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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05 09:39
[기타] 예맥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2,123  

고대 한민족의 종족명. 예족과 맥족을 나누어 따로 보는 견해도 있고, 예맥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예와 맥을 갈라 보는 견해에 의하면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해진 것으로 본다. 예맥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 의하면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맥족 [濊貊族]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


정의

고대 만주지역에 거주한 한국의 종족 명칭.

개설

예()와 맥()으로 나누어 파악하기도 한다. 예·맥·예맥의 상호관계와 그 종족적 계통에 관해서는 일찍부터 논란이 되풀이되어 왔다. 예맥에 대해서는 예와 맥으로 나누어 보거나, 예맥을 하나의 범칭()으로 보는 견해, 예맥은 맥의 일종이며, 예는 예맥의 약칭이라는 등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었다.

내용

일찍이 정약용()은 맥은 종족 명칭이고, 예는 지역 또는 강의 이름이라고 보아, 예맥은 맥족의 아홉 갈래() 중의 하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하였다. 능순성()도 예는 예수()지역에 거주했던 맥족이라고 하여 동일하게 이해하였다.

미지나()는 선진()문헌에 보이는 맥은 북방족에 대한 범칭이며, 예는 진대()의 문헌에서 처음 보이는데, 한대()에 범칭되는 예는 고구려·부여·동예를 포괄하는 민족명이라고 보았다. 예맥이라는 호칭은 현실적인 민족명과 고전적인 북방족에 대한 범칭인 맥을 결합시킨 편의적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하면서, 고구려를 지칭한 맥은 민족명인 예족 내의 특정한 부족명이라 하였다. 곧 한대 이후의 맥은 예와 동일한 계통의 실체라 하였다.

윤무병()은 예맥이라는 명칭은『사기()』에서부터 사용되었는데, 예족과 맥족을 합친 범칭이 아니라 맥족인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한대 이후의 예와 (예)맥은 동일계통 내에서 각각 구분되어졌던 실체였다고 보았다.

한편, 예일부()는 한민족을 예맥과 한()의 양계로 구성되었다고 하면서, 예맥족 중 예족은 한반도 중북부와 송화강·길림·눈강()지역 등에 살았고, 맥족은 산동·요동·발해만 연안 등에 거주해, 거주지역의 분포에 따라 예와 맥이 구분되었다고 보았다. 김정배()도 예·맥·한은 동일계 족속으로서 그 분포지역의 차이에 따라 각각 구분되어졌다고 보았다.

이종설()의 대표적인 주장자는 미카미()인데, 그는 예족은 유문토기문화()를 영위했고, 생활방식에 있어서 수렵·어로의 비중이 컸던 고아시아족(Asia)계통이고, 맥족은 무문토기문화()를 남긴 퉁구스족계통으로 파악하였다. 미카미의 주장은 빗살문토기문화와 무문토기문화가 같은 시기의 것이 아니라 시대를 선후하는 문화였다는 사실이 확실해짐에 따라 부정되어졌다.

한편, 이옥()은 맥족과 예족은 원래 중국의 산시성·허베이성 방면에 각각 거주하다가 점차 동으로 이동해왔는데, 서기전 3세기 무렵 장춘·농안 방면에 먼저 정착해 있던 예족은 이어 이동해온 맥족에게 밀려 남으로 왔다가 고조선에 쫓겨 요동군()에 예속하게 된 것이 예군() 남려()의 집단이었고, 이 예의 일부가 맥족에 흡수되어 서기전 2세기경 새로운 종족인 예맥이 성립했으니 이것이 고구려족()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렇듯 백가쟁명 식으로 다양한 견해들이 제기되어 왔다. 현재 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이더라도 다른 갈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맥 내부의 여러 집단 중에 우세한 집단이 등장하여 주변 세력을 병합하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다. 예맥이 고조선()을 구성하는 종족집단을 이루었고,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했던 한족()과 더불어 한민족 형성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한편 고구려의 종족기원과 관련하여 예·맥·예맥이 많이 주목되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현재로서는 정설이 없다. 고구려의 종족 기원에 대해서는 예족설, 맥족설, 예맥족설, 예맥족에서의 분화설, 원래는 예족인데 명칭상 맥족이라는 설 등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제시되었다. 어느 하나로 단정지을 수는 없고 고구려 종족은 지역에 따라 대수맥()·소수맥() 등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2세기 요동()에서 청천강에 이르는 지역에서 세형동검()과 주조철부() 등 초기 철기문화를 사용하는 집단이 거주했다. 이들은 늦어도 기원전 3세기 말에는 철기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석묘()를 축조하면서 주변지역과 구별되는 문화적 전통을 수립하였다고 추정된다. 철제 농기구의 보급은 농경기술의 발달과 생산력의 증대를 가져왔을 것이다. 나아가 인구의 증가와 사회분화를 촉진시켜 혼강()과 압록강 중류 지역 각지에서 점차 새로운 정치체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을 태동시켰다. 고구려 발흥지인 혼강과 독로강(禿) 유역을 포괄한 압록상 중류 유역에 거주하던 주민은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점차 맥족이라고 불렀다. 부여 방면에서 이주해 온 일부 예족이 이에 융합되었다. 이어 고구려의 성장과 함께 인근의 여러 족속들이 흡수되어 고구려가 확대되었다.

