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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5-06 18:57
[기타] 말갈이 한민족인 이유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4,135  

부여, 고구려
부여는 속말말갈 지역에 세워진 나라이고,
고구려는 백산말갈 지역에 세워진 나라이다.
 
고구려 내부기록
고구려 내부기록에는 고구려인과 말갈인을 구분하는 기록이 없다.
 
예맥, 말갈
예맥이란 명칭은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울 당시의 종족명이다.
고구려 시절에 예맥이란 명칭은 존재하지않는 명칭이다.
 
말갈의 설명
읍루라 불리던 부족
읍루는 부여에서 반란으로 독립한 세력이다.
숙신이라 불리던 부족
숙신=조선 이다.
 
대조영의 부친인 걸걸중상은 말갈 추장이다.
하지만, 우리 기록에는 대조영이 고구려인이라고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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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설설설설 17-05-06 20:11
   
?? 고구려하고 말갈인은 엄연히 따로 기록해놓는데요. 윗분 말씀대로 거의 같은 민족처럼 하나의 이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순 있지만 구분은 확실히 해놨어요. 고구려 말갈 연합군이라는 기록도 심심찮게 볼수있고 실제로 당나라와 고구려말갈연합 전투할때 당나라가 잡은 포로중에 말갈은 더 잔인하게 처리할만큼 구분되어있음.
고구려 수나라전쟁도 고구려 영왕왕이 직접 말갈기병 1만으로 선제공격 했는데요.

광개토태왕릉비만 보더라도 광개토왕 마지막 유언이 자기가 직접 데려온 韓(한)濊(예)보고 무덤을 관리하라는 유언을 남기셨는데..;; 

그리고 수 많은 중국기록만 보더라도 우리하고 읍루,말갈 같은 경우는 문화와 언어 조차도 확연히 다르다고 언급하고 있는데요..
     
관심병자 17-05-06 21:17
   
문화와 언어가 확연히 다르면 부여와 고구려는 건국될수가 없습니다.
말갈이 살던곳이 고조선 영역입니다.
부여, 고구려와 고조선이 전혀 다른 문화를 가졌다고는 생각할수 없습니다.
외부유입이나 침략으로 생겨난 부족이 아닌 고조선땅에 살던 고조선 유민입니다.

말갈이 고구려와 다른 국가를 이루고 있지 않았고,
고구려 내에서 자체적으로 무장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피지배 계층이 아니라, 고구려인 그 자체라고 봐야할듯 합니다.

말갈은 고구려 정부와 말갈 스스로 고구려인이라고 생각했다는게 상식적으로 맞고,
그들 스스로 고구려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군사력을 보유한 세력이 고구려 영토안에 있는건 말이안됩니다.

보통의 역사인식처럼 그들이 피지배 민족이었다면,
고구려가 내부단속 조차 하지못한 명분밖에 없는 나라이거나,
신석기, 청동기 시대 국가같은 왕권확립이 되지않은 부족연합체 정도의 세력정도 였다고 볼수밖에 없죠.
그노스 17-05-06 20:58
   
고구려 내부기록이 어떠한 것을 말씀하시는지는 모르나 윗분 말씀처럼 말갈을 우리 민족과 동류로 여기는 시각은 있어도 고구려와 말갈이 일단 서로 구분은 되어 있습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백제본기, 신라본기) 모두 말갈을 따로 표기하고 있고 심지어 삼국유사에서는 고구려와 말갈을 별개의 나라로 기록합니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
수가 30만 대군으로 침입해오다 ( 598년 02월(음) )
9년(598) 왕이 말갈의 무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요서를 침략하니 영주(營州) 총관(摠管) 위충(韋冲)이 이를 격퇴하였다. 수문제가 듣고 크게 화를 내고 한왕(漢王) 양(諒)과 왕세적(王世積)에게 명하여 나란히 원수(元帥)로 삼아 수군과 육군 30만을 거느리고 와서 쳤다.

