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신은 조선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을 또 다른 각도에서 다시 점검해보자.
첫째, 말갈의 선민족先民族인 숙신肅愼이 조선朝鮮의 전음轉音이라는 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즉 조선과 숙신은 원래는 같은 민족인데 이것을 표현하는 데에 다른 한자들을 사용함으로써 다르게 보이게 된 것이다.
둘째, 여진의 선민족인 말갈과 한국인들의 선민족인 예맥은 현대 한국어로는 크게 다른 말로 보이지만 이것은 음을 빌려서 표현한 말로 사실상 같은 말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바로 태양의 밝음을 상징하는 발족發族 또는 맥족貊族 등을 의미하는 말로 추정된다.
즉 예맥의 맥의 추정 발음은 '모[mo]' 또는 '허[he]'인데 말갈의 발음이 '모허[mohe]'로 추정되므로 말갈은 예맥의 다른 표현이거나 전음일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예맥을 거꾸로 쓴 경우 즉 맥예의 발음도 '모허[mohe]'로 추정되기 때문에 '예맥=맥예=말갈' 등의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말갈,예맥은 모두 음을 빌려 쓴 말이기 때문에 개별 한자의 의미는 무시해도 된다. 따라서 박,백,발,맥,막 등의 말들은 한자가 의미하는 버선 또는 가죽신이나 똥오물,살쾡이 등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태양의 밝음을 의미하는 고대 한국인들의 고유어인 '밝(다)' 또는 '붉(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맹자孟子』에는 맥족의 맥 자는 과거 중국 동북 지방의 고유어인 백·박·박과 같다고 하며 별칭 박고란 밝다(또는 밝고)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산해경山海經』에도 "맥이란 본래 우두머리가 되거나 하얗게(밝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라고 한다. 이것은 몽골,만주,한국,일본인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한족들은 이해하기 힘든 용어다.
셋째, 숙신의 영역은 고조선의 영역과 동호의 영역에 중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앞 장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말갈의 후예인 우지[wuji](물길勿吉)의 등장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즉 발해 때 숙신의 한 갈래가 막힐부를 중심으로 먼저 우지를 칭했다. 막힐부가 칭한 우지는 5세기경 사서에 나타난다. 문제는 우지를 가장 먼저 칭한 막힐부의 위치가 현재 랴오닝성 창투현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이 막힐부는 고구려가 설치했고 발해가 계승한 곳으로 과거 고조선의 영역이지 동호의 영역인 지역이다.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는 청나라를 건국한 여진이 숙신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그 발음은 '쥬신珠申[jushin]'이며 우지의 한어 발음[wuji]은 옥저沃沮[woju]와 유사하며, 우지가 옥저로부터 나왔다고 밝혔다. 결국 한반도인들과 만주인들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가급적이면 고대 민족을 부를 때는 현대 한국어에 의한 한자 발음을 자제해야 한다. 이 발음은 중국의 발음과도 거리가 먼 발음인데다 민족 분석을 더욱 모호하게 몰아가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에서 사용되는 한자 발음으로 보면, 말갈과 예맥의 공통성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물길과 옥저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 왜倭(와)와 물길勿吉(우지,와지)의 관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맥이라는 말은 말갈이 등장할 즈음에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진서晉書』의 시기에 이르면 예맥은 중국 사서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렇다고 그 많은 예맥이 한순간에 증발했을 리가 없으니 이 민족들을 부르는 명칭이 바뀌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말갈은 고조선·부여·고구려 등은 물론이고 한반도 중부 이북의 대부분 지역인들을 부르는 명칭으로 볼 수도 있다. 참고로 후일 이들은 여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여섯째, 『한서漢書』에 중국의 동북방에 있으면서 삼한 지역에 있는 것은 모두 다 맥족으로 기록이 있다. 이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에 있는 종족들을 모두 맥이라고 부르고 있음을 뜻하므로 자연스럽게 말갈은 맥족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한서』에 "북으로는 맥인과 연나라 사람들이 매우 용맹스러운 기병(효기梟騎)을 보내와서 한나라를 도왔다"는 기록의 주석에 "맥은 (한나라의) 동북방에 있으면서 삼한에 속한 것은 모두 맥족이며 그 발음은 밝 또는 막(원문에는 막객莫客)"이라고 한다. 여기서 이 '막객'은 맥에 대한 한자 발음법을 나타낸 것인데. 현대음으로 보면 대체로 모커[moke]로, 발음이 말갈 즉 모허[mohe]의 전음으로 추정되는데 밝에서 맥 사이의 발음으로 생각된다.
일곱째, 『삼국사기』에는 고구려가 주로 말갈병을 동원해 백제(반도부여)를 공격하는 반면, 중국의 사서들에서는 고구려가 주로 예맥을 동원해 공격하고 있다. 예맥은 한반도, 말갈은 요서·요동이라는 선입견을 가지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는 대목이다. 나아가 『삼국사기』에는 현재의 충주 지역을 공격하면서 예족의 병력을 6,000명을 동원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말갈=예맥'이라는 또 다른 반증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후한서後漢書』에는 "고구려 왕 궁은 예맥과 마한의 군대를 이끌고 현도성을 포위했다. 부여 왕은 아들 위구태와 2만여 명의 장병을 보내어 주군州群의 군대와 함께 이들을 격파했다. …… 그 후 고구려 왕 궁의 아들이 죽고 그의 손자인 백고伯固가 왕이 되자 예맥이 복종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고구려는 원래 예맥인이며, 또 예맥과 함께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에도 "공손연은 과거에 감히 왕명을 거역하고 …… 또한 고구려,예맥과 공손연이 도적과 노략질을 일삼게 된 것입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도 고구려와 예맥이 위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결국 이상의 기록들은 예맥=고구려민, 말갈=고구려민 등으로 나타나 예맥이나 말갈이라는 말이 동이족의 범칭으로 상호교환 가능한 말로 보이기도 한다. 물론 이 말들은 시기적으로 또는 책에 따라 서로 달리 나타나고 있다.
이상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한국사에서 역사적 주체에서 말갈이 제외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말갈과 고구려와 관련해 가장 큰 핵심적인 문제는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해명한 사료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고구려의 주요 기층 민중이 말갈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즉 말갈 자체가 예맥과 동일한 의미라면 굳이 해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국의 사학계는 한반도에 나타나는 이 광범위한 말갈인들을 한국인으로부터 제외시킴으로써 한국인의 개념을 더욱 모호하게 했으며, 한반도 말갈과 만주 말갈이 다르다는 자가당착에 빠지면서 결국 한반도 내의 한민족의 원류 분석은 미궁에 빠지게 된 것이다. 다행히 최근 한두 명의 학자들에 의해 말갈은 고구려의 지방민이라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동북공정(동북아시아 역사 말살 프로젝트)에서 이 말갈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바로 발해 문제와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말갈을 우리 민족으로 포함시키지 않은 상태이며 중국과 러시아는 '발해=말갈국'이므로 한국의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나라로 간주하고 있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부분은 여러 사서에 그 기록들이 나타난다. 발해사 전문가인 한규철 교수는 말갈은 고구려의 피지배 주민에 대한 비칭(낮춰 부르는 말)이자, 당나라 때 동북아시아 주민에 대한 범칭이라고 정리했고 이 토대에서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의 국가임을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그 동안 만주사의 대표적인 학자인 시라토리 구라키치나 히노가 이사부로,쑨진지 등에 의해 주장되었던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말갈이나 숙신을 한국인들로부터 분리하고 있는 현재의 학문적 패러다임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역사적 실체historical reality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패러다임을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고,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동북공정을 극복하는 분명한 방법론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