고구려는 주어진 환경의 열악성과 경제적 기반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팽창정책을 구사했다. 이 과정에서 예맥계 종족이 주민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두만강·대동강·요하·송화강 유역을 차례차례 제압해 나가면서 이들 주민들을 고구려 국가지배구조 내로 편입시켰다. 고구려는 동질성을 인정할 수 있는 주민들이 사는 지역을 우선적으로 확보하여 전략거점화하고, 이들을 고구려인으로 동화·통합시키는 정책을 수행해나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맥 [濊貊]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맥(:), 또는 예(: ·)라고도 약칭하였다. 중국 고전의기록에 의하면 《시경()》 《논어()》 《중용()》 《맹자()》에는 맥()으로, 《사기()》의 <흉노전()> <화식전()>에는 예맥으로 기록되어 있다. 맥족의 원주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으나 《위지()》 <고구려전>에 따르면 대수(:라고 하였던 ) 유역에 거주한 부족과 소수(:라고 하였던 ) 유역에 거주한 2개의 집단이 있어 각기 수장()을 추대하고 있었는데, 한인()들이 소수지역에서 거주한 집단을 소수맥이라 칭하였다. 또한 《한서()》 <무제기 원삭원년조( )>와 《후한서()》 동이전 예조( )에 보면 BC 128년 예의 군장()인 남려()는 조선왕 우거()와의 관계를 끊고 그가 지배하던 전예맥사회의 인구 28만을 이끌고 한()의 요동군()에 가서 내속(: 예속적 관계)을 청하였다.

무제는 그곳에 창해군()을 설치하여 이들을 거주하게 하였으나 BC 126년에 폐지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당시의 남려는 대수맥소수맥을 연합한 최고의 맹주()였음을 알 수 있다. 예맥족은 이후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등으로 중국 북동부와 한반도의 동부 및 중부에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또 고조선준왕()이 남으로 망명할 무렵 북방에서 함께 내려온 이주민들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 토착민과 연합하여 삼한()이라는 연방체를 만들었다. 여기에 고구려의 한 갈래인 위례()가 한강 유역에 자리잡으면서 차차 커져서 백제가 되었는데, 이 또한 예맥족의 나라이다.

이 사실로 미루어 예맥족은 초기에 숙신()과 동호() 사이에 끼어 중국쑹화강[] 및 헤이룽강[]과 압록강 ·두만강 유역 및 한반도 북부 지역인 함경도 ·강원도 등지에 걸쳐 살고 그 갈래가 남부에 백제를 이루며 번창한 대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종족상으로는 알타이어계()의 퉁구스족()에 속하는 한 갈래이다. 농경문화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발전하면서 한민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예맥 [濊貊] (두산백과)


역사

예맥은 맥(貊·貉) 또는 예(濊·穢·薉)로도 불렸는데, 서쪽으로는 동호(東胡), 동쪽으로는 숙신(肅愼)과 접해 있었다.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송화강, 압록강 유역과 동해안 일대(한반도평안도·함경도·강원도, 만주의 랴오닝 성지린 성)에 걸쳐 정착하며 활동한 대민족으로 추측된다. 부여(扶餘)·고구려·옥저·동예 등으로 부르는 여러 족속들은 모두 예맥에 포괄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커진 백제 역시 예맥족의 나라이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박의 《이아(爾雅)》,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맥(貊)'이 곰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있다.[2] 이로부터 단군신화(檀君神話)에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키는 사실을 설화로서 전해주는 신화(神話)로 남아있다고 여겨지고 있다.[1]

평가

대한민국 학계에서는 예맥이 예와 맥으로 구분되지만 서로 다른 계통이 아닌 하나의 계통(系統)이며, 다만 세부적으로 갈라진 갈래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예와 맥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서로 구분이 되지만 종족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예맥 내부의 여러 집단들의 경쟁 속에서 우세한 집단이 주변 세력을 병합하면서 점차 세를 키워나갔는데, 단군신화에 전해지는 설화처럼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켜 고조선을 구성하는 종족집단을 이루었고, 이후 대표적인 예맥족인 부여로 그 세력이 계승되어 한반도 중남부에 거주했던 토착민과 더불어 한민족 형성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는 견해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3]

근대 역사학의 단초를 열었다고 평가되는 신채호는 부여사를 주목하였다. 신채호는 《독사신론》에서 기존의 기자-마한-신라로 이어지는 정통론을 부정하고, 부여주족론(扶餘主族論)을 제기하였다. 신채호는 민족사 가운데 가장 주동력이 되는 종족을 ‘주족(主族)’으로 간주했는데, 부여족을 주족으로, 주변의 지나족(支那族) · 말갈족 · 여진족 · 선비족 · 일본족 등은 객족(客族)으로 보았다. 이는 "4천년 민족사는 부여족 성쇠소장(盛衰消長)의 역사"라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부여의 터전은 지금의 만주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했는데, 거기에서 동부여가 나오고, 그 동부여에서 고구려의 지배층이 된 주몽 집단(계루부 왕실)이 나왔다. 주몽 집단은 압록강 일대에 진출하여 졸본부여, 곧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그러자 압록강 유역에서 먼저 살던 주민들 중 일부(비류·온조 집단)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세웠다. 따라서, 고구려백제 모두 부여에서부터 분리된 집단이다.