삼국사기(백제본기)
고구려, 말갈과 함께 신라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다 ( 655년 08월(음) )
8월에 왕이 고구려, 말갈과 함께 신라의 30여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신라 왕 김춘추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려 “백제, 고구려, 말갈 등이 우리의 북쪽 국경에 침입하여 30여 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신라본기)
고구려와 말갈이 실직성을 습격하다 ( 468년 (음) )
11년(468) 봄에 고구려와 말갈이 북쪽 변경의 실직성(悉直城)을 습격하였다.

삼국유사(제1 기이(紀異第一) 태종춘추공(太宗春秋公))
고구려의 침략으로 한산성이 위태로울 때 김유신이 신술을 써서 고구려군을 물리치다(0661년 05월 11일(음))
당나라의 군사가 백제를 평정하고 이미 돌아간 뒤에 신라왕이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백제의 잔적을 쫓아 잡게 하고 한산성(漢山城)에 주둔케 하니, 고구려 말갈 두 나라 군사가 와서 [성을] 포위하여 서로 싸웠다.
인류제국 17-05-06 21:49
   
관심님 말대로 백산말갈 속말말갈은 우리하고 언어가 통했다고 합니다

사실상 백산 속말을 예맥계 말갈족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흑수말갈의 경우는 다릅니다 백산 속말과는 달리 문화는 물론이고 언어도 달랐다고 합니다

나중에 흑수말갈이 여진족 후에 만주족이 됩니다
     
Player 17-05-07 09:12
   
언어가 통했으니?

조지 부시가 마이클 조단보고 아이고 형님.
칼리S 17-05-06 21:52
   
무슨 말갈이나 여진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고 헛소리 해대는 분들이 계신데, 정작 우리나 중국 역사서들에서는 말갈 여진을 따로 취급합니다.

당장 말갈이 고구려와 같은 계통이었으면 융화가 되고도 남았어야죠. 고구려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니고요. 고구려 시대에 왜 말갈이란 명칭이 쭉 통용되었을까 생각하면 답 나오죠. 그들은 우리와 다른 족속들이란 겁니다.

고구려 시대에 말갈은 융화가 되지도 않았고, 철저하게 고구려와 중국 사이에서 힘 있는 쪽에 복속되어 행동했던 족속들입니다.
코스모르 17-05-07 00:25
   
말갈이 여진 아닌가요????
패닉호랭이 17-05-07 10:05
   
말갈이 주가 된 청나라가 만주원류고에서 만주 족속중에 유독 고구려를 빼버린걸 보면 알수 있죠.
걔네들은 자기들을 지배했던 고구려 자체를 인정을 안함 ㅋㅋㅋ
     
뚜리뚜바 17-05-07 13:13
   
하지만 신라를 인정햇죠. 정통성을 신라에서 가져왔으니 고구려를 배척했다곤 볼 수 없을까요? 머 저도 역사에 정통한건 아니라 가능성은 열어놓고 싶습니다.
관심병자 17-05-07 10:49
   
http://blog.naver.com/april0422/80003839060

지금의 한국인의 말갈 인식은 고대 중국인의 인식입니다.
구당서, 수서에서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돌궐과 맞닿아 있고, 남쪽으로 고구려와 닿아 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 고구려편에는 말갈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백제 기록에는 백제의 동쪽에 낙랑이 있고 북쪽에 말갈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라, 백제는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말갈과 전투 기록이 있죠.
백제와 신라의 기록 대로라면 만주와, 한반도에 걸쳐 존재했던 부족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럼 고구려라는 나라는 어디로 사라졌다는 얘기일까요?

