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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11-13 19:50
[기타] 과연 신라는 우리역사의 주체가 아닌 그저 변방에 불가한가?
 글쓴이 : 꼬마러브
조회 : 3,541  

오랜만에 가생이에 오네요. 근데 여기 게시판 너무 한쪽으로 편향되어 있지않나 생각도 들고.. 글보다 보니 이제는 아예 신라가 남북국시대를 연것을 우리 역사의 치욕(?)으로 보고 하물려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중 고구려, 백제만이 우리역사의 주체이고 신라는 변방에 불가하다는 소리들도 나오는 것 같네요.. 저는 전라도, 경상도 어디에서 속하지 않은 강원도출신입니다만.. 너무하다 싶어 글을씁니다. 참고로 신라는 남북국시대의 하나의 나라였으므로 삼국통일이아닌 삼국반(半)통일이라는 표현을 쓰겠습니다.. 유라시아 역사의 흐름을 볼 때 신라의 삼국반통일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였습니다. 가정법의 역사는 없지만 당시 신라가 이민족을 끌어들여 삼국반통일을 한 것이 정당하지 않고 백제, 특히 고구려가 통일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단편적으로 보면 나라가 더욱 커지고 영광스러워질수도 있습니다만 가생이분들도 아시다시피 이미 고구려는 안에 내분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연남생이 당나라에 항복까지 하여 이미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백제 역시 의자왕은 자만에 빠져 충신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사치만 부리던 실정이였습니다. 여기서 고구려, 백제 둘 중 한나라가 통일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설사 통일을 했다 하더라도 오래갈거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한 서토의 역사를 보면 북방 유목, 소수민족들이 이주하여 왕조를 이룬 역사입니다. 하지만 지금 중원까지 진출하여 여전히 정체성을 지니고 있는 나라가 몇이나 있나요? 몽골 하나 밖에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몽골도 미국의 제제가 없었다면 중국 땅이였을지도 모르죠.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들은 정체성을 잃은 체 아예 중국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하여 서토와 대결하는 과정에서 멸망을 했었더라면? 우리는 지금 중국말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는 겁니다. 애초에 고구려는 당시 멸망의길을 걷고 있어 통일 자체도 어려웠을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을 드리자면 자체적으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것도 모자라 옆에는 점점 커가는 신흥강국 당나라가 있는데 과연 오래갈거라 보십니까? 신라의 삼국반통일은 오히려 우리 역사에게서는 다행인것이고 가장 자연스러웠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글을 인용하고 끝내겠습니다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였다> 중에서 - 고구려에도 삼한, 즉 진한,마한,변한인이 참여하였고 백제에도 진한,마한,변한인이 참여하였으며 신라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 제기한 삼한일통론은 그러한 맥락에서 삼국통일론이 된다. 따라서 삼한일통론은 삼국을 하나로 통합하자는 통합론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고구려,백제,신라에는 각기 삼한의 종족이 삼태극의 원리처럼 셋이면서 하나를 이루고 있었다. 한민족공동체라는 원 속에서 삼한인이라는 삼태극이 존재했고, 그들은 삼국 속에 각기 머물며 세 개의 삼태극을 형성하였다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함으로써 하나의 공동체로 완성된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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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4-11-13 20:03
   
걍.. 경상도 까고 싶은 애들이, 신라도 까는거죠-.-;; 별거 없음.
덜덜덜 14-11-13 20:08
   
저도 강원도 사람인데요..

그 당시 언어와 어법 자체가 중국과 고백신 달랐습니다.

그러니 누가 통일을 하던가에 중국말 쓰지 않았겠죠.

오히려 이후 백제, 고구려 부흥운동이 수차례 일어난것을 보면 신라의 나당연합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죠......(역사의 가정의 확률상으로 봐도 아쉽다는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신라가 이민족을 끼어들지 못하게 했다면 삼국의 형태로 더 오랬동안 갔을것이고.

지형의 형태가 더 광대해졌을꺼라는게 학자의 공통된 생각입니다.

님 말처럼 논리상 원나라도 고려를 먹어야지 정상이고 명나라도 조선을 먹어야지 정상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같은 민족의 공통성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므로 결코 어떠한 과정이 되던간에 중국말 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삼한일통을 외치기 전에 삼한의 대장이 누군지 생각해보세요.

삼한의 대장은 백제+목지국이 속한 마한입니다.

신라가 삼한시대의 일통을 외치면 아이러니하게 마한을 최상국으로 인정하는겁니다.
     
꼬마러브 14-11-13 20:23
   
제가 언어학적으로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의 말과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말 그리고 수,당나라를 세운 선비족들의 말이 중국말과 어법자체가 같았을까요? 전부 다 달랐을거라 봅니다. 특히 만주족의 언어는 중국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말과 가까웠고요. 또한 삼한의 대장이 마한이다? 저는 여기에서도 태클을 걸고 싶군요. 나중에 글을 다시 쓰겠습니다.
          
덜덜덜 14-11-13 20:27
   
변방세력이 많고 중원세력이 굳어있는 중국과 비교하기 무의미합니다.

공주시에 출토된 무령왕릉 묘비를 보세요.

중국어휘와 문법이 다릅니다.

그리고 삼한시대 대장이 마한이 아니면 누군가요??

진한,변한인은 왕족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사초로 남은 삼국지 동이전 참조)
               
덤벨스윙 14-11-14 18:34
   
꼬마씨 말은 중국어휘와 문법이 다르다는 수준의 얘기가 아닙니다.
거란도 여진도 중국말과 다른 자기 고유의 말을 썼지만 지금 현실은 그 말들이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는겁니다.
고구려처럼 만주일대에 기거하던 민족들이 말입니다.
고구려 위주의 통일이 되어서 만주가 주근거지가 되고 중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면 여진,거란과 마찬가지로 민족정체성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게 꼬마씨 말입니다.
그리고 '변방세력이 많고 중원세력이 굳어있는 중국과 비교하기 무의미합니다'
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군요. 좀더 풀어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자체도 이해할 수 없거니와 중국에 변방세력이 있는것과 같은 변방세력(중국입장에서..)인 거란,여진,고구려가 정체성을 상실하니 마니하는 문제가 뭔 상관이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덜덜덜 14-11-14 20:05
   
고백신 통역 필요 없이 대화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만주일대부터 서울 한강까지 세력권이죠.

중국 역사의 경우 한족의 틀을 유지하되 변방세력이 넘  많았으니 한반도랑 비유가 무의미 하다는 말입니다.
리틀보이 14-11-13 20:10
   
삼국통일이라는 말 자체가 오류에요..  신라가 삼국통일 한거라면 발해는 머죠?
최초 삼국통일은 고려 태조왕건이라고 봄..
     
꼬마러브 14-11-13 20:21
   
저도 지금까지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넣어야 된다고 한다면 신라가 아닌 고려때라고 봅니다. 위에 제가 삼국통일이 아니라 삼국반통일이라는 용어를 쓴 것도 이 떄문이죠. 마지막은 책의 인용부분이니 오해의 소지가 있는거 같네요. 그리고 삼국 중에서 가장 세력이 작았던 신라가 반통일을 한 것은 아쉽긴 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웠다고 봅니다.
          
덜덜덜 14-11-13 20:43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삼국해체시기죠..

고백신 세 나라 유민들이 해체된 시기가 정론

후에 고구려 부흥으로 발해가 생겼고..

