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신봉자들은 일단 자기들의 말을 듣지않으면 전부 식민사관자,민족반역자 로 모는 경향이 너무 심하더군요.대체 뭘믿고 자신들이 민족의지의 대행자라도 되는듯이 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판타지소설과 그다지 신빙성에 차이가 없는 환단고기를 믿는 이들이니 오죽하겠습니까만은. 솔직히 이들의 행태를 보면 50년대 미국의 광신적인 매커시즘 열풍도 이분들 앞에선 한수 접어줘야 할듯합니다
죄송하지만 전 환단고기 비신론자입니다. 물론, 환단고기 자체가 많이 모순적입니다만, 우리들 한민족의 한민족문명권(※만주대륙+한반도+일본열도.)을 부정하는 동북공정&탐원공정&식민주의자&식민사관과 똑같은 주장을 피는 사람들을 겨냥해 이 게시글을 올린 것입니다. 이 글의 논지를 잘못 짚으신 듯 하군요. 그리고 변방경상도, 전략설계, 니르, 반인간같은 한심하디 한심한 인간들이 현장답사, 현장답사자료, 현장답사다큐멘터리 그리고 역사서와 역사적 유물이 모든 걸 100%확실히 증명해주는데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저 기존의 자기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면, 실질적으로는 무조건적으로 환빠...증산도...사이비...대순진리회교도라는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아서 그에 대한 분명한 경고장으로 이러한 게시글을 올린 것입니다.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 거타(居陁)라고도 한다. 인데 신라 문무왕(文武王)이 빼앗아서 주(州)를 설치하였다. 신문왕(神文王)은 거타주를 분할하여서 진주총관(晉州摠管)을 설치하였고, 경덕왕(景德王)은 강주(康州)라 고쳤다. 혜공왕(惠恭王)이 다시 정주(菁州)라 고쳤고, 고려 태조(太祖)는 또 강주라 고쳤다. 성종(成宗) 2년에는 목(牧)을 설치하였다가 14년에 진주라 고쳐서 절도사를 설치하고, 정해군(定海軍)이라 칭하며 산남도(山南道)에 예속시켰다. 현종(顯宗)이 안무사(安撫使)로 고쳤고, 뒤에 8목(牧)의 하나로 정하였다. 본조에서는 태조가 현비(顯妃)의 내향(內鄕)이라는 이유로 진양 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승격시켰는데, 태종(太宗) 때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목으로 만들었다. 세조조(世祖朝)에는 진(鎭)을 설치하였다
. 살천부곡(薩川部曲)
이인로의 《파한집》에, “지리산이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여 꽃같은 봉우리와 꽃받침 같은 골짜기가 면면하게 잇따라서 대방군(帶方郡)에 와서는 수천 리를 서리어 맺히었는데, 산을 둘러 있는 것이 10여 주이다. 한 달이 넘게 걸려야 그 주위를 다 구경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0권 > 경상도(慶尙道) > 진주목(晉州牧)
이 내용이 뜻하는 바를 아시겠나요?
대방군이 어디에 있다고 교과서에서 배우셧는지요?
지금 한반도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며 우리는 얘기합니다만 왜 이씨조선시대의 우리 선조
들은 지리산둘레를 수천리라고 기록했을까요? 기록대로라면 현재의 대한민국엔 지리산만 있어야하는데 말이죠 그냥 식빠를 처럼 선조들이 무식해서 대충 그렇게 적었다고 하실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