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태평한 지가 오래되어서 외환(外患)과 내치(內治)를 전혀 생각하지 않아,
일이 없으면 붓을 휘두르는 것으로 즐기지만 일이 있으면 속수 무책이다.
이 때문에 왜의노예들이 그런 정상을 익히 알고 갑자기 쳐들어와서 함몰시킨 것이다.
그러나 화를 입은 이래 여전히 깊이 징계를 하지 않고서 왜적이 가면 연당(燕堂)에 편히 거처하고 왜적이 오면 초수(楚囚)를 대한 것같이 하니,
오늘날의 조선은 수(隋)·당(唐) 때의 조선도 아니요, 또한 우리 나라 초기의 조선도 아니다. 자꾸만 우리로 하여금 계속 군사를 노숙시켜 오래 수자리 살게 한다면 오래될 경우 중국도 지쳐서 폐해를 받게 될까 염려되니 이는 두 나라가 함께 지치는 길이다. 만전의 대책을 계획하려면 중국의 정치를 본받아서 다스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선조실록 87권, 선조 30년(1597) 4월 13일 계유 7번째기사-
요동 부총병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승훈은 요동 출신이라고 조선에 대해 동족의식과 비슷한 발언까지한다.
총병이 말하기를
" 앞서 많은 후사를 받았는데 나는 조선과는 한 집안 사람입니다. 요동은 옛 고구려의 땅으로 동령위의 사람들은
우리나라(조선)를 가리켜 본향이라고했습니다. 중국 조정의 문무 관원들이 이곳에 많이 나와 있어 용도가 매우 많으니 두루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받으려면 선뜻 받지 어찌 근교를 기다리겠습니까?"
-선조실록 103권 31월 8월9일
성종 12년인 서기1481년, 명나라에서 사신이 오자 조선에서는 창덕궁 인정적에서 연회를 베푼다. 이때 사신은 어린 기생이 추던 춤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사신과 성종사에 이런 문답이 오고갔다.
"이것이 무슨춤 입니까?"
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이 춤은 고구려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름은 <동동무>라 하지요."
-성종실록 132권 12년8월 3일
2월17일 정오에 왕씨 성과 송씨 성의 아찰어사 두 대인이 나를 예빈관에서 대접하고는 묻기를,
"당신 나라는 무슨 장기가 있어서 능히 수나라, 당나라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지모 있는 신하와 용맹한 장수가 군사를 부리는 데 방법이 있었으므로,
병졸 된 사람들은 모두 윗사람을 친애하고 장상을 위해 죽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고구려는 천하의 백만 군사를 두 번이나 물리쳤습니다.
지금은 신라, 백제, 고구려를 합쳐서 한 나라가 되었으니,
물산은 많고 땅은 크며, 재물은 넉넉하고 군사는 강성하며, 충성스럽고 지모 있는 선비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표해록>-조선 성종때 명나라에 표류한 최부
"귀국은 고구려 때부터 강국이라 일컬어졌는데 근래에 와서 선비와 서민이 농사와 독서에만 치중한 탓으로 이와 같은 변란을 초래한 것입니다."
-선조실록 39권, 선조 26(1593)년 6월 5일 무자 5번째 기사-
귀국의 강한 군대는 본디부터 천하에 소문이나 천하의 군대라칭했는데, 수(隋)ㆍ당(唐) 때는 그리도 굉장했으면서 풍신수길(?臣秀吉)의 난에는 어째서 그리 방황하십니까?
-<금계일기> 5월 20일자 기록-
이 때 조선의 昇平이 오래 되어 군대는 전쟁을 익히지 않았고 李?(-선조) 또한 술에 빠져 방비를 게을리 했다. 갑자기 섬의 오랑캐가 난리를 일으키자 모두가 방황해버렸다.
-<明史> 권320 列傳 208, <朝鮮>-
조선=고구려를 동일국가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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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도경(1123)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4개월간 머문 뒤 작성한 고려견문록.
"고려 왕씨의 선조는 고구려의 대족이다."
- 고려도경(高麗圖經) 서문-
옛날 제(齊)나라 영녕(永寧) 연간(즉, 301년 ~ 302년입니다.) 에 고구려 사신이 왔을때 궁고(窮袴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거풍(炬風)을 썼었다. 중서랑 왕융이 이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의복이 맞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다. 머리에 쓴 것은 무슨 물건입니까? 하니, 대답하기를 " 이는 옛날 고깔의 유상(遺像)이오." 하였다. 지금 고려의 높은모자의 제도를 보니, 그 거풍의 풍속은 아직도 그런가보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주 : 두가지 중요한 점을 확일할수 있습니다.첫째는 고구려의 관직자의 대답으로 " 옛날 고깔의 유상이오" 라는 말은 전대인 고구려의 이전부터 한반도를 중심으로 남아있는 풍속으로 추론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도경을 쓴 저자인 송나라인 서긍의 생각입니다. 지금도 높은 모자의 제도를 보니 그 거풍의 풍속은 아직도 그런가보다. 라는 구절은 바로 전대고려(고구려)의 풍속을 현재의 고려가 잇고 있다고 생각하는 구절로, 당재 중국인들의 고구려와 고려에 대한 통시적인 인식을 엿볼수 있습니다.)
고려=고구려 역시 동일국가 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