또 후에는 송악호족 출신 왕건의 고구려 계승으로 고려가 탄생했고요.
리틀보이 14-11-13 20:11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외세를 등에 업은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라면이라는 가정은 충분히 아쉬워할만 하죠
깡통의전설 14-11-13 20:48
   
신라가 통일 하지 않았다면... 고구려나 백제가 당과 연합해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루었을까 싶네요.
어차피 세나라중 어느한나라도 당이 들어선때 자력으론 삼국통일이 어려웠죠.
나당연합이 없었었다면... 고구려 혼자 당 못막았겠죠. 우선은 백제가 멸망했을겁니다.
대륙백제를 밀어내고 기세등등하던 당이 본진 턴거죠.
최상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당시 시대 정황상 이세민이 득세해 나라를 건국하던 당이 한창 잘나갈때 어느나라가 막을수 있었을까요.... 냉정하게 머리로 생각해보시길...
     
덜덜덜 14-11-13 21:01
   
개인적인 사론인데요..

오히려 백제가 속국인 왜나라와 연합으로 한반도 통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고구려는 강대국이였으나 방파제 역활로 끝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애초 백제에 대한 설화를 보면 신라 땅에 대해 욕심이 없었다고 하죠.

농경지로써 최악이니 그냥 경기,충청,전라도에서 피터지게 싸웠고..

오히려 철원,평양땅 먹을려고 당위성 찾아가면서 죽어라 싸웠죠.
     
꼬마러브 14-11-13 21:11
   
세나라 중 어느 한나라도 자력으로는 삼국통일이 어려웠다- 동의합니다. 그러면 세가지의 시나리오가 있겠네요 1. 고당연합 2.제당연합 3.나당연합. 1번쨰의 시나리오를 봅시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통일을한다 ?? 이는 한반도 남쪽을 당나라에게 떼어준다는 소리이군요. 애초에 연개소문 성격상 당나라와 연합하지도 않았을거고. 고구려에게있어 당나라는 연합이 아니라 "숙적"이니 이 시나리오는 패스 2번쨰시나리오 - 백제와 당나라가 연합을 한다? 고구려도 마찬가지이기합니다만 백제 역시 의자왕이 자만에 빠져 사치와 항락에 빠져있어 나라가 어려웠죠. 그리고 당시 한반도 안에서의 세력으로 보면 백제나 신라나 오십보백보인데요. 대륙백제는 이미 멸망한지 오래.. 뭐 세력이 아직 남아있다고는 합니다만 거의 멸망에 가까운 나라가 언제까지 유지할지는 모르죠.. - 세번쨰시나리오가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덜덜덜 14-11-13 21:16
   
고당연합하면 왜????한반도 남쪽을 내줍니까??

고구려가 절대 백제의 비옥한 땅을 내줄 이유가 없습니다.


학자들이 고구려의 통일을 열망하는 이유.

1, 한반도 만주까지 먹을 가능성 높음
2, 현재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수 있음
3, 왜나라 야마토국까지 먹을 가능성 아주 높음.


백제와 고구려 호족들은 부여계쪽이라 굉장한 부국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꼬마러브 14-11-13 21:18
   
당나라가 그렇게 멍청합니까? 신라의 상황을 봐도 아시다시피 고구려와 백제의 땅을 반띵했잖아요? -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 - 신라, 나머지 고구려 땅- 당나라 / 당나라가 아무 이득도 없이 고구려 도와줍니까? 한반도 남쪽 땅 달라고 하겠죠.
                    
꼬마러브 14-11-13 21:21
   
왜 한반도 남쪽 땅이냐고 물으실거 같은데 고당연합을 했다 가정하면 상식적으로 한반도북쪽이나 만주땅을 달라고 할 순 없죠 왜? 연합국보고 땅내노라고 하는 거 자체가 상식에 안맞고 애초에 땅을 주겠습니까?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당나라와 고구려는 서로 숙적, 라이벌관계입니다. 쉽게 설명해서 수나라가 엄마 당나라가 아들이라고 비교하면 고구려라는 놈이 자기 엄마 죽였는데 연합해서 딴놈 물리치자고요? 허허허허
                    
덜덜덜 14-11-13 21:23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을 했다면.

두 국가 동질성이 있어서 시너지 효과가 높죠..(부여계 해부로 자손들 국가)

그리고 상식적으로 당나라가 한반도 남쪽 땅 가져서 머합니까?

당나라 입장에서 섬에 불과하죠.

또한 관리는 누가 하고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세요 웃기죠??ㅋㅋㅋ
                         
꼬마러브 14-11-13 21:25
   
그렇죠 웃기죠.. 당나라가 한반도 남쪽땅가져서 뭐합니까? 즉 아무이득이없는거죠. 아무이득이없는데 뭐하러 도와주냐는 겁니다 이말 이해못해요?
                         
덜덜덜 14-11-13 21:29
   
그러니 고당연합 해도 남쪽땅 없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해됨???ㄷㄷㄷ
                         
꼬마러브 14-11-13 21:30
   
애초에 고당연합이 안된다는 겁니다. 당나라의 이득이 없는데 뭐하러 당나라가 연합을해요?
                         
덜덜덜 14-11-13 21:42
   
님이 위에 3가지 사례로 적었으니 저가 반문한겁니다.

연합의 당위성은 언제 어떻게 될지는 할애비도 모릅니다.
                         
꼬마러브 14-11-13 22:02
   
네 맞아요 연합의 당위성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즉 역사에 가정은 없다는 겁니다. 역사에 가정을 대고 토론을 하는 거 자체가 무의미한 짓이죠. 그렇다면 지금 현재의 역사 즉 신라의 반통일이 가장 자연스러운 역사가 되는 거 아닌지요?
                         
덜덜덜 14-11-13 22:10
   
지금 토론이 현재 현실을 자책하는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 당시 상황상 그 스토리가 아쉽다는 대목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요..

그러니 신라의 이민족 연합과 굴복은 최선, 자연스럽다와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 입니다.
          
덜덜덜 14-11-13 21:20
   
그리고 그 당시 신라인은 백제를 대국이라고 서술했습니다.

백제는 신라를 밑에 급 나라로 취급했고요 절대 오십보백보 아님.

그리고 의자왕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보세요.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사초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꼬마러브 14-11-13 21:37
   
의자왕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사초가 어디에도없다고요? ㅋㅋㅋㅋ 삼국사기는 보고 오셨는지요..
15년(서기 655) 봄 2월, 태자의 궁을 수리하였는데 대단히 사치스럽고 화려했다. 궁궐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
여름 5월, 붉은 색의 말이 북악 오함사(烏含寺)에 들어가, 불당을 울면서 돌아다니다가 며칠 후에 죽었다.
가을 7월, 마천성(馬川城)을 수리하였다.

8월, 임금이 고구려, 말갈과 함께 신라의 30여 개의 성을 공격하여 깨뜨렸다. 신라왕 김춘추(金春秋)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회하고 표문을 올려 ‘백제가 고구려와 말갈과 함께 우리의 북쪽 경계에 침범하여 30여 곳의 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였다.

十五年 春二月 修太子宮 極侈麗 立望海亭於王宮南 夏五月 騂馬入北岳烏含寺 鳴匝佛宇數日死 秋七月 重修馬川城 八月 王與高句麗靺鞨 攻破新羅三十餘城 新羅王金春秋 遣使朝唐 表稱 百濟與高句麗靺鞨 侵我北界 沒三十餘城
16년(서기 656) 봄 3월, 임금이 궁녀들을 데리고 음란과 향락에 빠져서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좌평 성충(成忠)[혹은 정충(淨忠)이라고 한다.]이 적극적으로 말리자, 임금이 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었다. 이로 말미암아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어졌다.

