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쪽으로 200리 떨어져 있다. 현주(
顯州) 봉선군(
奉先軍)이 설치되었으며 상등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현덕부(
顯德府)가 있던 곳이다. 세종(
世宗)이 설치하여 현릉(
顯陵)를 섬기게 하였다. 현릉은 동란국(
東丹國)의 인황왕(
人皇王)의 무덤이다. 인황왕은 독서를 좋아하고 사냥을 즐기지 않았다. 책을 수만권 구입하여 의무려산(
醫巫閭山) 꼭대기에 두고, 집을 지어 당호를 망해(
望海)라고 하였다. 산남쪽에서 바다까지 130리 떨어져있다.
대동(
大同) 원년(947) 세종이 인황왕의 영구를 직접 호위하여 변경(
汴京)에서 돌아왔다. 인황왕이 의무려산의 기이함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이곳에 장사지냈던 것이다. 산 형세가 여섯 겹이어서 그 안에 영정을 모신 전각을 만들었는데, 규모가 크고 아름다웠다. 현주는 산의 동남쪽에 있는데 동경의 300호를 옮겨 이곳에 채웠다. 응력(
應曆) 원년(951) 목종(
穆宗)이 세종의 무덤을 현릉 서산에 쓰고 나무 채취를 금지시켰다. 산이 13개나 있고, 사하(
沙河)가 있다.
장녕궁(
長寧宮)과 적경궁(
積慶宮)에 예속되었으며, 군사 관련업무는 동경도부서사(
東京都部署司)에 속하였다. 3주와 3현을 관할하였다. 봉선현(
奉先縣) 본래 한나라 무려현(
無慮縣)으로 바로 의무려(
醫巫閭)이다. 유주(
幽州)의 진산(
鎭山)이다. 세종이 요동 장락현의 백성을 나누어 능을 지키는 민호로 삼아 장녕궁에 예속시켰다. 산동현(
山東縣) 본래 한나라 망평현(
望平縣)이다. 목종이
발해 영풍현의 백성을 나누어 능을 지키는 민호로 삼아 적경궁에 예속시켰다.
귀의현(
歸義縣) 처음 현주에 설치하니
발해의 백성들이 스스로 와서 일을 도우니 세종이 가상하게 여겨 그들의 호적에 따라 현을 설치하고 장녕궁에 예속시켰다. 가주(
嘉州) 가평군(
嘉平軍)을 설치하였는데 하급이며 자사를 두었다. 현주에 예속되었다. 요서주(
遼西州) 부성군(
阜成軍)을 설치하였는데 중급이며 자사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요서군(
遼西郡) 지역이다. 세종이 주를 설치하고 장녕궁에 예속시키고 현주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장녕현(
長慶縣) 통화 8년(990) 제궁제할사(
諸宮提轄司)의 인호로 설치하였다. 강주(
康州) 하급이며 자사를 두었다. 세종이
발해 솔빈부(
率賓府) 인호를 설치고 처음에는 현주에 예속시켰고, 나중에는 적경궁에 귀속시켰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솔빈현(
率賓縣) 본래
발해 솔빈부 지역이다. 종주(
宗州)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요동 석웅산(
石熊山)에 있는데 야율융운(
耶律隆運)이 노략한 중국인으로 설치하였다.
성종이 주로 만들어 문충왕부(
文忠王府)에 예속시켰다. 왕이 죽자 제할사(
提轄司)에 예속시켰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웅산현(
熊山縣) 본래
발해의 현이다. 건주(
乾州) 광덕군(
廣德軍)이 설치되었고 상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무려현(
無慮縣)이다. 성종 통화 3년(985)에 설치하였는데 경종(
景宗)의 건릉(
乾陵)을 섬기게 하였다. 응신전(
凝神殿)이 있다. 숭덕궁(
崇德宮)에 예속시켰으며,군사와 관련된 일은 동경도부서사(
東京都部署司)에 속하게 하였다.
1주 4현을 관할하였다. 봉릉현(
奉陵縣) 본래 한나라 무려현(
無慮縣) 지역이다. 누락된 장호(
帳戶)들을 모아 산릉을 조영하는 데 돕게 하였다. 연창현(
延昌縣) 연창궁(
延昌宮)의 민호를 나누어 설치하였다. 영산현(
靈山縣) 본래
발해 영봉현(
靈峰縣) 지역이다. 사농현(
司農縣) 본래
발해 녹군현(
麓郡縣)으로 녹파현(
麓波縣)과 운천현(
雲川縣)도 병합하였다. 해북주(
海北州) 광화군(
廣化軍)이 설치되었고 중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세종이 노략한 중국인 민호로 설치하였다.
