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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3 10:10
[기타] 숙신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888  

고조선 시대에 만주 북동방면에서 수렵생활을 하였다. 숙신이라는 호칭은 중국의 《국어()》 《사어()》 및 그 밖의 고전에서 볼 수 있고, 특히 《국어》의 숙신공시()는 전설로도 유명하여 성천자()의 출현과 그들의 입조공헌()을 결부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중국의 《사기》에는 식신()·직신()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서천왕(西) 때 일부가 고구려에 복속되었으며, 398년(광개토대왕 8) 완전히 병합되었다. 뒤에 일어난 읍루()·말갈() 종족이 숙신의 후예로 추측되기도 한다. 한편 당()나라 때는 선진()시대의 북동방면 거주 민족의 총칭으로 쓰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숙신 [肅愼] (두산백과)


정의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

개설

중국의 고전인 『국어()』·『좌씨전()』·『일주서()』·『사기()』·『회남자()』·『산해경()』등에 그 이름이 나타난다.

식신()·직신()이라고도 하며, 호시()와 석노()를 사용하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내용

초기 기록인『국어』에 나온 바에 따르면, 숙신은 당나라 때의『진서()』에 언급된 것처럼 흑룡강() 중·하류의 주민이 아니었다. 즉, 고조선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중원() 북쪽 경계를 비롯해 산둥반도 및 남만주 주민을 총칭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숙신의 후손으로 꼽고 있는 종족으로서는 한()대의 읍루(), 후위()대의 물길()과 수·당대의 말갈(), 발해 멸망 후의 여진()이다. 따라서 숙신은 일반적으로 여진족의 선조로 인정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체로 그들의 종족 계통과 기원, 분포지역, 읍루 및 예맥()·고조선과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는데 고아시아족 기원설과 순퉁구스, 몽고족, 동이()의 은인() 기원설 등이 제기되었다.

그런데 최남선()·신채호()·정인보() 등은 숙신을 조선과 같은 어원으로 생각해 그들의 기원을 백두산 부근으로 생각하였다.

이에 반해 슈미트나 시라코고로프 등과 같이 고아시아족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들의 발상지와 거주지로 흑룡강 유역과 연해주 북단을 거론하였다. 또한, 숙신이 중원 북쪽 경계로부터 흑룡강 중·하류로 이동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들의 기원을 하북계(), 산둥반도, 발해만() 양안(), 황하() 유역의 중원지구 등으로 상정한다.

다시 말해, 숙신의 발상지는 오히려 중원 북계 및 요서(西)·요동()과 같이 대개 고조선과 일치하는 곳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흑룡강 중·하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8세기 말∼7세기 초의 춘추시대()를 기록한 문헌에는 중국 동북부에 활약한 종족으로 산융·영지·고죽·도하 등이 등장할 뿐 숙신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기원전 7세기 이전 숙신이 북경 동북 지방에 존재했다 하더라도 기원전 8∼7세기 이후에는 길림성 북쪽 일대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발음과 명칭상의 유사성만을 근거로 고조선과 동일 실체로 보기는 어렵다.

변천

숙신의 후신인 읍루족은 부여()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읍락 별로 공납을 납부했는데, 3세기 초에 가혹한 징수에 저항해 이탈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목단강() 중·하류 유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후신인 물길이 5세기 종반에 발흥하여 동류 송화강() 유역을 장악하고 고구려의 북경() 및 농안의 부여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이후 물길-말갈계 집단이 농안 지역으로 대거 이주해 들어와 거주하다가 6세기 말 고구려의 북진에 의해 일부는 수나라의 요서지방으로 망명하고, 일부는 고구려에 귀속되었다. 이들 말갈은 고구려 멸망 이후 고구려 유민과 함께 발해를 건국의 주요 세력이 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숙신 [肅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역사

북쪽에 살던 퉁구스족의 일부는 연해주만주 같은 지역으로 남하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주로 목축이나 농업 등에 종사했다. 부족국가의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문자나 도시가 없었고, 이에 따라 그 언어의 문자기록이나 도시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후 만주족, 여진족 등의 조상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명칭

