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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씨들은 삼국시대 초에 시작된 집안으로 그 시조가 바로 모용언(慕容焉)으로 일명 막호발(莫護跋)이라고 전해진다.
이 당시 모용씨들의 영토는 요녕에서 낙랑, 대방에까지 이르렀다고 생각되는데, 마한 역시 그들의 영토로 모한(慕韓)으로도 불려진 것은 모용부 소속의 한(韓)이라는 의미가 된다. 313년 때부터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낙랑, 대방에 살던 많은 모용씨들이 타격을 많이 받게 되자 대륙의 모용씨들은 337년에 전연을 건국했고, 조선 반도에 억류된 모용씨들은 단성인 모(慕, 牟)를 사용하게 되었다.
모(慕)라는 성의 원류가 모용씨라고 분명히 중국의 성씨연전(姓氏聯典)에서 드러나고 있다. 가야의 김수로왕으로 추정되는 신찬성씨록의 모류지(牟留知) 기록과 위에서 말한 울진봉평신라비 및 통전 185권 기록, 태평어람의 신라왕 누한(樓寒) 기록이 그 근거로 여기서 누한은 내물왕으로 전해지며, 당시 그의 성 역시 모(慕)씨였다.
그리고 법흥왕 대에 이르러 김(金)이라는 성으로 바뀌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후 가야 좌지왕(坐知王)도 김(金)이라는 성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삼국 시대》에 허베이 성(河北省)의 우북평(右北平) 서쪽 상곡(上谷)에 이르는 지역에 목연(木延)이라는 이름의 대인(大人 혹은 大酋長)이 인솔한 선비계 부족이 출현하였는데, 선비족은 대인의 이름을 부족명으로 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라 모용씨라 칭하였다. 2세기 경은 모용부가 활약한 시기라 추측된다.
3세기에는 주거 영역을 대릉하(大凌河) 하류 지방으로 옮겨 유목 생활 외에 농경도 하였다. 추장 모용부의 모용외(慕容廆)는 스스로 선비대도독(鮮卑大都督)이라 일컫고, 영가의 난(永嘉之亂)을 피하여 투항해온 한인(漢人)을 임용하여 정무(政務)를 맡게 하였고, 중국풍의 예제(禮制)를 채용하였으며, 동진(東晉)으로부터 평주목(平州牧), 요동군공(遼東郡公) 등의 관작을 받았다.
이어 그의 아들 모용황(慕容皝)은 스스로를 연왕(燕王)이라 칭하고, 수도를 용성(龍城)으로 정한 뒤 전연(前燕)을 건국하였다. 모용황은 이후에도 세력을 확장하여 황제로 즉위하였고, 화북 지방의 동부를 지배하였다. 전연이 멸망한 뒤 후연(後燕)과 남연(南燕)이 건국되었다. 5세기 초 북위(北魏)의 화북(華北) 통일로 북위에 병합되었다.
모용부의 일부는 티베트계의 현지인을 제압하고 토욕혼을 건설했으며, 토욕혼은 중국의 북조(北朝)와 남조(南朝)와도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635년 당(唐)나라에 항복하여 예속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663년 티베트계의 토번(吐蕃)에게 멸망하였다.[1]
모용씨의 유래[편집]
일본의 역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는 모용씨에 대해 몽골어의 '부유함'을 뜻하는 바얀(bayan, 한문표기: 伯顔)에서 나온 것으로 유추했다. 즉, 선비어의 목연(木延), 모여(慕輿), 모용(慕容)등은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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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끙끙따따님 댓글 발췌:
모용씨는 황제(黃帝) 희헌원(姬軒轅 : BC 2707~2598)의 후예이자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왕족으로 연나라가 진(秦)나라에게 멸망한 뒤, 선비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238년에 모용선비족으로 거듭났고 이들은 진(晉 : 265~420)나라에 혼란이 야기되었을 때
갈족, 흉노족과 함께 병사를 이끌어 중원을 공격하고 그곳에서 연나라를 재건했다.
그러나 고구려와 탁발씨의 북위에 의해 멸망하여 대부분은 복속되거나 혹은 조선 반도로 망명하였는데 이 연나라의 망명 왕족이 바로 지증왕(智證王)계 신라 김씨의 시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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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은 누구인가?
흉노선우의 등장은 북부여 2세단군 모수리(모수=묵특,모돈/리=이는 이민족인 동이를 뜻하는말,동이족인 흉노계가 세운 나라들은 성을 이씨로 개성한 경우가 중국사에 여럿보인다)와 고주몽의 활동기로 대체적으로 북부여 동부여의 시기와 일치하다.
=몽골초원의 지배자가 둘이다?