성충은 옥에서 야위어 죽게 되었는데, 죽을 때 임금에게 글을 올려 말하였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말씀 아뢰고 죽겠습니다. 신이 항상 형세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반드시 전쟁은 일어날 것입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반드시 지형을 잘 살펴 선택해야 하는데 상류에서 적을 맞아야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 병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침현(沈峴)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의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야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이 말을 살피지 않았다.

十六年 春三月 王與宮人 淫荒耽樂 飮酒不止 佐平成忠[或云淨忠] 極諫 王怒 囚之獄中 由是 無敢言者 成忠瘐死 臨終上書曰 忠臣死不忘君 願一言而死 臣常觀時察變 必有兵革之事 凡用兵 必審擇其地 處上流以延敵 然後可以保全 若異國兵來 陸路不使過沈峴 水軍不使入伎伐浦之岸 擧其險隘以禦之 然後可也 王不省焉
                    
덜덜덜 14-11-13 21:46
   
경주출신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말고 구일본서기 보면 의자왕 좋게 서술하는데요??

이건 어떻게 설명 하실려고요??
                         
꼬마러브 14-11-13 21:56
   
님 방식대로 말하죠 님이 위에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는 사초는 어디에도 없다고 적었으니 저가 반문한겁니다. 그래요 의자왕이 사치를 안했다 칩시다. 바뀌는건?
                         
덜덜덜 14-11-13 22:03
   
http://www.youtube.com/watch?v=1xro4abasLU

보시고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적국이 서술한 책과 같은 왕족혈연이 서술한 책중 어떤게 정확할까요??
     
꼬마러브 14-11-13 21:16
   
님을 위해 요약하죠. 위에 적은 글이랑 내용은 별반차이 없는데 이해를 못하신거 같네요. 당시 시대상황은 서토를 다시한번 통일시킨 당나라라는 "신흥강국"이였고 고구려는 "멸망의길을 걷고있는 나라" 였고 백제 역시 영토를 넓힌 의자왕의 자만과 항락에 빠져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둘 중 한 나라가 삼국을 통일할 능력이 있으니거와 통일한다해도 오래갈수있었겠습니까? 신라가 반통일을 한것이 최상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라가 통일한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입니다
          
덜덜덜 14-11-13 21:25
   
자연스럽다 x
이민족에게 득을 취한 사례 o

지금까지 이런 남북대치의 한반도 지형으로 된 원흉이죠.
꼬마러브 14-11-13 21:25
   
그리고 한가지 더 이해를 못하신거 같은데 만약에 만약에 그러한 능력도 부족했고 정황상 불가했었지만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하더래도 "신흥강국"인 당나라와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 멸망할 가능성이 "매우높다"입니다. 만약 이 가능성에 가정을 두어봅시다. 여기서 고구려가 멸망해서 당나라 세력권안에 들어왔다면? 동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건 "어법이 달라서 안된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주족의 말은 중국말이랑 어법체계가 다른데도 동화가 되서 지금 중국말쓰고 있잖아요? 지금 만주족들은 자기네 글자도 까먹었어요. 어법체계가 달라서 동화가 안된다? 말이 안되죠. 누차 강조하다시피 "가정법의 역사는 없지만" 만약 가정을 둔다면 이는 절대 불가한겁니다.
     
덜덜덜 14-11-13 21:27
   
정황상 당나라는 절대 한반도를 관리 못합니다.

칭기스칸 할애비가 와도 관리 못함.

중국본토도 관리 못해 난리인데요???ㅋㅋ

문화 언어가 다른 한반도를 관리??풋,.

그러므로 한반도에 생존한 3국이 이민족 없이 통일왕조국가로 가는게 가장 자연스러움.
          
꼬마러브 14-11-13 21:35
   
네 관리 못해요. 나당연합해서 얻은 고구려땅도 평안북도와 요동, 요서지역 뺴고는 전부 다 부흥운동세력한테 얼마안되서 털렸죠. / 당나라가 한반도 관리할 능력이 없으므로 한반도에서 생존한 3국이 이민족 없이 통일왕조국가로 가는게 자연스러움 ? 이건 무슨 말인가요. 설명해주시겠어요?
               
덜덜덜 14-11-13 21:45
   
당나라는 명백하게 언어 문화가 다른 이민족이므로.

연합, 연계없이 고구려,백제,신라 유민들 세 나라 힘으로 

통일왕조국가로 가는게 가장 자연스럽다는 겁니다.
                    
꼬마러브 14-11-13 22:00
   
다시한번 말하지만 역사에 가정은 없죠. 돌궐까지 멸망시킨 당나라가 삼국을 가만히 냅둘까요? 당나라가 한반도를 다스릴 힘이 없다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런데 자기나라 망하는 걸 뻔히 보는 나라가 어딨을까요. 만약 백제가 신라와 같은 상황이였다면 당나라와 연합을 안했을거라고 보십니까?
                         
덜덜덜 14-11-13 22:06
   
자꾸 이해를 못하시는데

일단 그 당시는 2강 1약이였습니다......2강은 고백 1약은 신

상식선에서 큰 놈이 더 큰 떡을 먹자나요....맞죠??

그리고 생각하보셈 당나라가 어떻게 하든 한반도 장악은 불가능하다는게 정론입니다.

님은 자꾸 나당연합이 가장 최선이고 자연스럽다고 하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민족과의 연합으로 많이 아쉽고 불행한 역사라고 여기는 사람이 더 많아요.
                    
꼬마러브 14-11-13 22:22
   
2강 1약이라 ㅋㅋ 굳이 강약을 정해라 하면 1강2중이라고 하겠습니다. 1강은 고구려고 2중은 백제, 신라죠. 님 생각에는 신라는 항상 백제 아래있던 국가라고 여기시는거 같은데.. 다루왕때 외산성전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라는 백제한테 항상 쳐발리는 국가가 아니라 서로 세력을 다투던 독립국들이였습니다. 서로 팽팽히 세력을 엎치락 뒤치락하는 나라입니다. 기록을 보면 서토의 왕이 삼국을 불러 고구려,백제,신라 이 세나라는 같은 민족인데 어찌하여 서로 싸워 국경이 짐승이빨처럼 뾰족뾰족하니 어찌된일인가? 하며 꾸짖은 일도 있죠. 신라는 고구려 백제 밑에 있는 국가가 아닙니다. 한떄는 가장 약했을지도 모릅니다만  한때는 백제보다 위에 있던 시절도 있는 그런 독립국입니다. 삼국사기에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저물어가는 달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는 백제의 의자왕이 신라 낙동강 유역까지 쳐들어가고 하는 소리이죠. 그나마 말기에 와서 서로 엎치닥뒤치닥 하나의 성을 가지고 오늘은 백제땅 내일은 신라땅하던 국가였죠
                         
덜덜덜 14-11-13 22:34
   
진한에서 내려오는 신라의 역사를 보세요.

진한은 삼한시대때 마한(백제)가 지배한 속국이였구요...

가야와 통합하기 전까지 고구려,백제 보다 항상 약소국이였습니다.

신라가 가야 뒷통수 치고 통합후 세력을 키워 백제와 대등했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나제동맹 사초를 보면 백제가 위였다는 사실을 알수 있죠.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백제 (마한)는 애초 신라의 땅에는 크게 관심 없었습니다.

왜냐??백제가 삼한시대때나 2~3세기때 충분히 신라를 먹을수 있었지만 관심무였죠.

그냥 우두머리 (칸)..신라어로 '간' 그 지역에 거서간을 세우고 관리하라고 했던 지역입니다.