숙신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에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소공 9년조에 보면 ‘肅愼·燕·毫 吾北土也’라고 하여 숙신은 연(燕)·호(毫)과 아울러 중국의 북방에 있다고 하였다. 『사기(史記)』「오제본기(五帝本紀)」의 제순조(帝舜條)에도 ‘南撫交阯·北發·西戎·析枝·渠廋·氐·羌·北山戎·發·息肅·東長·鳥夷’라고 하였는데, 후한 정현(後漢 鄭玄)의 주(註)를 보면 ‘息愼 或謂之肅愼 東北夷’라 하였다. 따라서 숙신(肅愼)·식신(息愼)은 고대 중국인들이 만주 지방에 살던 동북이(東北夷)를 일컫던 막연한 호칭으로서, 그들이 살던 지역의 방향을 나타내는 ‘동(東)’ 또는 ‘동북(東北)’과 관계가 있었던 명칭이 아닌가 추측된다. 주대(周代)에는 이처럼 막연한 개념으로 숙신이라고 통칭하였으나, 삼국시대위(魏)나라가 비로소 만주 지방을 정벌하자, 구체적으로 이 지방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며, 이때에는 만주 지방에 살던 동북이를 숙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읍루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러므로 지내굉(池內宏)은 「숙신고(肅愼考)」에서 중국 고전상에 유명한 고숙신씨의 정체를 역사적으로 고증할 방법은 없으며, 삼국시대중국인의 지리적 지식에 새로이 들어온 읍루가 마침 고시(楛矢)·석노(石砮)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숙신씨와 읍루를 동일하게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8%99%EC%8B%A0


≪진서통전()≫에서는 백두산을 ‘불함산’이라 기록하였다. 전국과 서한 초년의 지리서 ≪산해경≫은 “숙신은 불함산 북쪽에서 살고 있다.”고 했고 또한 “대황 가운데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불함산이고 숙신국에 있다.”고 하였다. 불함산()이란 신무조화를 부리는 흰산이라는 의미이다. “(대황지중유산), (명왈불함), (유숙신씨지국)”의 의미는 2,000년 전 백두산이 흰 부석을 분출하여 화산 위에 쌓여 희고, 주위의 흰 부석사막 가운데 조화를 부리는(화산 분출) 흰 산이 있는데, 산 이름은 불함산이고 숙신국에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두산 이름의 변천사 (백두산 화산, 2011. 7. 1., 시그마프레스㈜)


이 지역을 관북지방이라고도 한다. 함경이란 함흥과 경성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지명이다. 본래 숙신국()의 땅이었는데 일명 읍루()ㆍ물길()ㆍ말갈()ㆍ여진() 등의 명칭이 있었다.

서기전 2세기경에 한나라가 이곳에 현도군()을 함흥 부근에 설치하였고, 뒤에 옥저국()이 설치되었다. 이곳에는 동옥저(개마고원 동쪽지방)ㆍ남옥저(함흥평야지방)ㆍ북옥저(북동해안지방) 등이 있었다. 56년(태조왕 4)에 고구려가 동옥저를 멸하여 영토를 넓혔고 3세기경에는 신라의 영토가 영흥평야()까지 다다랐다.

[네이버 지식백과] 함경도 [咸鏡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西
원문) . . .
숙신국()은 백민국()의 북쪽에 있으며, 나무 이름은 웅상()이며, 선인()들을 치고 제국()이 되어 숙신국을 취하게 되었다. 원가()는 대황북경()에 의하면 크게 거친 가운데 산이 있는데 이름을 불함()이라고 했다. 이곳에 숙신씨()의 나라가 있다고 적고 있다.

회남자() 지형훈()편에는 숙신민()이 있다고 했다. 또 주서() 왕회편()에 의하면 직신()이 숙신()이라고 되어 있다. 곽박에 의하면 낙()이라 했는데 숙신()을 큰사슴으로 비유한 주서()와 왕희편()과는 달리 올빼미 낙()이라 했다.

원가()는 에 있는 웅상()을, 회남자 지형훈편에 있는 낙당()에 의하면 무()은 서북쪽 구석에 있다고 했다. 고유()의 주석에 의하면 모근 해가 들어가는 곳에 산이 있다고 한 것은 의문이 아니다라고 했으며, 낙당()은 당연히 에 있는 것과 같이 웅()이라고 했다. 곽박에 의하면 혹은 낙()이라도 하고 상()은 나무의 이름이라고 했다. 다시말해 웅()은 낙()이라고 하고 상()은 나무의 이름이라고 한 것은 아주 잘못된 해석이다.

