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성의 논문 말미의 결론은 상기 재야사서가 모두 1920년대 이후의 위작이라는 것입니다. 논문 말미에 천부경은 단재 신채호까지도 위서라고 하였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藏書樓 속에 앉아도 서적의 眞僞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聖言이 되는 것이다."
이 인용문은 단재 신채호의 『朝鮮史硏究草』(동아일보 1925)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단재까지도 천부경을 “후인이 조작한 위서“라고 단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재가 1925년 『동아일보』에 실은 이 글은 이름 그대로 그의 논문 초고를 모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완성된 원고가 아니었습니다. 완성된 글은 6년 뒤인 1931년에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상고사」와 「조선상고문화사」였습니다. 천부경에 대한 단재의 최종적인 판단은 이 글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음의 글이 바로 천부경에 대한 단재의 평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의 진귀한 서적들을 불태워 버린(焚棄) 일 (가령 조선태종의 분서 같은)은 있었으나 僞書를 조작한 일은 없었다. 근일에 와서 『천부경』 『삼일신고』 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辨駁도 없이 古書로 믿고 인정(信認)할 이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 우리나라 서적은 각 성씨의 족보 가운데 그 조상의 일들을 간혹 위조한 일이 있으나 그밖에는 그리 진위의 변별에 애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자고로 우리나라와 교류가 빈번하였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 참고할 서적이 많은데 위서가 많기로는 중국 같은 나라가 없다 할 정도이다. 그러므로 중국애서는 위서인가 아닌가를 분별하여 확인(辨認)하지 않으면 절대 인용(引證)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이것을 검증도 없이 우리나라 역사(我史)에 갖다 붙이는 착오가 있다."
단재의 이 글이 매우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는 분명 천부경과 삼일신고가 최근에야 나왔으나 위서는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만일 위의 문장에서 단재가 천부경을 위서라 했다면 <근일에 와서 『천부경』 『삼일신고』 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辨駁도 없으니 그만 古書로 믿고 인정(信認)하게 되었다.> 고 써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천부경의 진위를 따지지 않고 고서로 믿지 않았다. 즉 고서로 믿어야 할 터인데 믿지 않았다>고 썼던 것입니다.
만일 위의 전체 문장에서 <근일에 와서 운운한 부분>을 빼고 읽는다면 우리나라에는 본시 위서가 없었다. 귀중한 진서를 태워 없앤 일은 있었으나 중국과 일본과 같이 위조한 일이 없었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단재는 우리나라에 위서가 없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단재는 천부경과 삼일신고를 위서라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보니 열성종교인이셨군..
"1925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조선사연구초에서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여 '눈깔이 삔 인간이래야 천부경이 단군의 경전이라고 생각할 것'이란 말을 완곡하게 돌려말했으며, 1931년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하던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 太宗의 焚書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라고 하여 아예 위작이란 것에 못을 박아버렸다.[2]
대표적인 민족사학자가 민족의 경전을 위작이라고 단정한 것이 워낙 충격적인 까닭인지 환빠나 천부경을 믿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외면하며, 심지어는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의 연재시기에 6년의 시간차가 있는 것과 조선상고사의 문장을 단장취의하여 '사실 단재는 조선사연구초 당시에는 천부경을 위작이라 부정했으나 조선상고사 연재시에는 이를 인정하고 위작설을 철회한 것' 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조선사연구초나 조선상고사나 단재가 같은 시기에 저술한 원고에 의한 것이라는 게 독립운동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며, 저렇게 말하는 게 무색하게도 저 말은 조선상고사 총론의 '위서(僞書)의 판별과 선택에 대하여'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과연 믿기 위해선 현실도 왜곡하는 것이 인지부조화의 세계."
http://mirror.enha.kr/wiki/부경
엔하위키부터 어떻게 해야 할듯..
"출처가 모호한 것같은 천부경이지만, 실제로는 1969년 한국 신흥종교 연구의 토대를 쌓은 이강오의 실사연구를 통해 어느정도 그 출처가 밝혀져 있었으며, 2003년 삿사 미쓰아키의 연구를 통해 검증되어 현재는 그 출처가 거의 분명히 규명된 상태다.
1910년 나철·김교헌의 대종교로부터 분리된, 정훈모의 단군교로부터 1917년에 등장했을 것이라는 것. 그런데 1911년에 '펴냈다고 하는' 환단고기에 천부경이 버젓이 등장한다. 그래서 여기서도 환단고기가 위작일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환단고기가 위작이라는 것과 출처의 문제를 합하면 결론은 단군교에서 날조했다는 얘기가 된다.
문제는 이 단군교가 한일합방, 3·1운동탄압과 관계된 친일교단이라는 건데, 그렇다면 "친일파들은 대우주의 원리를 알고 있었다!" "친일파들이야말로 진정한 단군 사상의 계승자이자 민족운동가" 였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