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발해 사를 다루게 되면 다뤄야 하는 종족이 말갈입니다. 중국과 한국, 러시아 사이에서 논쟁이 되는 발해사의 귀속 문제에서 핵심이 되는게 역시 말갈입니다.
흔히 한국사에서 발해의 민족 구성의 대부분이 말갈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해 사가 중국사인가 한국사인가를 결정하는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고구려 역사와 이후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고구려는 초기에 자그마한 나라로 출발했지만 주변을 정복하고 확장하면서 커진 나라입니다. 만주의 대부분의 종족들이 고조선의 후신 내지는 그 영향을 받거나 그 주변에 있었습니다. 고구려 하에서 그러한 수많은 종족들이 있었을텐데 그들은 고구려에 동화되거나 그렇지 못 했거나에 따라 이름이 사라지거나 이름이 남아 거란, 말갈 등으로 이후에 불리게 된 건지 중국 사서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고당 전쟁시에 말갈은 고구려의 편에 서서 싸웠고 이후 발해의 건국에 있어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말갈과 고구려, 발해를 민족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의미는 없다고 보여집니다. 오히려 이는 고구려 지배층과 타종족 피지배층을 구분하는 데 가까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당서에서는 대조영을 고구려의 후신이라고 기록하였지만 신당서에서는 말갈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고구려 멸망뒤에 발해 건국과정에서는 지배층인가 피지배층인가 하는 경계가 상당히 모호했을 것이기에 이러한 기록이 남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멸망한 당시에 당은 수도를 함락하였지만 고구려 전체를 장악한 것은 아니었기에 고구려 멸망뒤에도 상당한 고구려 세력이 남아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다수의 고구려인들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말갈이라는 민족이 채웠다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발해는 당의 지배에서 벗어난 고구려 지배층과 고구려 지배하에 있던 종족이 연합하여 세워졌다고 할 것입니다. 또한 고구려 당시의 민족구성 역시 그대로 계승하였기에 고구려와 발해를 민족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발해 멸망 뒤에 지배층의 다수가 고려로 남하하였고 피지배층 말갈은 만주에 남았습니다. 여기서부터 한국사에서 말갈이라는 세력이 만주사로 분리된다고 하겠습니다. 이후의 말갈은 고구려나 발해 계승 의식을 갖기 보다는 말갈 그 자체로 의식을 갖고 나라를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과거에 연이 있었기에 고려나 조선과의 관계에서 그들이 불리할 때는 고려와 조선을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그들이 유리할 때는 그들 자신을 내세우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는데 이는 과거의 역사를 보면 이해가 되는 것이지요.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에서 말갈은 발해까지는 한국사의 영역에 해당하고 청 이전까지는 만주사에 해당하며 청부터는 중국사에 해당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하겠습니다. 만주족이 만리장성 이남으로 들어가면서 그들 스스로 중국사에 동화, 흡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저의 주관적인 역사 인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의견이 많이 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의 의견을 참고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