오히려 백제는 대륙과의 해상연결을 위해 요서지방과 왜나라를 키우는데 집중했죠.

상식선에서 백제입장에서 경주.포항.울산 해안을 먹어서 머합니까??

지리적으로 백제국이 훨씬 비옥하고 문화강국 양나라와 해상교역하기 좋은데요??
                    
꼬마러브 14-11-13 22:26
   
그런 논리라면 625전쟁때 유엔군(이민족)들이 한국을 도와주지말고 한반도가 공산통일되는게 자연스럽게 되는거겠네요
                         
덜덜덜 14-11-13 22:35
   
유엔군이 왜 이민족인가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각이 이상한건지 도통 이해하기 힘든 말만 하시네요.;;
teran 14-11-13 21:29
   
신라는 북방에서온 흉노 오랑캐라고 고구려와,백제는 같은뿌리에서 갈라져나왔음 그러니깐 정통성이있고 신라는 그냥 오랑캐
     
꼬마러브 14-11-13 21:30
   
신라가 흉노계이다 - 이건 나중에 추후 글을 쓰겠습니다.
          
teran 14-11-13 21:32
   
KBS역사스페셜서 신라는 북방에서온 흉노라고 나왔음 이미 학계에서도 인정했음
               
꼬마러브 14-11-13 21:33
   
네 저도 그 방송 봤고요 추후 글 쓰겠습니다.
               
mymiky 14-11-13 22:53
   
신라가 흉노계?
정확하겐 지배층인 신라 왕가(김씨네)에 흉노계가 좀 들어갔다는거지..
신라인=흉노인은 아니죠;;
아 다르고 어 다릅니다.

고구려와 백제도 같은 뿌리라는데, 이것도 왕가의 이야기구요.
사실, 고구려/백제 왕가도 서로 부여의 정통성 싸움으로 서로 싸우던 애들임.
우린 같은 뿌리 어쩌고 하면서- 앵겨붙던 애들이 아니란 말씀--
                    
덜덜덜 14-11-13 23:00
   
여기서 한반도 이동경로를 보시면 대략 감이 오죠.

일단 고구려 땅에서 백제땅으로 이동해서 토착민과 고착화 되었구요.

농사하기 어려운 신라땅은 최소 100년 늦게 발달했을겁니다.


근데 신라의 미스테리 3가지가 있습니다.

1, 특이하게 왕을 돌아가면서 함

2, 설명하기 어렵게 경주를 다른 좋은 땅으로 천도 안함
(왕권이 정말 부실했다는 반증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어디에도 혁거세 뿌리가 안나옴 ;;;
(고구려와 백제는 부여계 해부로왕 자손)
                         
Centurion 14-11-14 01:05
   
제가 경남권에서 살아서,
경주는 유치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견학, 수학여행, 졸업여행 등등 여러 차례 다녀본터라 아는데요.

경주란 곳이 그렇게 무시할만한 땅이 아닙니다.
경주는 상당히 평탄한 땅이 넓게 펼쳐진 곳이라, 시내버스를 타고 관광하러 돌아다니면..
반듯하고 평평한 논밭 사이를 통과하는 도로를 타고 한참동안 돌아다녀도 여전히 평탄한 논밭과 드문드문 기와집 마을이 보일만큼 광활한 느낌이 드는 지역이죠.

제가 이런 느낌을 받은 도시는 서울, 대구, 김해, 밀양, ,,,, 진주, 창원 정도구요..
전라도쪽은 잘 안가봐서 그 넓다는 평야의 느낌을 겪어보진 못했습니다.

(부산은 인구는 300만이 넘는 거대도시지만, 광활한 평야의 느낌이 약합니다.
 게다가 산동네가 너무너무 많죠. 언덕 굴곡도 많고, 경주에 비하면 많이 딸립니다.
 경주는 논밭으로 변했어도 천년고도가 있었을만한 곳이라는 느낌이, 다녀보면 확 와닿습니다 )

특히 대구 같은 경우엔 경부선 통과할 때마다 아주 욕나오는 지역이죠...
경부선의 1/3은 대구라는 느낌일 들만큼 북대구, 동대구, 서대구, 남대구인지..
아주 지겹도록 대구를 지나가는 구간이 있죠.

경주는 그런 대구를 코앞에 두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
막상 가보면 상당히 평탄한 지형에 버스를 타고 관광해도 상당히 넓은 지역이구요.

진짜, 한 때 세계 4대 도시에 들어가느니,
인구가 백만이니 하는 소리가 구라같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신라가 통일 이후 행정 편의를 생각하면, 대전쯤으로 천도하는게 좋을 법도 하지만..
5소경을 부도로 두어 각지를 관할하는 거점도시로 육성했지요.

그리고, 돌아가면서 왕을 한건 맞지만..
박씨->석씨->김씨->박씨->김씨로 바뀌는데..
박씨가 건국했다가, 석씨에게 왕위를 물려줬다가, 한동안 석씨가 해먹다..
김씨에게 넘어간 후 아주 쭉~~~~ 김씨만 해먹던 시절이 있었지요.

그래서, 학자들이 추측하기로..
석씨 세력을 김씨와 박씨가 동맹해서 몰아내고, 김씨가 왕을 배출하고,
박씨가 왕비족을 했다..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죠...
어쨌든 석씨는 몰락했고, 김씨로 쭉 가다 신라 말기에 박씨왕이 잠시 다시 출현했다가,
결국 김씨왕으로 왕조가 멸망하죠. 이건 뭐, 돌아가며 했다고 하긴 좀 글코요..

물론, 신라 자체가 왕족, 귀족과 호족들 파워가 상당한 나라이긴 했지만..
골품제라는 무시무시한 계급제도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왕권이 약한 나라라고 보긴
좀 어렵다고 봅니다.

왕권이 약하면, 정복 전쟁을 지휘하기도 힘들고, 병력동원이나 지방통치가 아주 힘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그런건 충분히 잘 동원했고, 지방도 잘 관리했으며,
전쟁을 벌이고, 중앙귀족을 성주와 영주로 임명하고, 식읍을 나눠주는 것도 잘이뤄졌습니다.

이건 왕권이 약한 나라라긴 좀 어렵다는 증거지요.

물론, 중앙의 왕족들 간에 왕위 계승을 놓고 피터지는 암살과 역모가 벌어지긴 했습니다만,
왕족 외의 지방호족이 왕에게 반기를 드는 장면 같은건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요.

그리고, 박혁거세의 뿌리의 경우엔..
백마가 품고 있던 알에서 태어났다고 나오지만...
삼국유사의 일연의 경우.. 경주 선도산(=서술산)의 성모가 낳은 아이가 박혁거세라는
썰도 함께 주석으로 달아두었고, 일설에는 중국 황족 출신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썰도 있다고 합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8%81%EA%B1%B0%EC%84%B8_%EA%B1%B0%EC%84%9C%EA%B0%84#.EB.82.98.EC.A0.95.EC.9D.98_.EB.B0.95.ED.98.81.EA.B1.B0.EC.84.B8_.EC.84.A4.ED.99.94

그리고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의 경우 해모수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박혁거세나 김수로와 마찬가지로 유화부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났으며,

해모수는 해부루의 아버지이고, 해부루는 금와왕을 걷어 기른 양아버지인데..
고주몽은 해모수와 연애를 한 유화부인을 데려와 고주몽이 태어날 때부터 지켜본 인물이죠.
이게 족보와 시간대가 상당히 이상하게 꼬이는 터라..
고주몽이 (?)부여를 건국한 동명성왕과 별개의 인물이고,
부여의 건국신화를 따라한 것이다라고 분석하는 학자들도 있죠.