지역은 여산(
閭山)의 서쪽과 남해(
南海)의 북쪽에 있다. 처음 선주(
宣州)에 예속시켰다가 나중에 건주(
乾州)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개의현(
開義縣) 하나이다. 귀덕주(
貴德州) 영원군(
寧遠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양평현(
襄平縣)이 있던 곳으로 공손탁(
公孫度)이 점거하였다. 태종 때에 찰할(
察割)이 노략한 중국인으로 설치하였다. 나중에 반역죄로 죽임을 당하고 몰수되었다. 성종이 귀덕군(
貴德軍)을 세우고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타하(
陀河)와 대보산(
大寶山)이 있다.
숭덕궁(
崇德宮)에 예속되었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동경도부서사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둘이다. 귀덕현(
貴德縣) 본래 한나라 양평현(
襄平縣)이며
발해 때는 숭산현(
崇山縣)이다. 봉덕현(
奉德縣) 본래
발해 연성현(
緣城縣)으로 일찍이 봉덕주(
奉德州)를 설치하였다. 심주(
瀋州) 소덕군(
昭德軍)이 설치되었고 중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읍루국(
挹婁國) 지역이었다.
발해가 심주(
瀋州)를 설치하였고 옛 현이 아홉인데 모두 폐지되었다. 태종이 흥료군(
興遼軍)을 설치하였다가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처음에는 영흥궁(
永興宮)에 예속시켰다가 나중에 돈목궁(
敦睦宮)에 속하였다.
군사와 관련된 일은 동경도부서사에 속하게 하였다. 1주 2현을 관할하였다. 낙교현(
樂郊縣) 태조가 계주(
薊州)의 삼하민(
三河民)을 사로잡아 삼하현(
三河縣)을 세운 뒤 이름을 바꾸었다. 영원현(
靈源縣) 태조가 계주의 관리와 백성을 사로잡아 어양현(
漁陽縣)을 세운 뒤 이름을 바꾸었다. 암주(
巖州) 백암군(
白巖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백암성(
白巖城)이다. 태종이 심주에 속하게 하였다. 처음에는 장녕궁에 예속시켰다가 나중에 돈목궁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백암현(
白巖縣)
발해가 설치하였다. 집주(
集州) 회중군(
懷衆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옛 비리군(
陴離郡) 지역으로 한나라 때 험독현(
險瀆縣)에 속하였고, 고구려 때는 상암현이며
발해가 주를 설치하였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봉집현(
奉集縣)
발해가 설치하였다. 광주(
廣州) 방어(
防禦)를 두었다. 한나라 때 양평현(
襄平縣)에 속하였고 고구려 때는 당산현(
當山縣)이며
발해 때는 철리군(
鐵利郡)이었다.
태조가
발해인을 옮겨 거주시키며 철리주(
鐵利州)를 세웠다. 통화 8년 없애고, 개태 7년 중국인 민호를 설치하였다. 관할 현은 창의현(
昌義縣) 하나이다. 요주(
遼州) 시평군(
始平軍)이 설치되었고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불녈국(
拂涅國)의 성으로
발해 때는 동평부(
東平府)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이세적(
李世勣)이 요동성을 함락시켰고, 고종(
高宗)이 조서를 내려 정진(
程振)과 소정방(
蘇定方)이 고구려를 정벌할 때 신성(
新城)에 이르러 대파한 곳이 모두 이곳이다. 태조가
발해를 정벌할 때 먼저 동평부를 격파하고 백성을 옮겨 채웠다.
그러므로 동평부는 이주(
伊州)·몽주(
蒙州)·타주(
陀州)·흑주(
黑州)·북주(
北州)의 5주를 관할하고, 모두 18현을 관할하였는데 모두 폐지되었다. 태조가 주로 고치고 군대 이름을 동평(
東平)으로 하였는데, 태종이 다시 시평군(
始平軍)으로 고쳤다. 요하·양장하(
羊腸河)·추자하(
錐子河)·사산(
蛇山)·낭산(
狼山)·흑산(
黑山)·건자산(
巾子山) 등이 있다. 장녕궁(
長寧宮)에 예속시켰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
北女直兵馬司)에 소속시켰다. 1주 2현을 관할하였다.
요빈현(
遼濱縣) 안정현(
安定縣) 기주(
祺州) 우성군(
祐聖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몽주(
蒙州) 지역이다. 태조가 단주(
檀州)의 포로로써 이곳에 단주를 세우고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홍의궁(
弘義宮)에 예속시켰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소속시켰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경운현(
慶雲縣) 태조가 밀운(
密雲)의 백성을 사로잡아 이곳에 밀운현(
密雲縣)을 세웠다가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수주(
遂州) 자사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미주(
美州) 지역이다. 채방사(
採訪使) 야율파덕(
耶律頗德)이 휘하의 중국인으로 설치하였다. 목종 때 파덕의 후손이 끊이자 몰수되었다. 연창궁(
延昌宮)에 예속시켰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산하현(
山河縣) 본래
발해의 현이다. 흑천(
黑川縣)과 녹천현(
麓川縣)을 병합하여 설치하였다. 통주(
通州) 안원군(
安遠軍)이 설치되었으며 절도를 두었다. 본래 부여국(
扶餘國)의 수도였으며
발해는 부여성(
扶餘城)이라고 불렀다.
