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목 - 무과는 활쏘기 주종목
무과는 처음에는 무예 6기와 강서 등 모두 7기예를 시험보았다.
즉 목전(나무살 쏘기), 철전(쇠살 쏘기), 편전(애기살 쏘기), 기사(마상궁술), 기창(마상창술), 격구 등이다. 그 가운데 목전과 철전은 과락제가 있어 3발 중 1발 이상 마쳐야 다음 과목을 치룰 수 있었다.
강서는 사서오경중 1서, 무경칠서중 1서, 통감․병요․장감박의․무경․소학 중 1서, 경국대전 등이다.
이들 과목은 격구의 예처럼, 기초무예의 능력을 평가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간단하고도 실전적인 무예가 강조되었다.
조총․편추(마상편곤)․관혁․유엽전 등의 새로운 무예가 추가되고, 표적을 쏘던 기사는 허수아비를 맞추는 기추로 바뀌었다. 임진왜란 이후 왜검을 비롯한 많은 검술과 창술 등이 연마되었지만,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그 결과 『속대전』에는 모두 11기로 정비되었다. 식년시와 증광시가 11기를 모두 시험 본 반면에 각종 별시는 11기의 과목 중 2➰3기를 시험보았다. 무과의 11기 과목을 구분해 보면, 궁술(목전, 철전, 편전, 관혁, 유엽전), 기마무예(기창, 기추, 편추, 격구), 조총, 강서 등을 시험 본 셈이다. 무과 11과목 중 특히 활쏘기가 모두 6기(기추 포함)로 절반이 넘는다. 실제 각종 별시무과에서 채택된 2➰3 과목의 대부분은 활쏘기였다. 궁술 중심의 무과시험은 무과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무과에서 활쏘기를 이처럼 강조한 까닭은 기본적으로 전술보다는 전략이 우선이라는 유교적 전쟁관과 함께 ‘육예(六藝)’ 의 하나로 인식한 때문이었다. 동시에 북방민족과의 투쟁에서 익혀 온 궁술이 ‘조선의 장기’ 였던 점도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의 무예’ 하면 곧 ‘활쏘기’를 의미하였고. 동시에 ‘조선의 무사’ 라 하면 곧 ‘활을 잘 쏘는 무인’을 뜻하는 말로 인식되었다. 또한 무과에 강서를 보는 까닭은 문무를 겸비한 무장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병서를 통해 지략을, 유교경전을 통해 관리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양반자제들이 무과에 쉽게 진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말을 이용한 기마무예가 많은 것도 경제력이 있는 양반에게 보다 유리한 시험과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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