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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19 16:57
[기타]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병자호란도 없었습니다
 글쓴이 : 대은하제국
조회 : 3,503  

병자호란때 조선이 패배한이유는
 
임진왜란으로인한 피해때문이죠
 
우리가 이기긴 했지만 오히려 피해는 우리쪽이 더 심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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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14-08-19 17:18
   
임진왜란에서 털리거랑  같은거임 왜란이 터진 이후에도 정신못차리고 군사력을 늘리지 않았고 국방에 소홀했죠 당시 명-청 교체기에서 조선이 무능했던게 명은 이제 망할 나라인데도 청나라는 오랑캐라고 외교적으로 적대시했는데 이게 발단이 돼서 청나라가 쳐들어왔고 고려시대 몽골이 침입한것처럼 유목민족 특성상 빠른 습격에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함으로서 탈탈 털리게되죠
강건성세 14-08-19 17:26
   
병자호란 이전에 이괄의 난이 일어났고 북방의 방어선이 약해질대로 약해진상황에서 호란을 맞게되었습니다.. 병자호란도 조선의 자중지란에 의해서 조선이 초래한부분도 있습니다.
전략설계 14-08-19 17:39
   
이괄난 때문에 그나마 싸울 병력이 사라진 이유도 있었겠지만..
임란을 보면 호란이 보입니다..

조선 500년은 적을 상대할만한 병력 자체가 없습니다.
여진족 친다고 보낸게 1만 정도..
임란때 군적에는 십수만이 있었다지만.. 육상에서 2-3만 정도라도 편제를 유지마현서..
왜군하고 싸운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바다에 1만 단위로 성 짓고 있는 애들도 몰아내질 못해서..
바다 있는 애들 쳐내는 순천왜성, 울산성 전투때도 주력은 명나라 육군이라, 부끄러운 일입니다.
울산성에 1만도 전투 끝나고 90% 사라졌으니까.. 성을 포위하고 풀어주는 전투 양상을 보면
믿기 어려운 것이라.. 전짜 조선육군 1만이라도 갔나 의구심이 있습니다.
고려하고 비교하면.. 거란전쟁때.. 요 성종이 30만을 몰아오는데.. 고려가 40만을 거병합니다.
진짜 40만인가 싶은데.. 울산인가 어디 비석을 보면.. 예비군체계가 잘 갖춰졌음을 보여주고..
호란때보다 전력이 뛰어나다고 봐지만 요 황실군 10만 기병이 쳐들어왔을 때..
고려는 이 부대를 추적할 부대가 있었고.. 강감찬의 고려군 주력이 남아했고..
개경 직공하는 거란군을 김종현군 1만 철기병이 바로 뒤따라갔는데..
10만 기병에 상대할만한 정규군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임란때 1만 정도는 신립이든, 임진강전투를 보면.. 어떻게 꾸려서 보내는데..
적이 10만을 몰고  오는데.. 1만 가지고는 싸울 수가 없는 것이죠.
려말에.. 요동 정벌군도 5만 가까이 됩니다..
호란때 여진부대(일부 한족)가 10만이라면..
3-4만.. 4-5만은 있어야.. 남한산성 포위한 적을 뒤치기라도 해보는데..
일절 없습니다..
임란의 재판입니다..
임란사 책을 아무리 봐도.. 전라도에서 올라왔던 5만 (일부는 3만) 의병들..
와끼자카 2-3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급조한 동네사람들 빼고는..
4-5만 정도의 편제가 잽힌 육상 부대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이..
임란이든 호란이든 같은 결과가 되풀이 되는 것이고..
고려와 달리 외교와 방위를 중국에 의지하는 사대주의가 한몫했다고 보여집니다.
외적이 쳐들어오면 모시던 중국 불러오면 되는데..
실제로 불러왔고.. 임오군란때부터 불러왔고.. 나중에는 동학혁명때는 일본군부터 불러와서..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무슨 수만의 군대가 필요할까요..
강건성세 14-08-19 17:44
   
고려는 한반도 최초의 자주적통일국가였고 정신부터가 다르죠. 내나라는 내가지킨다는 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망하는 순간까지도 요동정벌을 생각하죠. 조선은 나라국명부터 명나라가 정해준걸로 받은겁니다.
내나라는 내가지킨다는 생각자체가 없었고 중국에 사대하는걸로 체제의 존립을 지키는걸로 만족한 왕조입니다.
     