태조가 용주(
龍州)로 고쳤고 성종이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보녕(
保寧) 7년(975) 황룡부(
黃龍府)의 반란인 연파(
燕頗)의 잔당 천여호로 설치하였다가 절도로 승격시켰다. 관할 현은 넷이다. 통원현(
通遠縣) 본래
발해 부여현(
扶餘縣)으로 포다현(
布多縣)을 병합하여 설치하였다. 안원현(
安遠縣) 본래
발해 현의현(
顯義縣)으로 석천현(
鵲川縣)을 병합하여 설치하였다. 귀인현(
歸仁縣) 본래
발해 강수현(
强帥縣)으로 신안현(
新安縣)을 병합하여 설치하였다. 어곡현(
漁谷縣) 본래
발해의 현이다. 한주(
韓州) 동평군(
東平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본래 고리국(
稿離國)의 옛 치소인 유하현(
柳河縣)이다. 고구려는 막힐부(
鄚頡府)를 설치하여 막주(
鄚州)와 힐주(
頡州)를 관할하였다.
발해도 이를 계승하였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 태종이 삼하주(
三河州)와 유하주(
楡河州)를 설치하였는데, 성종이 두 주를 병합하여 설치하였다. 연창궁(
延昌宮)에 예속시켰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유하현(
柳河縣) 본래
발해 월희현(
粵喜縣) 지역으로 만안현(
萬安縣)을 병합하여 설치하였다. 쌍주(
雙州) 보안군(
保安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읍루의 옛땅으로
발해는 안정군(
安定郡)을 두었는데 오래전에 폐지되었다. 구리증(
漚里僧)의 왕이 태종을 따라 남정할 때 사로잡은 진주(
鎭州)와 정주(
定州)의 백성으로 성을 세우고 주를 설치하였다. 찰할(
察割) 반역죄로 죽임을 당하고 몰수되었다. 예전에는 연창궁에 예속되었다가 나중에 숭덕궁으로 속하게 하고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예속시켰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쌍성현(
雙城縣) 본래
발해 안이현(
安夷縣) 지역이다. 은주(
銀州) 부국군(
富國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자사를 두었다. 본래
발해의 부주(
富州)로 태조가 은을 야금한다고 이름을 바꾸었다. 홍의궁(
弘義宮)에 예속시켰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셋이다. 연진현(
延津縣) 본래
발해 부수현(
富壽縣)으로 변경에 연진(
延津)의 옛 성이 있어서 이름을 바꾸었다. 신흥현(
新興縣) 본래 옛 월희국(
越喜國)의 지역이다.
발해가 은 야금지를 설치하여 일찍이 은주(
銀州)를 두었다.
영평현(
永平縣) 본래
발해 우부현(
優富縣) 지역으로 태조가 포로로 설치하였다. 오래전부터 영평채(
永平寨)가 있었다. 동주(
同州) 진안군(
鎭安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한나라 양평현(
襄平縣) 지역이며
발해 때는 동평채(
東平寨)이다. 태조가 주를 설치하고 군대 이름을 진동(
鎭東)이라 하였다가 나중에 이름을 바꾸었다. 창민궁(
彰愍宮)에 예속시켰으며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속하게 하였다. 1주(미상)와 2현을 관할하였다. 동평현(
東平縣) 본래 한나라 양평현 지역이다. 철 산지라 300호를 징발하여 채취와 단련 작업을 시켰고 그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였다.
영창현(
永昌縣) 본래 고구려 영녕현(
永寧縣) 지역이다. 함주(
咸州) 안동군(
安東軍)이 설치되었으며 하급으로 절도를 두었다. 본래 고구려 동산현(
銅山縣) 지역으로
발해는 동산군(
銅山郡)을 설치하였다. 지역은 한나라 때의 후성현(
候城縣) 북쪽과
발해의 용천부(
龍泉府) 남쪽에 있다. 산이 많고 험준하여 도적떼들이 모여있는 곳이어서 평주(
平州)와 영주(
營州)의 객호(
客戶) 수백을 불러 성을 세우고 거주케 하였다. 처음에는 학리태보성(
郝里太保城)이라 불렀다가 개태 8년 주를 설치하였다. 군사와 관련된 일은 북여진병마사에 속하게 하였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함평현(
咸平縣) 당나라 안동도호(
安東都護)가 천보(
天寶) 연간에는 영주(
營州)와 평주(
平州) 사이에 있었다고 하는 곳이 이곳이다. 태조가
발해를 멸망시키고 다시 안동군(
安東軍)을 설치하였다. 개태 연간에 현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