흉노어 알지閼氏(연씨 또는 알씨=모수리 단군의 부인 알씨) 선우=‘撐犁孤塗單于(탱리고토 또는 탕리코토선우의 약자)==>=탕구트=당(흉노의 천왕 당태종 이세민은 흉노의 천왕 대선우 한왕 유연과 궤를 같이한다,즉,고대 티벳족이라는 탕구트계이며, 흉노족이다)
탕구트는 강족(희씨족 주나라 왕비족)의 한분파인 당항족이며 당항족은 탁발선비족(당나라, 하나라)이다==>선비족이 강족의 일파이거나 선비족의 일부는 강족의 일파란 소리(희씨 주나라 혈족 연왕 모용석=모용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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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왕, 신라 김씨는 선비족 모용씨 |
철마 59 | |
선비족 계통의 신라 왕족
신라의
법흥왕 김원종(金原宗 : 501~540)은 나라의 중흥을 위해 불교를 수용한 개혁군주로 지금 발견된 그에 관한 새로운 사실이 있는데 법흥왕의
본명이 모진(慕秦)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조부인 갈문왕(葛文王) 습보(習寶 : 410~460)는 김씨, 혹은 내물왕의 손자가
아닌 모용(慕容)씨 성을 가진 사위였다.
그는 북연(北燕 : 409~436)의 모용씨 왕족으로 436년 멸망 뒤 신라로
망명하여 눌지왕(訥祗王 : 401~458)의 딸과 혼인을 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얻은 아들이 지대로(智大路 : 437~514)이며 후에 성은
모(慕)씨로 바뀌어지게 된다.
모용씨는 황제(黃帝) 희헌원(姬軒轅 : BC 2707~2598)의 후예이자 춘추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왕족으로 연나라가 진(秦)나라에게 멸망한 뒤, 선비족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238년에 모용선비족으로
거듭났고 이들은 진(晉 : 265~420)나라에 혼란이 야기되었을 때 갈족, 흉노족과 함께 병사를 이끌어 중원을 공격하고 그곳에서 연나라를
재건했다. 그러나 고구려와 탁발씨의 북위에 의해 멸망하여 대부분은 복속되거나 혹은 조선 반도로 망명하였는데 이 연나라의 망명 왕족이 바로
지증왕(智證王)계 신라 김씨의 시조가 된다.
지증왕 지대로, 법흥왕 김원종이 즉위한 뒤, 나라가 비약적으로 발전되었고
진흥왕(眞興王 : 534~576) 대에 이르러 영토가 확장되었으며 그 후손 문무왕(文武王) 김법민(金法敏 : 626~706) 때에 삼국이
통일되었다.
이후 선비족 계통의 김씨들은 더욱 번창하여 한국 3대 성씨 중 일부로 등장하여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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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모용씨의 출현은 중국 삼국시대 무렵이라 적고 있는데..
환단고기 추종 블로그와 중국 조선족 연변통신에선
모용씨의 뿌리를 황제헌원의 후예,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후예라고 적고 있네요.
요즘 탐원공정이니 해서, 요서 홍산문명을 중국 상고시대 역사로 둔갑질하려는 중국의 움직임과 맞물려,
모용선비족의 뿌리를 혹시나 황제헌원의 후예-춘추전국시대 연나라-5호16국 시대의 전연, 후연-신라로
연결시키려는 음모와 닿아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오히려, 모용선비족의 뿌리는 요녕, 낙랑, 대방 같은 지역에 모여살던 족속들로..
마한을 구성하던 세력이 맞지 않나 싶네요.
이 마한=모한 세력이 고구려의 팽창에 의해 박살나다가,
결국 고구려와 엄청난 원한, 경쟁 관계로 발전해 피튀기는 전쟁을 벌이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앞뒤가 딱딱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용씨가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혈족 출신이라는건 금시초문이네요.
황제헌원의 성씨를 희씨, 혹은 공손씨로 부르는건 그러려니 하는데.. 모용씨라?
툭하면 신라를 흉노니, 중국 진나라 유민들이 흘려들어온 짱개 차이나타운 삘로 묘사하는 일도 많은데..
모용씨까지 황제헌원의 후손 어쩌구 하면서 아예 신라 왕 혈통까지 짱개혈통으로 연결시켜..
아주 그냥 역사를 통채로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불순한 음모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네요.
뭐, 사실사 중국 상고시대 역사가 동이족의 역사이니 이렇게 볼 숟 있고.
짱개들도 홍산문명을 삼황오제의 전설의 무대로 탈바꿈 시키고 있긴 하다만.
이게 양날의 칼은 양날의 칼이지요.
어쨌든 모한=마한
즉, 모용선비족이 마한 출신의 민족으로 고구려의 팽창에 밀려난 족속으로,
옛 흉노의 포로들이었던 선비족과 결합해
훗날 중국을 잡아삼킨 차이나드림을 이룩한 위대한 한민족 계통 전투민족이라고 보면
딱히 기분 나쁠 일이 없을 문제긴 하다만..
짱개들이 "신라도 황제헌원의 후예, 한국인도 같은 황제헌원의 피를 이어받은 중국의 혈통"
이럴 수도 있다 이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