나와나 14-08-19 22:15
   
조선 국호를 명나라가 정해줬다???
이건 전혀 아니죠
엄연히 '조선'이라는 국호 책봉은 조선과 명이 서로 짜고 한겁니다
조선 외 후보였던 '화령'은 이성계 고향이라는 걸 빼면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이름이었고,
그에 비해 조선은 우리 최초의 국가이자 민족의 이름으로, 원 간섭기를 지나면서 강화된 민족 의식에 부합되는 이름이었습니다
거기다 화령은 명과 싸우던 북원의 수도 이름과 똑같았다더군요
그런데 명나라가 화령을 택한다는 건 우리로 칠 때 일본에 막 독립한 후 국호를 도쿄로 한다는 거와 똑같은 겁니다
국호 책봉은 진짜 정해준 게 아니라 서로 두 나라가 짜고 맞춘 겁니다
          
강건성세 14-08-19 22:52
   
다 떠나서 짜고했더라도 자국의 국명을 두개중에 하나를 선택해달라고 명나라에 청한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화령중에 조선을 택할수밖에 없다할지라도 형식상이라할지라도 조선과 화령 둘중 하나를 국명으로 할것이오니 황제께서는 골라주십시오하는 자체가 그 자체가 문제라고생각합니다.
               
mymiky 14-08-19 22:59
   
당시, 명나라와 고려의 사이가 불편했기에,
그런 방법을 통해 명의 우리나라에 대한 강경 기조를 유-하게 바꾸고,
황제의 체면도 세워주면서 양국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물론, 그 뒤에도 주원장이 썩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였지만요.
     
전략설계 14-08-20 11:51
   
왕건이 국호를 정하면서.. 중국 황제에 이름을 정해달라고 하진 않았죠..
이전에 없던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도 사대근성입니다.
명나라가 철령위 설치로 압박을 했지만, 고려는 바로 요동정벌에 나선 상황을 봤을 때..
나라 이름까지 갖다바쳐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고요.
당시 요동이 명나라 것도 아니고.. 요동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할 능력도 없었고..
쳐들어오면 다시 놔두고 후퇴하면 되는 것이고..
그렇다고 30만 대군으로 당태종이나 요성종이 하듯 한반도를 침략할 수도 없고..
반드시 나라 이름 갖다바치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다고 보기 어렵네요.
조선의 기본정책인 사대가 더 원인인것 같고요.

고려가 몽고에 깨지기는 했지만.. 한족은 더초라하게 깨졌고..
남송때는 황제한테 고려왕이 거란보다 여진을 더 경계하라고 조언까지 할 정도로
한족한테 큰 소리쳤고, 고려사신이 남송에서 젤 대접받았다는 것은 다들 아실거고..
요동정벌하던 상황에서 불과 수십년만에 같은 한족인 명나라한테 나라 이름 갖다바치는 것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은데도 한 것은..
대국이면 쫄든 고려, 원 변경에서 원나라 앞잽이였던 왕조의 정신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집구석 내력을 보면 위화도회군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후손들이 이를 합리화 필요는 없다고 봐집니다.
mymiky 14-08-19 18:25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1일단, 왜란으로 인해 주변나라인 (조선-명-왜)가 난리 부르스를 떨때, 만주에선 누르하치가 발호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죠. 누르하치와 여진족들에겐 이 시기가 딱 골든타임이였음.

2님말씀처럼 왜란으로 인한 전후 재건 시기였는데, 또 한번 전란을 맞은게 크고;

3인조가 제때 도망가지 못하여, 체스메이크 당한것도 있고;
(그래서, 호란은 왜란보단 단기로 끝났지만, 사실 청은 명이 지들이 조선에 남하할 사이 후금수도인 심양 공격해올까봐 오래 전쟁을 못 끌꺼라 판단하고 제일 빠른길로만 쭉쭉 밀고왔는데 ㅋㅋ 선조처럼 인조가 남쪽으로 토꼈으면 청군도 꽤나 난감했을듯..--)

4인조-서인정권의 근거없는 패기로 인한 외교적 고립;

5뭐 인조-서인정권이 아니라도, 당시 청의 사정이 썩 좋은건 아니였음;
당시, 후금은 증가하는 인구와 명의 대치상황에서 점차 자원이 부족하게 됨, 특히 명이 무역금지로 인해
경제상황이 최악이였음, 그걸 만회할수 있는 돌파구로 이참에 명-조선의 관계도 끊고, 작지만 먹음직(?)해 보이는 조선을 치고 어느정도 시간을 벌어보자는 도랑치고 가제잡자는 계산도 깔려있었음. 

그래서, 굳이 인조가 청을 오랑캐라고 적대시 하든지, 광해군처럼 중립 외교란 허울좋은 외교를 하든간에
청이 내부적으로 지들 사정이 안 좋았기에, 조선에 침략해오는건 시기만 달랐지 매 마찬가지였을꺼라고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아라비안 14-08-20 09:07
   
왜란이 비중이 크긴하죠... 애초에 누루하치가 크기시작하니 명나라가 지켜보다 이거안되겠네~

토벌군 보내려했지만 그토벌군 대부분 조선 구원병으로 파병

누르하치견재시기를 놓쳤죠..

정말 될놈은 운이따라줌....
서냥 14-08-21 07:42
   
군사력은 경제력에서 비롯됩니다.
율곡이이의 10만 양병설이 어쩌면 현실성이 없을 수도 있었던 것이, 손자병법에도 말하기에 10만명의 군사를 일으키려면 하루 천금의 비용이 필요하다며 거액의 필요성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상업,공업,농업을 천시했던 조선사회에서 전국토가 유린당하기 전에도 없던 경제력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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