左로부터 현재 중국 구황실의 수장인 육장(毓嶂), 부임(溥任), 부걸(溥傑), 육장의 계모 장무형(張茂瑩)
영화 <마지막 황제(The Last Emperor)>로 잘 알려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애신각라 부의(愛新覺羅 溥儀 - 푸이). 그의 일생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고, 그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다 결국 베이징의 정원수로 평범하게 살다가 죽은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부의를 제외한 나머지 황족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의 후지 TV에서 보여준 <말대황제, 유전의 왕비>라는 드라마를 통해 부의의 동생인 애신각라 부걸(愛新覺羅 溥傑)의 일생 또한 청말의 역사에 관심있게 본 분이라면 또한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알다시피, 부걸은 대한제국의 영친왕(英親王)처럼 일본의 귀족여성과 결혼하여 이 부부 역시 2차대전 이후 일반 평민으로 고초를 겪으며 살았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까지 중국황실이 이어져 오고 있다면 과연 황제의 자리는 누구에게 갈까? 물론 가정이다. 부의는 자식이 없었고, 부걸은 딸만 2명이 있었다. 게다가 부걸에게 아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일본인 여성과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설득을 얻지는 못하였으리라. (이는 얼마전에 타계한 영친왕의 아들인 이구씨가 여전히 우리국민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현재, 애신각라씨의 구황실수장은 김육장(金毓嶂)이라는 인물이다. 왜 애신각라씨(愛新覺羅氏)가 아닌 김씨(金氏)인가? 그 이유는 신해혁명 이후 중국의 한족(漢族)에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반청(反淸), 반만주족(反滿州族) 감정 때문이었다. 이에 만주족 냄새가 흠씬 풍기는 "애신각라" 보다는 한족의 분위기가 나는 "김"으로 성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비록 성을 바꾸었어도 만주족의 원류라 할 수 있는 금(金)나라를 숭상하여 그 성으로 삼았다 볼 것이다. 시대는 다시 흘러서 이제 만주족도 떳떳히 나설 수 있는 지금 김육장의 아들대부터는 다시 애신각라를 성으로 사용하고 있고, 김육장 본인 또한 관계당국에 복성(復姓)신청을 해두고 있다.
김육장은 마지막 황제인 부의의 조카이다. 부의의 막내동생 애신각라 부임(愛新覺羅 溥任)이 그의 아버지이다. 부의의 아버지였던 순친왕 재풍(醇親王 載豊)은 모두 11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 중 아들은 4명이었다. 선통제가 장남이고, 부걸이 차남, 부공(溥供)이 3남인데 4세에 죽고, 부임(溥任)이 4남이다. 결국 황통(皇統)은 부임을 거처 부임의 장남인 김육장이 이어받고 있고 현재 김육장은 종법상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의 양자(養子)로 되어있다. 1916년생인 부임은 2005년 현재 아직까지 생존해 있으며, 소위 마지막 황제(皇弟)이다.
부임(溥任)은 광서제 때 문화전대학사(文華殿大學士)와 내부대신(內部大臣)을 지낸 만주인(滿州人) 세속(世續)의 손녀인 김유정(金瑜庭)과 결혼했는데, 1971년 병사했다. 이후 1975년 54세의 나이로 한족(漢族)인 51세의 장무형(張茂瑩)과 결혼했는데, 장무형의 조부는 장익(張翼)으로서 광서제 때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로서 공부시랑(工部侍郞)을 지낸바 있다. 부임의 아들은 선통제의 양자로 출계(出系)한 김육장을 제외하고, 차남인 김육제(金毓在)는 부걸의 양자로 출계하였고, 3남인 김육란(金毓嵐)이 부임의 뒤를 잇게 되어 있다.
1943년 생인 김육장은 이미 몰락한 청황실의 후예로 태어나, 온갖 고초를 받으며 자랐다. 공산 혁명이 이후 우리나라의 조선왕조보다 더 큰 고초를 겪었다. 이는 일체의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당의 이념에도 맞았기 때문이다. 현재 김육장은 베이징의 고등학교 교사로서 평범한 사람의 일원으로 잘 살고 있다.
애신각라씨와 기존의 완안씨(김함보의 직계 후손) 간의 혈족으로써의 연관성은 잘 모르겠으나,
애신각라씨들이 청나라 멸망 후 한동안 김씨 성을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