왜냐하면 숙신()은 필자가 전술한바와 같이 요()임금의 아버지 제곡고신씨의 큰아들이자 요임금의 큰형님이 직()이다. 본래 직()은 직신()이라 했고, 그후에 식신()이라고 했으며, 나라가 북방으로 광대해지자 숙신()이라고 했다. 숙신국의 강역()이 제일 강대했을 때는 지금의 하북성()북방과 산서성(西) 북방, 그리고 섬서성(西) 북방은 물론 서역(西)과 내몽고()와 연결된 만주(滿) 일대가 모두 숙신국()의 고토였음을 사서()가 증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숙신()을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웅상()이라고 하는 것은 웅족으로서 나무처럼 굳센 의지를 가진 부족을 뜻한다.

원가()는 송서()으 본기와 오관()의 본문과, 모의(의 본문, 그리고 장경()의 본문에서는, 선입벌제()가 아니라 선입대제()의 벌()자도 아니고 대()자라고 적고 있다. 이와같이 본다면 숙신국()은 제왕()의 재를 이어온 것이 맞는 해석이라고 본다. 사실 숙신국은 선조의 왕조를 정벌하고 세운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벌()자가 아니라 대()가 맞다는 것을 필자도 인정한다. 곽박에 의하면 숙신국은 풍속이나 의복이 없었다고 적고 있는데 이것은 크게 잘못이다. 왜냐하면 요()임금의 형님인 직()의 부족은 옷이 없고 풍속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숙신국은 주로 북방을 무대로 활동해 왔기 때문에 추운 지방에서 옷이 없고 풍속이 없다는 말은 완전히 역사를 날조하려는 의도에 불과하다고 본다.

숙신국은 전술한 바와 같이 성군()의 대를 이어왔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고 곽박은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 해설이다. 원가()는 에 있는 선입벌제()로 인하여 숙신국을 취한 것으로 적고 dLT다. 왕념손()에 의하면 태평어람() 동이() 784권에는 선인대제(), 즉 선인의 대를 이어 제왕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숙신국을 세우고 옷을 입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태평어람() 목부() 10편 961권에는 성인대립()이라 했다. 이 말은 성인의 대를 이어 세운 나라이며 옷을 입었다고 되어 있다. 원가()는 곽박의 주석을 동의하는 뜻에서 성인대립() 어차취의()라고 하였다. 성인의 대를 이어 나라를 세우고 옷을 입었다고 했다. 손성연()도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산혜경 해외서경중 숙신국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백두산), 2004., 한국콘텐츠진흥원)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는 “읍루()는 그 활의 길이가 4척이니 그 힘이 노()와 같으며, 화살은 광대싸리[]나무를 사용하니 그 길이가 1척 8촌이며 청석()으로 화살촉을 만든다. 옛날의 숙신국은 활쏘기를 잘하여 사람을 쏘매 모두 맞고 화살촉에 독()을 발랐으므로 사람에게 맞으면 모두 죽는다. 그 인구는 적으나 살고 있는 곳이 험한 산중인 데다 이웃나라 사람들이 그 활을 두려워하여 마침내 그들을 정복하지 못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는 “숙신의 호노()는 천하가 보배로 삼는다”고 칭찬하고 있다. 이것은 호시가 쇠를 뚫는 위력을 가졌기 때문이며 그 비결이 후세에 전수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호()란 광대싸리나무를 말하며 그 주산지가 두만강구의 서수라(西)였으므로 일명 서수라목이라고도 하였다. 서수라(함경북도 경흥군 노서면 서수라동)에는 진()이 있어 국경을 수비하는 군대가 상주하고 있었으며 그 주무기는 활이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대장은 자기가 숙신(: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동북쪽에 있던 나라)의 이름난 장수라고 하면서(토성은 원래 숙신국의 옛 도읍지라고 한다.) 옛날에 자기 겨레가 이곳에서 잘 살았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편안히 살도록 해주면 도사의 자손도 편안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도사는 앞으로 매년 그들을 위해 정중한 제사를 올리겠다고 약속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토성관원놀이 [土城官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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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0-03 16:32
   
숙신ㅡ읍루ㅡ물길ㅡ흑수말갈ㅡ여진족

흑수말갈(여진족)+발해유민+신라유민 = 고려시대 여진족
바카스 17-10-04 17:56
   
그냥 조선유민
그당시 아메리카 인디언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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