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문화권에서 높은 문화와 오랜 전통을 가진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일제에게 당면한 문제는 군사적,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측면에서도 식민모국으로서의 일본이 한반도보다 우위에 있었음을 조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식민지배에 대한 조선인의 저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고 한편 역사적으로 중국 및 한반도지역에 대해 문화적 열등의식에 젖어온 일제 자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도 필요한 일이었다. 도쿠가와(德川) 정권의 에도(江戶)시대부터 한반도지역에 대한 연구가 일어났었다. 이 연구는 성리학자들이 이퇴계(李退溪)의 학문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성리학을 배우는 처지에서 이루어졌고 다른 한편 일본 국학자(國學者)들에 의해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그들의 고전연구와 연관된 조선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 후, 특히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한 19세기 후반기부터 조선연구가 갑자기 활발해져서 일본인에 의한 최초의 통사(通史)라 할 수 있을 하야시 다이스케(林泰輔)의 '조선사'가 출간되었다. 또한 '합방'을 전후한 무렵에는 일본의 어용학자들에 의해 '일선동조론'이 나오고 한국 역사에 있어서의 정체, 후진성론이 이미 성립되기도 했다.
'합방' 후 조선총독부는 발굴과 유적조사 등을 통해 조선의 각종 문화재를 약탈하고 일본 민간인의 공공연한 도굴을 방치하는 한편 식민지 통치목적에 부합하도록 조선 역사를 왜곡해 나갔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조선사' 37권을 편찬했는데 그 편찬요지에서 "조선인은 다른 식민지의 야만적이고 반(半)개화적인 민족과 달라서 문자문화에 있어서 문명인에게 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예부터 전해 오는 사서(史書)도 많고 또 새로운 저술도 적지않다. 그러나 전자는 독립시대, 식민지시대 이전의 저술로서 현대와의 관계가 결여되어 있고, 후자는 독립국의 옛꿈을 추상(追想)하게 하는 폐단이 있다. 후자는 근대조선에 있어서의 일본-청나라, 일본-러시아의 세력경쟁을 서술하여 조선의 향배(向背)를 설명하였고 혹은 '한국통사(韓國痛史)'라고 하는 재외(在外) 조선인의 저서는 진상을 구명하지 않고 함부로 망설(妄說)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 역사책이 인심을 어지럽히는 해독은 헤아릴 수 없다." 라고 하여 '합방' 이전의 한국사 서술체제를 단절시키고 독립운동 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주체적 역사서술 방법론을 절멸시키는 데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어용학자를 동원하고 '조선사' 등을 편찬하여 꾸민 식민사학론은 우리 역사의 흐름을 대체로 타율성(他律性)과 정체후진성(停滯後進性)의 두 가지 성격을 바닥에 깔고 설명했다. 타율성론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사의 주체적 발전과 한반도지역의 독립된 역사성 및 문화성을 인정하지 않는 이론이다. 그 요지는 한반도지역의 역사가 그 주민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발전된 것이 아니라 중국, 만주, 일본 등 주변 민족의 자극과 지배에 의해서만 유지되어 왔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의 경우 소위 일본의 '남한경영설(南韓經營說)' 및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조작하여 한반도의 일부가 일본의 지배 아래 있었다고 하고, 중세시대에는 당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 중국측 여러 나라들의 지배를 번갈아 받았으나 한일 '합방'으로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며, 따라서 '합방'으로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라 고대사회의 한일관계로 되돌아갔다고 하는 악의적인 궤변으로 '합방'을 합리화하려 한 것이다.
다음 한반도지역의 독립된 역사성과 문화성을 인정하지 않는 근거는 '만선사관(滿鮮史觀)'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한반도지역은 본래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갖지 못하고 대륙에서 실패한 정치세력이 옮겨 자리작은 지역이며 문화면에 있어서도 대륙지방의 주변문화가 부단히 옮겨 왔을 뿐이어서 한반도는 대륙지방, 특히 만주지방과 하나로 묶어서만 그 역사 및 문화를 체계화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와 같은 '만선사관'은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가 한민족의 독립의식을 말살하고 만주침략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 어용학자들을 동원하여 억지로 조작한 것이며, 여기에는 일본의 만주 침략기관인 남만주 철도주식회사의 '만선지리역사조사실'이 한몫을 다했다.
한편 정체후진성론은 주로 어용 경제학자들에 의해 세워진 이론이다. 일본을 비롯한 다른 지역이 세계사적인 발정과정에 따라 시대별로 단계적인 발전을 거듭한 데 반해 한반도의 역사는 세계사적 발전성이 결여되어 근대 초기까지도 고대사회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합방' 이전 즉 20세기 초 조선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일본의 고대사회 말기인 10세기경의 그것과 같다는 주장을 내어놓았다. 이는 조선사회가 일본이 '합방'으로 지배하기 전까지 중세시대에도 들어가지 못한 고대사회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따라서 일본의 조선지배는 조선사회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고대적인 것에서 일약 근대적인 것으로 도약시켰다고 주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어용이론이 모두 한반도의 소위 '반도적 성격론'을 바탕으로 하여 그럴듯하게 꾸며졌고 또 근대역사학적 실증주의적 방법론에 의해 논증된 것 같이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것은 객관성있는 논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며, 따라서 일제시대는 물론 해방 후에도 상당한 기간까지 그 영향을 남겼던 것이다.
(출처:《한국근대사》(1984) 강만길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