말갈중 흑수말갈은 고구려와 독자적인 외교노선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래서 당나라가 흑수말갈은 고구려와 별개라고 생각했었던 것이지만,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킬때 흑수말갈이 고구려편을 들어 참전했습니다.
흑수말갈은 고구려 성립시기부터 갈등이 있었습니다.
주몽과 소서노의 결혼동맹을 반대한게 흑수말갈 입니다.


http://ekrrkdwjd.blog.me/140146776078

흑수말갈의 후예라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 기록에 흑수말갈이 고구려에 속해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갈 7부의 하나. 속말말갈을 비롯한 다른 6부는 이미 발해건국 당시에 발해와 합류했거나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다 포섭되었지만 흑수말갈만은 오랫동안 소속되지 않고 상당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흑수말갈은 발해에 직접 속해 있지는 않았지만 발해가 두려워 처음에는 감히 독자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나 당이 흑수말갈을 이용하여 배후에서 발해를 공격하게 하고 그 가운데서 어부지리를 얻으려고 획책하는 가운데, 726년 흑수말갈은 발해에는 아무런 통고도 하지 않고 당에 사신을 파견하여 보호를 요청했다. 이를 기회로 당은 726년 흑수국을 흑수주로 개칭하고 거기에 장사(長史)를 파견하여 통제케 하여 당의 기미주(覊縻州)로 삼았다. 발해 무왕은 당의 배신적인 행위에 분개하여 당을 칠 것을 결심, 먼저 당과 동맹을 맺은 흑수말갈을 쳐 이를 완전히 굴복시켰으며 앞으로 당과 협력하지 않을 것을 다짐받았다(726년).

[네이버 지식백과] 흑수말갈 [黑水靺鞨] (한국고중세사사전, 2007. 3. 30., 가람기획)
감방친구 17-05-07 14:48
   
말갈의 후신이 여진족이 아닙니다
말갈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가운데에 흑수말갈이 발해 멸망 후 요나라에 의해 발해인이 요동으로 다수 사민된 후 힘의 공백지가 된 남만주에 내려와서 신라유민 등과 합세하며 나타난 것이 여진족입니다

물론 여진이라는 명칭은 발해 후기부터 나타납니다
여진은 숙신의 전음이거나 같은 말을 다른 한자로 차자한 것으로 보입니다

숙신(부여에 복속)ㅡ읍루(부여에 복속)ㅡ물길(부여에 복속, 후에 반란, 고구려가 제압, 속민화)ㅡ흑수말갈(고구려와 발해의 속민) ㅡ여진족(발해와 고려의 속민, 후에 독립해 금나라 건국)ㅡ만주족

이게 정실한 계보입니다


ㅡ 여진족은 흑수말갈의 후신
ㅡ 흑수말갈은 물길의 후신
ㅡ 물길은 읍루의 후신
ㅡ 읍루는 숙신의 후신

이들은 흑룡강 중하류, 연해주에 거주한, 우리의 오래전 겨레붙이입니다
우리가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일구어 누리며 번영할 적에 연해주 변방에 고립되어 돌화살촉을 쓰며 살던 우리의 일가입니다

이들이 우리와 언어가 달랐던 이유는
일전에 이곳에 게시된 글에서 보았듯이
아이슬란드인과 북유럽인이 동일한 혈통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정과 동일합니다
위구르 17-05-07 18:06
   
엄밀히 말하자면 대부분은 우리 민족이나 일부 나머지는 아니었습니다.. 고구려에 상당수의 말갈인들이 복속되어 나중에 당의 침략에 맞서 싸우거나 나중에 부흥운동에 사활을 걸고 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일부는 서천태왕때 반란을 일으켜 (안국군 달가에 의해 진압되었지만)고구려에 반항했죠. 한마디로 상당수는 고구려인이었고 일부 나머지들은 자치 세력을 형성하거나 고구려에 복속되었어도 마음으로 따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발해 때에는 좋든 싫든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흑수 말갈까지 모조리 복속되었지요. 그런데 교과서의 발해 영토가 그 모양이라니...
그리고 고조선 때에는 아마도 조선을 중심으로 한 번국중에 말갈의 세력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다른 보통의 번국들과는 이질감이 있었습니다(숙신에 대해 '언어독이'(<-언어가 홀로 같지 않다.) 라고 지나 사서에 기록됨). 그러다가 고구려 세운 추모성제가 말갈을 구슬려 같은 편으로 만들고 이후로 쭈욱 함께 가면서 고구려인이 된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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