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서기 122), 임금이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침입하였다. 부여왕이 병사를 보내 요동을 구하고, 우리를 격파하였다.[마한은 백제 온조왕 27년에 멸망하였는데, 지금 고구려왕과 함께 군사 행동을 한 것은 아마도 멸망한 후 다시 일어난 것인가?]
七十年 王與馬韓穢貊侵遼東 扶餘王遣兵救破之[馬韓以百濟溫祚王二十七年 滅 今與麗王行兵者 盖滅而復興者歟]
21. 태조대왕 71년(서기 123)
[네이버 지식백과] 태조대왕 [太祖大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그러니까 김부식은 마한이 백제 온조왕 때에 멸망했다고 말한 적이 없고..
" 백제 온조왕 때에 멸망했다는 마한 기록도 보았고 고구려 태조왕 때의 마한 기록도 보았지요
김부식은 두 기록다 신뢰성 있는 기록이라고 보고 고심 끝에.. 2가지가 모두 사실이 될 수 있는 경우.,'
백제 온조왕 때에 한반도에서 멸망한 백제가 고구려 요동 인근 어딘가에서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정확히는
모르겠다"
만일 이 기록이 근초고왕 23년이 아니라 다른 해, 예를 들면 22년이나, 24년 등에 나오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또 친선기록이 아니라 전쟁기록이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기록에 똑같은 양마 2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물론 형식은 백제가 왜에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제 주관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 일본서기를 만들 때에 백제 신라 기록을 왜의 기록으로 치환하는 것은 자주 나오는 패턴이죠. 양마 2필이라는 표현과 연대가 일치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