뭐, 위서로 의심받는 환단고기로는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이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해모수도 자신을 천제의 아들이라고 했고,
솔까 천제는 하늘나라의 옥황상제, 하느님인고로...
이 것도 실제 세속적인 실제 족보라 하긴 좀 뭣하죠. 
(예수와 같은 아버지를 뒀는지도.ㅋ)
                         
덜덜덜 14-11-14 02:03
   
경주란 곳이 요새의 도시로 장점은 있지만.

평야가 광대한 평탄한 도시는 아니죠.

인구 백만 소화하기에도 농경지 면적으로써 불가능하고요.

저도 전라도는 전주만 가봤지만 호남평야는 한반도에서 가장 큰 평야입니다.

농경사회때는 전라도 인구가 가장 많았죠.

어느나라를 가봐도 농경면적이 넓으면 인구도 이동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제비뽑기로 왕권을 받은 나라인데 당연히 왕권이 약하다고 봅니다.

진흥황 전성기 시절 빼고 고백신중 제일 약한 왕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신라는 영토확장 한강이남 까지가 거의 맥스입니다.;;

그것도 나제동맹 뒷통수로 얻은 결과물이죠.

역사를 보면 신라말기 왕권은 얼마나 약했으면 지방호족에게 망했습니까??;;

그리고 혁거세 탄생설화는 말도 안되고요.

부여계쪽 왕가 외손자 아니면 백제(마한)에서 보낸 사람이라고 봅니다.
스파게티 14-11-13 23:59
   
혁거세는  고조선 유민과 

 혹은  부여에서  내려온  어쩌고 말이  있던대용...
Centurion 14-11-14 02:39
   
음~ 댓글을 위에 달수가 없어서 여기에 답니다..

왕권이 약하다고 하는건 그런 기준에서 접근하는게 아니지요.
제비뽑기는 아마도 유리이사금과 석탈해가 떡을 깨물어
치아 숫자 많은걸로 왕위를 서로 양보하던 미담을 말하시는지?

그 외엔 딱히 제비뽑기 비슷한걸로 왕을 번갈아 가며 했다는건 모르겠네요.

성골 남자가 없어서 여자 성골을 왕위에 세우다가,
결국 폐위된 진지왕의 핏줄로
성골신분이어야했지만, 진골로 하락한 김춘추가
결국 우여곡절 끝에 김유신의 도움으로 왕위를 계승하긴 했지만...
신라가 굳이 제비뽑기로 왕을 갈아치울만큼의 나라는 아니었죠.

나중에 통일신라 때는 김씨 진골왕족들끼리
서로 왕되려고 싸우고 죽이고 그랬지만,
이 역시 엄연히 김씨 진골왕족들 사이에 일이었고..

보통 이런건 왕권이 약하다고 표현하진 않지요.

이런건 왕권 다툼이라고 표현하고, 왕권이 약한 경우는, 신권이 강하다거나,
지방 분권이 강했다거나, 지방 제후 세력이 왕권을 위협했다거나, 영국마냥 입헌군주제로써,
의회가 막강해서 왕이 사실상 허수아비였다거나 하는걸 의미합니다.

(왕권이 아주 강력한 전제군주정, 절대왕정에서도 왕위계승 싸움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왕들은.. 강력한 골품제 위에 존재했고,
성이 다른 6두품 귀족들은 위로 출세하는데 제약이 걸려있는 사실상 들러리에 불과했으며,
실질적 파워는 김씨 진골 왕족들이 쥐고 있었지요,
이렇게 폐쇄적인 신분제로 왕족들에게 권력과 재력이 집중된 나라를 찾기도 어려울겁니다.

고구려나 백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고구려나 백제는 왕족이 아니라도 재상이나 장군, 성주, 유력가문이 된 경우가 많이 보이죠)
의자왕이 오히려 왕자들을 최고직인 좌평급에 대거 임명하다가,
나중에 나당연합군이 몰려오는데, 고작 5천 병력을 계백한테 쥐어주는 상황까지 몰리는게
왕권이 약하다고 보면 오히려 얼추 맞을 수는 있을겁니다.

백제 멸망기에 왕과 반목중인 귀족, 호족, 영주들이 군대를 동원안하고 나라 망하는걸 뻔히
구경했을 가능성이 상당했거든요.

백제부흥군이 사비성 함락 후에서야 움직여서 나당연합군을 위기에 몰아넣고,
백제지역을 방문한 신라왕 김춘추가 의문의 죽음을 당할 정도가 되죠.
잃었던 지역도 백제부흥군이 휩쓸다시피 도로 수복하기도 했구요.

고구려의 경우엔 영류왕이 신하인 연개소문한테 토막살인을 당하고,
보장왕은 사실상 연개소문의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보통 이런걸 가르켜 왕권이 약했다는 표현을 쓰지요.

그리고 엄연히 통일신라가 망한건 왕건 때문이 맞긴 한데..
이미 절대왕권에 가까운 상태에서, 진성여왕 같이 사치, 퇴폐를 부리던 왕들을 겪으며,
적고적 같이 계급혁명에 가까운 강렬한 저항이 일어났지요.
그러면서 견휜이나 궁예 같은 세력들이 반란군을 일으키며 군웅할거에 가까운 상황이 된거구요.

러시아 제정, 즉 차르의 전제군주정이 유럽권에선 아주 왕권이 강한 스타일인데..
그 짜르의 전제군주정이 민중반란으로 인해 붕괴되어, 공산주의자들한테 짜르 일가가 총살당해 죽었습니다.
이런걸 왕권이 약해서 망했다는 표현을 쓰진 않지요.
     
덜덜덜 14-11-14 20:13
   
신라는 왕권이 약했다고 봐야죠.

당시 고구려,백제 호족들이 대토지와 사병을 소유했고 지방 통제력이 약했고요.

귀족다툼으로 인해 서로간 농민 수탈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라가 왕권이 얼마나 약했다는 반증은요.

혜공왕 이후 150년 동안 20명이상 왕이 교체되었습니다.

또한 신라말기에는 많은 난이 발생해 전라도 호족 세력에게 허수아비 왕만 세워두고 멸망했죠.
Centurion 14-11-14 02:56
   
그리고, 당나라와 신라는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 계속 전쟁을 치뤘습니다.
신라는 백제부흥군,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고 배후조종하듯 하며 당나라군을 몰아내는데 사활을 걸었죠.
(적(당나라)의 적(백제,고구려 부흥군)은 친구다. 하지만, 너무 키워줘서 신라를 위협할만큼 키워주진 않는다)

그리고 매소성 싸움에서 이겼고, 마침 토번이 당나라를 아주 탁탁 털어버려서,
신라는 당나라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낼 수 있게 됩니다.
당나라로썬 수도 장안이 털리는 지경이라 한반도나 요동에 병력배치할 수 있는 여유가 없을 정도였죠.

당나라와 신라가 다시 전쟁모드에서 평화협력 모드로 바뀌게 된 건 대조영이 발해를 세운 이후부터였습니다.

청나라 역사서 만주원류고에선... 신라가 요동지역까지 진출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족들 본거지인 길림성 아시죠? 그 길림성이 한때 계림인가로 불리웠던가 그랬습니다..
한마디로 신라의 요동진출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달까요.

하지만, 대조영의 발해가 다시 성립되면서, 신라의 북쪽 진출이 좌절되었던 모양입니다.

