(扶餘隆, 백제의 왕족 출신)이 이끄는 백제군이 주둔하는 옛 백제 지역의 82개 성을 빼앗았으며, 671년에는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소부리주를 설치하여 직속령으로 삼아 백제의 옛 땅을 완전히 회복하였다.
그리고, 당나라도 반격하고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신라군은 매소성 전투에서 군마 3만 380마리와 3만여명 분의 무기를 노획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신라는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신라군과 당군은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투를 18차례에 걸쳐 벌였다.
676년 11월, 금강 하구인 기벌포(伎伐浦: 현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 앞바다에서 신라 수군과 설인귀가 이끈 당의 수군 사이에 마지막 격전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도 신라군이 승리를 거두었고, 당나라는 더 이상 전쟁 수행의 의지를 상실했다
결과:
당나라는 676년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을 요동성으로 옮기고, 웅진도독부는 건안성(建安城: 개평)으로 옮기면서 대동강 북쪽으로 완전히 철수하였다. 신라는 나당전쟁의 승리로 대동강부터 원산만(元山灣)까지를 경계로 그 이남의 지역을 영토로 확정하였다
신라가 차지하지 못한 만주의 고구려 옛 영토에는 발해(698년 ~ 926년)가 들어섰다.
신라와 발해가 공존한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른다.
나당전쟁때, 일시적으로 점령한적은 있는데,(당나라에 선빵 날린다고ㅋㅋㅋ.)
실질 통치 지역으로 삼거나 한 개념은 아닙니다.
당나라가 신라한테 고구려 땅은 내가 먹고 그 밑으로 너희는 영원히 평안하게 지내게 해줄게~하고 약속했었는데 백제/고구려 망하고 나서 약속 안 지키고 신라한테까지 영향력 행세하려고 했죠??? 그러니 신라는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 같구 결국은 초강대국인 당나라에 선빵까지 날리는 결과가 온 것 아닌가요?
만주는 거의 청나라 전까기는 텅텅 비어있던 땅 아닌가 고구려 발해 같은 나라 있을 때 말고는.
솔직히 당나라가 신라를 없앨 작정하고 전쟁했으면 신라는 탈탈 털렸을 것 같기도 함;; 제가 듣기론 나당전쟁 당시 당나라가 신라 말고 신경 쓸 곳이 많아서 그랬다는데. 아무튼 그때 신라가 이긴게 천만 당행인 듯 ㄷㄷ 당시 당나라가 신라까지 먹었으면 우린 지금 최소 엄청나게 중국화 되어 있거나 최악으로는 중국말 쓰고 있었을 수도 ㅋㅋㅋㅋ
점령은 통치라는 이야긴데 장기 통치까진 기록이 없는듯 해요.
위에 잘 써주셨지만 위 만주원류고 내용은 역사스페셜에서 이미 했던거라 그 외 기록 간추려볼게요.
금나라 세운 아골타의 넷째 아들 완안올출은 이상하게 묘지에나 기록에 김올출이라 쓰고
마니산에 제 올렸던 우리나라 위인 중 아골타가 있고
박은식은 아골타를 평주사람이라고 쓰고
남송 사신 홍우가 금나라 머물며 쓴 송막기문에 여진 추장은 신라사람이라 쓰며 아골타의 시조(8대조)를 고려에서 온 김함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려사 보여주면서 "평주 승려 금준이 여진에 들어가 금나라 선조가 되었다. 혹은 평주 승려 김행의 아들 극수라고 한다."라는 기록도 보여주고요...
이상 <역사스페셜 - 신라최후의 미스테리, 마의태자> 편 중에서 있는 것이고 자세한 것은 역사스페셜 찾아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