가야가 있던 경상남도의 지역에서도 청동 솥을 비롯해 북방 유목민족이나 부여 계통의 유물들이 나오는데, 부여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반도 남동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된다. 게다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시조 대조영발해는 “부여, 옥저, 변한, 조선의 땅과 바다 북쪽 여러 나라의 땅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여 부여를 자신들의 오래 된 조상의 나라로 보았다. 중국 송나라 때의 역사책 ‘무경총요’에서도 발해가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본래 예맥의 땅이었다”고 하여 발해고구려백제처럼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았다.[4]

논란

예·맥·예맥은 특히 고구려의 종족기원과 관련하여 많이 주목되었다.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어 현재로서는 정설이 없다. 고구려의 종족 기원에 대해서는 예족설, 맥족설, 예맥족설, 예맥족에서의 분화설, 원래는 예족인데 명칭상 맥족이라는 설, 고구려는 여러 종족이 결합된 나라이므로 지역에 따라 대수맥(大水貊)·소수맥(小水貊) 등 조금씩 다른 부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 등 상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모두 학설로 제시되고 있다.[1][5]

  • 조선정약용은 맥은 종족 명칭, 예는 지역 또는 강의 이름이라고 보아 예맥은 맥족의 아홉 갈래(九貊) 중의 하나를 지칭한 것이라고 하였다.
  • 중국의 능순성(凌純聲:zh.wikipedia)도 예는 예수(濊水)지역에 거주했던 맥족이라고 하여 정약용과 동일하게 이해하였다.
  • 일본의 미시나장영(三品彰英:ja.wikipedia)는 선진(先秦)문헌에 보이는 맥은 북방족의 범칭이며, 예는 진대(秦代)의 문헌에서 처음 보이는데 한대(漢代)에 범칭되는 예는 고구려·부여·동예를 포괄하는 민족명이라고 보았다. 예맥이라는 호칭은 현실적인 민족명과 고전적인 북방족에 대한 범칭인 맥을 결합시켜 편의적으로 쓰여진 것이라고 하면서, 고구려를 지칭한 맥은 민족명인 예족 내의 특정한 부족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곧 한대 이후의 맥은 예와 동일한 계통의 실체라는 것이다.
  • 윤무병(尹武炳)은 예맥이라는 명칭은 사마천의『사기(史記)』에서부터 쓰였는데, 예족과 맥족을 합쳐 부르는 말이 아니라 예맥은 맥족인 고구려를 지칭하는 것이었고, 한대 이후의 예와 맥(예맥)은 동일계통 내에서 각각 구분되었던 실체였다고 보았다.
  • 예일부(芮逸夫)는 한민족을 예맥과 한(韓)의 양 계통으로 구성되었다면서, 예맥족 중 예족은 한반도 중북부와 송화강·길림·눈강(嫩江)지역 등에 살았고, 맥족은 산동·요동·발해만 연안 등에 거주했으며, 거주지역에 따라 예와 맥이 구분되었다고 보았다.
  • 김정배(金貞培)도 예·맥·한은 동일계 족속으로서 그 분포지역의 차이에 따라 각각 구분되었다고 보았다.
  • 이옥(李玉)은 맥족과 예족은 원래 중국산서성(山西省)·하북성(河北省) 방면에 각각 거주하다가 점차 동으로 이동해왔는데, 기원전 3세기 무렵 장춘·농안 방면에 먼저 정착해 있던 예족은 이어 이동해온 맥족에게 밀려 남으로 왔다가 고조선에 쫓겨 요동군(遼東郡)에 예속하게 된 것이 예군(濊君) 남려(南閭)의 집단이었고, 이 예의 일부가 맥족에 흡수되어 서기전 2세기경 새로운 종족인 예맥이 성립한 것이 고구려족(高句麗族)이라고 주장하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8%88%EB%A7%A5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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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0-05 10:11
   
중국 상고사를 보면 '맥'이라고 했다가 '예맥'이라고 합니다. '호'라고 하다가 '동호'라고 합니다.
동호는 '동 族' 과 '호 族'으로 분리가 되느냐 ? 불가합니다.

주류사학이 떠드는 주장의 대부분은 '삼국지 위서동이전'의 주석문을 붙잡고 용쓰는 수준입니다.
상고사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면 그런 소리 못합니다.
위서동이전에서 역으로 중국상고사를 파고들다보니 다른 소리가 나오는거죠.

기존 사학자들의 관점이 위서동이전이라서 문제인겁니다.
중국상고사의 관점에서 동이전을 봐야 하는데, 위서동이전 관점에서 상고사를 바라보니 답답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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