사실상, 신라는 삼국통일과정에서 당나라와 오월동주, 동상이몽을 꿨던 셈이지만,
결국 그 목적 달성 이후엔 당나라와 데쓰매치를 치루면서, 계속 전쟁벌이다가..
다시 위협적인 발해세력의 등장으로 외교적 입장을 당나라와의 화친으로 바꿨던 실용주의 세력인 셈이죠.

단순한 사대주의 세력하곤 거리가 멉니다..
뭐 명나라에 재조지은을 갚아야 한다며, 청나라랑 맞짱떠야 된다던 조선시대 서인들 같진 않단 소리지요.

아마, 토번이 계속 당나라를 위협하고, 발해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신라는 길림성 일대를 넘어 고구려의 땅을 다 가지려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토번은 명장 가르친링의 죽음 이후 약해졌고, 대조영의 발해는 건국되었지요.
그 후 신라 멸망 때까지 발해는 거의 계속 존속했습니다.

만주땅을 삼키지 않으려 한게 아니라, 못했다는게 더 맞지 않을까 싶군요.

그리고 결국 훗날 '김'씨성을 그대로 따서 나라를 세운 신라의 후예 완안 아골타가..
금나라의 이름으로 중국 북부를 삼켜버리기도 했지요.

이때 고구려, 발해 유민들이 많이 활약했지만,
한편으로 완안 아골타는 너무 그들이 고구려-발해의 정체성을 갖는걸
한편으로 경계하고 때론 상당히 무자비하게 탄압하기도 한걸로 압니다.
     
덜덜덜 14-11-14 20:25
   
신라가 백제부흥군, 고구려부흥운동군을 지원요??

금시초문입니다만요??

제가 알기로는 백제유민과 고구려유민은 패망해도 계속 부흥운동을 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만큼 신라의 왕권은 컨트롤을 못했죠.

그 중 고구려 왕족 안승이란 자가 임시 고구려왕으로 삼고 금마저(현재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에 도읍을 정했고 안승을 중심으로 결집한 고구려 유민들로 편성된 고구려 부흥군은

자국땅이였던 평양에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설치에 반기를 들고 빡쳐서

전쟁에 같이 참여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670년 고구려군 1만명 신라군 1만명이 먼저 당나라를 선제 공격합니다.

그리고 전라도 땅에 있는 당나라 웅진도둑부를 백제왕족 출신 부여융이 이끄는 백제부흥군이

옛 백제 지역의 82개 성을 빼앗았으며 671년에는 사비성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소부리주를 설치

하여 직속령으로 삼아 백제의 옛 땅을 완전히 회복하였습니다.

결론은 나당전쟁은 신라의 영광의 싸움이 아니라 삼국의 부흥군의 자존감 싸움이 더 정확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Centurion 14-11-14 22:28
   
이와 같은 고구려 유민의 투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는 검모잠 (劍牟岑)과 안승 (安勝)이 주도하였던 고구려 부흥운동이었다(→ 검모잠)(→ 안승). 669년 검모잠은 궁모성(窮牟城)을 근거지로 군사를 일으켜, 왕족인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추대하고 당군에 저항하였다. 이들은 다시 한성(漢城:지금의 재령)으로 나와 근거지를 정하고, 당군을 공격하는 한편 """"신라에 구원을 청했다. """"""

당시 신라는 백제의 옛 땅에서 당군과 싸우고 있었으므로 당군을 분산시키기 위해 """고구려 부흥군을 지원하였다.""" 그리하여 670년 고구려의 태대형 고연무(高延武)와 신라 장군 설오유(薛烏儒)가 이끄는 연합군이 압록강을 건너 당군과 싸우기도 했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01g3566a

출처: 다음 백과사전

여기에도 고구려부흥군이 구원을 요청하고, 신라가 지원한게 나와있네요.
님은 보니까 학계에서도 '지원'했다고 하는걸, 부정하고
자신만의 잣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왕권 왕권 하시는데 왕권은 그런 의미로 확장해서 쓰는게 아닙니다.

사전적 의미로 왕권 = 왕이 가진 권력이나 권리입니다.

조선시대 왕권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를 보통 연산군 시기로 보는데..
물론 태종처럼 신하들, 외척들 죽여가며 공포정치 비슷하게 왕권을 강화해가는 시절도 있지만, 그 왕권이 아주 강력하게 자리잡은게 연산군 시절이라고 보는거죠.

그런 왕권을 개망나니가 휘두르니, 사람이 엄청나게 죽은거고,
결국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중종반정이지요.
이런 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이 폐위되었다고 당시 연산군의 왕권이 약했다고 표현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호족들이 왕을 꼭두각시로 세웠다는데.
도대체 어디 호족이 신라왕을 허수아비로 세웠던가요?

통일신라 시대 가장 강력하고 유명한 지방군사세력이
장보고의 청해진인데.. 이들이 왕위계승 싸움에 참가해 김우징을 왕으로 만들긴 했지만,
이후 장보고의 딸이 태자비가 되는 문제로 트러블이 생겨 결국 장보고가 암살을 당했죠.
청해진은 해체되어 아주 쑥대밭이 될만큼 몰락했습니다. 

본래 왕권이 강하다 약하다를 논하는건요.
반란이 일어났다거나, 왕이 폐위당했다로 평가하는게 아닙니다.

말 한마디로 로마를 태운 네로는 왕권이 약했을까요? 강했을까요?
다들 폭군, 독재를 한 네로 황제로 기억하지. 왕권이 약해 퇴출된 네로라 말하진 않습니다.
이미 그는 살아있는 동안에 엄청난 권력을 휘두르는걸 보여준 사람입니다.

백성들에게 욕쳐먹고, 신하들에게 욕쳐먹고, 제 명대로 산 왕이나 황제들이 많을까요?
별로 없습니다. 막장짓하면 아무리 선대임금들이 왕권을 강화시키고, 도덕적 명분을 쌓아둬도
폭군이나 망나니 왕은 나라 말아먹고 반란 테크를 타고 맙니다.

그리고, 보통 왕권 타령을 하려면, 고려와 조선을 비교할 수 있겠는데..
고려의 경우엔 지방관을 구석 구석 내려보내지 못했죠.
반면 조선은 현감까지 내려보냅니다. 왕권은 고려보다 조선이 높다고도 볼 수 있죠.
지방은 호족 세력이 사병 거느리고 있던 시절인데, 이건 삼국시대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신라는 김유신이나 당시 유명한 화랑이나 장군들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진골입니다. 신라 중앙 귀족들이 지방에 성주니, 군주니 해서 내려가
중앙조정의 명에 따라 움직입니다.  대야성 성주 품석을 보세요. 김춘추 사위 아닙니까?
김유신 할아버지 김무력은 가야왕족 출신인데, 충청도 관산성에서 백제 성왕을 전사시킵니다.

뭐 그들 사이에서 비담과 춘추, 유신의 충돌같이..
선덕여왕 말년때처럼 왕위계승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소위 호족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중
중앙 김씨 진골왕족 아닌 사람들이 두각을 드러낸건 통일신라 말기지요.
신라의 체제가 맛이 갔으니까, 왕건 같은 김씨가 아닌 인물들이 두각을 드러낸 것이죠.
근데 이건 엄연히 왕조말기 현상이고, 전성기 때 왕권이 약했다는 증거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왕권이 엉망이면 국가간 총력전 따위 꿈도 못꿉니다.
힘도 없는 왕이 지시내리든 호소를 하든 백성들 누가 죽으러 가겠으며,
어느 귀족과 호족, 기타 권력자들이 사병을 이끌고 전쟁에 나가겠습니까?

