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를 깊이 배우지 못한 탓에 이런 얘기를 하는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고구려 사에 등장하는 말갈이라는 집단에 대해 평소부터 좀 관심이 있던 편입니다.
말갈은 훗날 금--부족 분열기-후금-청으로 이어지는 여진족의 조상으로 유력시되는데요.
나름대로 추측해봤습니다.
우선 고구려의 건국 주역은 잘 아시다시피 주몽입니다.
그런데 주몽은 한반도 바로 위쪽에 위치한걸로 알려진 부여라는 왕국의 왕자죠.
주몽은 부여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지게 되고, 자신을 지지하던 계층, 집단, 사람들을 이끌고 한반도로 남하합니다.
그런데 남하하는 도중 압록강 일대에 자리잡고 있던 6개 부족을 발견하죠.
남하를 멈춘 주몽은 6개부족을 설득해 주몽 일행을 포함한 6개 부족 동맹체를 결성합니다.
여기서 주몽을 따라온 집단+5개 부족인지, 아니면 주몽을 제외하고 6개부족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고구려라는 이름의 부족 동맹체를 결성시킨 주역인만큼 주몽은 고구려의 왕에 가까운 대접과 권위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숫적으로도 그렇고 실제 권력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는 주몽을 제외한 5개내지는 6개 부족이 고구려를 움직였을겁니다.
명예직정도인 수장으로 주몽을 앉혔겠죠.
주몽의 요청이 오면 병사들을 파견하거나,주몽이 제시하는 정책에 동의를 해 주는 정도로 그쳤을 겁니다.
그리고 주몽을 지지하는 부족과는 별도로 군대에서 행정, 외교까지 6부족은 독자적으로 움직였을거라고 보는데요.
지금의 표현으로 말하면 주몽과 그 일족은 유엔 사무총장 격이고, 고구려 군은 주몽 일족의 병사에 더해 6개부족이 파견한 병사들로 구성된 평화 유지 군 격이었겠죠.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대소사는 유엔의 안전 보장 이사회처럼 주몽과 6개부족의 대표의 협의체가 결정하고,
그 하부 조직들은 주몽 일족의 관료와 6개부족이 보낸 관료들이 협의를 해 처리했을 겁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주몽 일족의 힘과 권위가 강해지면서 6개 부족의 지배층은 귀족 정도로 권위와 힘이 약해졌을 겁니다.
하지만 고구려의 시작이 부족간 동맹체였다는 점에서,
6개부족의 고위층부터 일반 피 지배층은 고구려 왕실보다는 자신들이 속한 부족을 더 우선시했을거라는 거죠.
이건 전반적으로 고구려의 신민들중 옛날 주몽을 따라온 계층을 제외한, 조상이 6개 부족 출신인 대다수가 그런 정서를 공유했을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갈이 과연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노예 정도에 지나지 않는 피 지배 민족인가? 라는 의문이 듭니다.
여러 역사 서에서 말갈은 정말 피 지배 민족 맞아? 싶을 정도로 좋은 대우를 받고 고구려의 위기 때마다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의 군대와 함께 싸웠거든요.
이런 경우는 사실 보기 힘들죠. 한 국가 내에서 좋은 대우를 누리면서, 지 꼴리는 대로 아무때나 자신들만의 군대를 일으킬수 있다니 말이죠.
말갈이 정말 피 지배민족인지 아니면 6개부족의 통칭이거나 그 중 하나의 부족인지는 제쳐두겠습니다.
내가 궁금한건 고구려의 멸망 이후 6개부족의 역사입니다.
물론 고구려의 멸망 당시 주류격인 고구려 왕실과 왕실을 지지하는 부족이 제일 타격이 크겠죠.
하지만 고구려군에 속하거나 아예 별도로 움직이던 6개부족의 병사들도 엄청나게 죽었을 겁니다.
6부족의 일반 민중도 많이 죽거나 당나라나 신라등으로 끌려갔겠죠.
하지만 잠시 반짝이던 부흥운동도 실패하고 고구려는 영원히 다시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고구려를 결성한 주역이었던 6부족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요?
압록강 일대에서 주몽과 함께 고구려를 결성했던 6부족은 고구려 멸망 당시 전멸했을까요?
살아남았다면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역사를 남기고 어떤 이름으로 남았을까?
난 그게 지금 참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