실제로 삼국사기를 보면
병든 여자의 아버지를 대신해 군대를 대신 가는 남자의설씨녀  설화가 나옵니다.
기본 3년인데, 전투가 벌어져 6년을 복무하게 되죠.
왕권이 약했으면 누가 군대를 가겠습니까? 무시하고 농사나 짓겠죠.

그런 반란이 터졌다고, 왕권이 약하다고 드립치시면...
진시황도 왕권이 약했다고 할 수 있을겁니다..
오죽 못나면 2대 황제 호혜 때 반란이 터져서, 3대 만에 망할까요.
그걸 왕권이 약하다고 표현을 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현실은 왕권이 무섭도록 강했던게 진나라입니다.
분서갱유니 만리장성 축조에 엄청난 인력 징발, 법가 통치를 통한 무자비, 무관용 원칙에
공사장에 도망간 인원들이 많아 도착해도 죽게 생겼으니,
아예 반란을 일으킨게 한나라 고조가 거병한 계기였죠.
               
덜덜덜 14-11-14 22:55
   
백과사전 인용

학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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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년(진덕여왕 2년), 신라와 당나라는 양국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대동강을 양국의 경계로 할 것을 합의하고 군사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당나라는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신라와의 약속을 어기고, 신라의 내부 분열을 획책하면서 신라를 포함한 한반도 전지역을 당나라에 편입시키려 하였다.

660년에 백제가 멸망한 뒤, 당나라는 그 지역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를 비롯한 5개 도독부를 설치했고,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는 9개 도독부를 설치하여 당나라의 영토로 기정사실화하려 시도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당나라는 고구려 멸망 전인 663년(문무왕 3년)에 신라를 계림대도독부(鷄林大都督府)로 하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당(唐)이 신라의 자주성을 부인하고 신라를 자국의 일개 지방행정구역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였다.

당시에는 아직 고구려가 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라는 당나라와의 직접 마찰을 피하였다. 그러나,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신라를 관리하도록 하여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배 의도를 드러내자 신라는 당나라와전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신라vs당나라 먼저 싸움했고 상식선에서 신라군이 고구려부흥군에게 도움 요청이 순서입니다.

그리고 왕권국가 특히 중앙집권국가라면 '왕이 나라의 주권을 가진 사람'입니다.

저런 사례로 왕권약화를 내비칠수 있습니다.
                    
Centurion 14-11-14 23:10
   
아니 위에 669년에 안승과 검모잠이 신라에 구원을 요청한 기록이 있는데요?
물롷 이미 신라군은 백제옛땅에서 당나라와 전쟁 중인 상태였구요.
고구려 부흥군의 구원요청을 받아들여 670년에 같이 연합해 당나라와 싸우는 장면이 나오지요.

그리고, 당나라가 신라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편입시키려하는 것은 딱히 왕권약화의 사례로 보기가 어렵습니다만.

이웃 강대국의 내정간섭과 편입책동에 따른,
신라의 자주성 침해시도라고 불러야겠죠.

그리고, 분명한건 신라도 당나라에게 이용가치가 있을 때는 참고 인내하다가,
목적 달성 후 당나라와 맞짱을 떴는데 이걸 왜 왕권 약화라고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국가의 주권침해, 자주성 침해시도를 왕권 약화로 해석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 일이네요.
외부에 의한 주권침해니 왕권이 황제권에 의해 제약받는 사례로 비쳐질 수 있긴 합니다만
실제론 별 강제성도 없는 상태였고..

거기에 저항해 전쟁을 벌이는 나라를 왕권이 약화되었다고 하는건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폭행을 당했다와 성폭행하려는 것을 뿌리치고 싸웠다는 엄연히 다른 상태지요.
                         
덜덜덜 14-11-14 23:23
   
자주성 침해로 인해??<---너무 입바른 소리 아닌가요??

그냥 왕권약화라고 인정하는게 더 빠를듯 하네요.

그리고 왕조국가는 왕이 곧 주권입니다.

근데 지방세력으로 인해 경주에 박혀 있으니 한반도 내륙까지

왕이 주권을 섭렵할수 있습니까??즉 왕권이 빈약하다는 반증이죠.??

그리고 전쟁도중이 아니라 전쟁이전에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는겁니다.

그러니 부흥세력이 활기치면서 한반도 많은 지역을 장악했죠.

또한 전쟁 후에도 고구려,백제 유민은 평등하게 살았고 귀족생활을 누렸고.

말기에 견훤같은 백제 부흥 호족세력으로 인해 경애왕은 살해당하고 망한거죠.
조석 14-11-14 07:45
   
한국사의 수치
전략설계 14-11-14 14:03
   
신라를 신라역사로 보면,
고구려는 삐져서 화해가 안되고 백제한테 디지게 터져서 망하기 일보 직전에
수단방법을 안가리고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이고,

신라를 우리역사(고구려+백제+신라)로 보면,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힘도 없는 것이 큰 나라 군대 불러와서 옆나라 주워먹은,
어디서 말 꺼내기도 추잡스런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깡신 14-11-14 22:22
   
솔직히 신라는 당나라가 아니었다면... 당나라가 좀만 허접했다면 고구려나 백제한테 결국엔
멸망당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뭐 그전에 결과론적으로 광개토대왕께서 신라와 백제까지 다
털어버려서 진즉에 뒤를 걱정하지 않는 고구려로 만들었으면 참 좋았겠다 생각하지만요.
아마도 그분의 생각은 언제라도 멸할수 있는게 신라와 백제라 생각했을것 같습니다.
신라의 입장에선 최선의 결과를 불러온게 고,백의 멸망이지만
우짜둔둥 그후의 후세의 입장에선 정말 통한의 한반도에만 갇혀버린 너무나도 큰 실패라 생각합니다.
Centurion 14-11-14 23:45
   
댓글 갯수 제한이 또 발생했네요. 여기에 적습니다.
 
견휜의 후백제군에게 경애왕이 피습당해 죽는걸
왕권 약화의 증거로 보는건 좀 문제가 있는게.. 이 때는 누가 봐도 왕조말기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은 신라 천년 역사 중에서도
거의 말기암 환자마냥 숨이 넘어갈랑 말랑하던 말기 상황에 생긴 상황이라 이거죠.

서로마제국이 말년에 게르만 용병들한테 나라가 뒤집히고, 골골 거리다 비참한 꼴 당했다해서..
로마제국의 역사 내내 힘도 없고, 국력이 개판이었다라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로마의 전성기는 정말로 화려하고 대단했죠.

진시황의 진나라가 춘추전국을 제패하고, 그 많은 나라들을 무릎 꿇렸는데..
그들이 훗날 항우와 유방의 군대 앞에 비참하게 깨져서 망했다고 해서,
진나라가 역사 내내 허약한 나라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이거죠.

참고로, 항우와 유방은 초나라 사람이었습니다.
초나라는 패망해서 통일한 진나라가 지방관을 파견해 다스리긴 했지만,
결국 초나라 부흥세력들이 반기를 들고 일어나 이 지역을 거점삼아 진나라를 멸망시킵니다.

그 외에도 초나라 말고도 위나라, 조나라, 한나라,  제나라 등등
옛 열국의 후예들이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세웠죠.
그래도 초나라 항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진나라 토벌군의 위용 앞에서 얼어버렸구요.
항우의 군대가 진나라 대군을 계속 격파하고, 한편에서 유방의 부대가 진나라 군대를 투항시키며,
진나라를 멸망시킨 것이죠.

그렇다해서 진나라가 허약했다고는 어느 역사학자도 보지 않습니다.

결국 옛 고구려, 백제영토에서 반란이 일어나 패망한 결과에 맞춰서
신라의 왕권이 전반적으로 약했다고 보는건 상당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덜덜덜 14-11-14 23:54
   
제가 말기라고 코멘트 적었습니다만요??

그리고 천년의 신라라고 하시는데요.

신라의 경우 삼한시대 사로국부터 마한의 (목지국,백제국) 속국 아니였나요??

그리고 위에도 적었지만 백제,고구려의 영토확장은 농경지가 비약한 신라영토까지 욕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대동강쪽과 한강쪽을 잡을려고 혈안이였죠.

또한 중국 양나라와 문화교류를 위해서 요서지방을 거점으로 잡을려고 했고요.

이미 역사적 흔적이 나왔죠..(or 왜나라의 경우는 거의 왕권까지 잡았고요)

신라는 고구려,백제 2강 사이 낀 약소국이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솔직히 신라는 천년의 역사를 운운하기에는 좀 영광스럽지 않습니다.;;;

통일또한 97년만 당위성이 있지 주변나라의 삼국해체시대가 올바른 방향이죠.

현재 학계에서 남북국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아주 후한 배려라고 생각합니다.
          
Centurion 14-11-15 00:12
   
신라 =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117&cid=46620&categoryId=46620

신라 역사가 천년 가까운건 역사적 진실인데.. 이런것도 반박하시나요?

초기 소국일 때 남들한테 침공도 당한건 사실입니다만..
로마 제국이나 대영제국, 미합중국도 건국초기엔 미약했고 이런 저런 에피소드 많았습니다.
심지어 고구려조차 초기에 보면 부여나 한나라, 전연 등등을 상대로 우여곡절이 많았죠.

그리고 저는 신라 역사가 천년이라고 했지, 영광스럽고 찬란했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기간이 992년 역사를 천년이라 표현할 뿐인거지..

또한, 님이 보는거 마냥 그렇게 약골이거나,
(강한놈이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놈이 강한 자라는 말도 있죠ㅋ)
왕권이 약해서 지방 호족 세력이 왕권을 위협할만큼 국내질서가 문란하지 않았다고 하는것이죠.
(그건 말기때 일인데,  마치 신라 역사 천년 내내 그래왔던것마냥  신라는 역사 내내 왕권도 약하다 말씀하시잖습니까?)

통일신라라는 명칭도 전기, 중기 신라와 고구려, 백제 멸망 이후의 남북국 시대의 신라를
구분하기 위한 편의상의 용어일 뿐이구요.

그리고 박혁거세 즉위 기간 기록을 보면..

기원전 41년(즉위 17년) 6부를 두루 돌면서 위무하였는데, 왕비 알영부인이 따라 갔다.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도록 권장하여 토지의 이로움을 다 얻도록 하였다.

기원전 39년(즉위 19년) 봄 정월에 변한(卞韓)이 나라를 바쳐 항복해 왔다.

기원전 37년(즉위 21년) 수도 금성에 성을 쌓았으며, 기원전 32년(즉위 26년)에 금성에 궁실을 지으니 이때 나라의 기틀이 잡혔다.

기원전 28년 낙랑이 침범하였으나 도덕의 나라라 하여 스스로 물러갔다.

기원전 20년(즉위 38년) 봄 음력 2월 마한에
(신라측)사신 호공(瓠公)을 보냈는데,
조공을 바치지 않는 것을 탓하는 마한 왕에게
(신라 사신)호공이 그럴 필요가 없다 해
마한 왕이 분노해 죽이려 했으나 신하들의 만류로 놓아주었다.

그리고 이듬해(사신 보낸 이듬해)
마한 왕이 죽어 (신라)신하들이 마한을 정벌할 것을 권하나
혁거세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요행으로 여기는 것은 어질지 못한 일이다.” 하여 사신을 보내 조문하였다.

이는 그 무렵 신라의 정치 체제가 바로잡혀 마한에 매여있지 않게 되어있다는 것을 말한다.

기원전 5년(즉위 53년)에 동옥저(東沃沮)의 사신이 와 말 20필을 바쳤다.

이걸 보면.. 신라측이 마한의 조공요구를 마한왕 면접에서 묵살하고..
심지어 신하들이 먼저 나서서 마한 정벌을 논하는 걸 볼 수가 있지요.

보통 왕이 먼저 나대고, 신하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만류하는 게 당연한데..
신하들이 먼저 정벌을 건의하고, 왕이 만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보통 신하들을 상당히 현실론자들이라
질거 같은 상황이면 저렇게 전쟁을 권하지 않거든요.

게다가 제후국 사신이 대국에게 가서 저렇게 당당하게 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있지요.. 신라 신하들은 뭔 간땡이가 부어서 저럴까요..

결국엔 마한이랑 제대로 맞짱을 떠볼만한 국력과 자신감, 국론단결이 있었다는 소리겠죠.
               
덜덜덜 14-11-15 00:37
   
천년의 존속기간을 부정하는게 아니고 신라의 천년는 종속국가 속국의 연속

즉 모두 싸끄리 포함해서 992년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진한(신라)의 국력이 어느 정도인지 사초를 보면요.

삼국지 동이전


'진한은 마한의 동쪽에 있다. 秦'의 사역을 피하여 도망쳐 왔다
언어는 마한과 조금 다른데 궁을 호, 행주를 행상이라 한다
이들은 서로 끼리끼리 모이는데 이도 秦人의 습성과 유사하다
진한의 왕은 마한사람이 맡으며 세세로 대를 잇는다.
진한인은 왕에 오르지 못한다'


즉 진한(신라)는 오랜기간 동안 마한사람이 '간' 우두머리를 즉위시켰고.

반대로 말하자면 마한인이 진한의 영토를 관리했다는 말이됩니다.

설화를 보면 혁거세 집안이 백제,고구려와 같은 부여계통 왕족 외손자뻘 된다는 설화가 있습니다..

이건 개인 상상인데 마한인이 부여계통 혁거세를 13세때 진한의 영토에다가 '간'으로 즉위시켰을꺼라 사료됩니다.

그래서 거서간이라고 불리고요..

거 : 거주하다
서 : 서녘
간 : 우두머리

서쪽나라에서 거주한 우두머리
<여기서 서쪽나라는 마한이 되겠죠>
parnis 14-11-15 02:02
   
어차피 다 가정이라 무의미 할 뿐입니다.

뭐 아쉬워 할 수는 있어도...

만약 고구려가 살아남아서 통일했다 쳐도 고구려는 한반도 남쪽을 신경쓰지 않아서 한반도내에 두개의 국가가 형성되었을 수도 있구요.

백제도 마찬가지로 한반도 북부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고구려가 살아남아 통일해서 한반도 북부에 중심을 뒀다면 몽골한테 진작에 털려서 원나라의 영토가 되었을 수도 있죠.

더 중요한것은 백제든 고구려든 후에 가서 망하고 다른 나라가 생겼는데, 그게 조선이라 현재와 크게 다를것이 없을 수도 있고...아니면 동북삼성을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어서 국경이 맞닿아 소련과 친해서 현재 우리나라는 공산주의국가 일 수도 있구요.

물론 현재 더 넓은 영토와 인구를 가지고 더 발전해서 강대국이 되었을 수도 있구요.

아무튼 역사는 가정이 없죠.

그냥 지금이 현실이고 운명일 뿐입니다.

과거를 거울삼아 앞으로 나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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