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가 아니라 15세기 훈민정음 발표시의 우리나라말도 지금 들으면 외계어같이 들립니다.
저번에 교수님이란분이 훈민정음 해례본 앞부분" 나랏말쌈이 ..." 이 부분을 연구해서 당시어에 가깝게 녹음한걸 들어보니 거의 우리나라말이 아닙니다. 성조가 있어서 중국어 처럼도 들리고요 우리나라 지금 없는 발음도 막 나와서 알아듣기 어렵더이다.
그러니 백제,신라,고구려는 말하나 마나 입니다.
각 시대별 언어에 대해서 연구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고구려어와 백제 지배층 언어는 같았다고 보는게 일반적이며, 백제의 경우 지배층과 피지배층 언어가 달랐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라는 고구려-백제 언어와 기초어휘부터 차이를 보이는 등 구조와 문법은 같지만 어휘가 다른 현대 한국어와 일본어정도의 차이를 보였던 것 같습니다.
발음이 궁금하다고 하셨는데, 고구려어를 예로 들면 현대 한국-일본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지명으로 고음을 재구합니다.
연구자들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고구려어에는 p, m, t, s, n, r(ㄹ), k 7가지 자음과 이, 우, 으, 아래아, 아, 오 6가지 모음이 있는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각 소리가 쓰인 빈도도 자음은 r, k, s 순으로 높고 모음은 아, 이, 오, 으 순으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또 h가 k로부터 분화하기 전이었고 6세기부터는 모음 '어'가 나타납니다. ng(ㅇ) 받침은 잘 쓰이지 않고 한자음을 발음할 때만 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현대 일본어와 좀 더 발음이 유사했고, 특히 현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처럼 고구려어에는 ㅎ이 따로 없고 kh발음을 냈습니다. ㅋ도 아니고 ㅎ도 아닌 중간발음이죠. ㅋ는 목구멍을 닫았다 열면서 나는 소리인데 kh는 열지도 닫지도 않고 긁으면서 내는 소리죠.
아무튼 이런 법칙을 을지문덕에 대입하면, 으르지 문더크(덕에서 ㄱ에 해당하는 자음은 존재했지만 고구려어는 개음절로 발음해서 ㄱ으로 닫히는 받침이 없습니다)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당시 고구려인에게 을지문덕을 해보라고 시켰을때 낼수있는 소리일 뿐 실제 을지문덕이란 이름을 이렇게 발음했을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연개소문의 경우, 같은 인물을 일본서기에서는 이리가수미 라고 적고 있습니다. 중국계열 기록에서 연이나 천으로 기록되는 성씨가 모두 일본서기에선 이리로 적힙니다. 연의 의미는 연못이고, 고구려어로는 '아이르' 라고 발음했습니다.(최남희교수 논문) 이것을 일본에서 이두로 '이리'로 적은 것이죠. 그리고 만주의 구전설화를 단재 신채호가 채록한 바에 따르면 연개소문의 개소문이 갓쉰이라고 구전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연개소문은 고구려어 발음으로는 아이르 캇쉰 정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재로서 고구려시대 발음중 가장 정확한것은 고구려의 국호입니다. 고구려는 당시 표음문자 총 4종류로 적혀있는데 모두 같은 발음을 냅니다.
1. 비잔틴제국 테오필락트시모카타의 <히스토리앰> = 무크리
2. 실담의 산스크리트어 사전 <범어잡명> = 무구리
3. 프랑스 펠리오 조사단이 발견한 돈황문서 p1283 = 무글리
4. 현재 몽골 호쇼촤이담에서 발견된 투르크비문= 뫼클리
즉 고구려인들이 실제 발음했던 자신들의 나라 명칭은 '무크리' 와 유사했습니다. 아마 여기서도 지금 한국어에서는 쓰지 않는 kh 발음을 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님의 수준은 학부생을 넘나 보군요...
8~9세의 기록들을 가져와서 고구려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죠. 그들이 지칭한 무구리는 오히려 말갈에 더 가깝습니다. 시대도 발해 시대인데 어떻게 그것이 당대 고구려인들이 자신들을 지칭한 것이라는 건지 정확히 밝히셔야죠...
글고 일제시대 창시개명은 억지로 강요당한 것이니 님 말대로 난리를 친 것이죠...
신라의 경우와 비교할 바 아니에요...어디에서 어줍잖은 지식 주워와서 창시개명을 난리를 친 것이라고 하느니 여기 계신 분들을 학부생 수준도 안되는 사람들이라느니 말을 그렇게 함부로 씨 부리나요...
고대 한국사 논문만 좀 읽어봐도 수십번 넘게 인용되는 닳고 닳은 사료들인데 여기서 처음 듣고 인터넷 서칭좀 해보신 모양이네요. 전에 쓰신글들 좀 훑어보니 역사를 인터넷으로 공부하시는 전형적인 분이신것 같은데..
물길(말갈)설은 기록 발견 최초에 동아시아사에 무지한 서양 노마드학 학자들에 의해 발음의 유사성으로만 제기되었을 뿐 관련 서술에서 위치비정 및 정치상황이 모두 고구려를 지칭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산스크리트어 사전 범어잡명에서 한자로 쓰인 고구려와 음차자로 쓰인 무구리를 함께 언급함으로서 이미 시비가 끝난지 20년도 지났습니다.
또한 테오필락트시모카타의 기록은 613년입니다.
범어잡명도 무구리가 바로 고(구)려라고 정확히 기록하며 서술하고 있습니다.
돈황문서 역시 무글릭을 백제, 해(고구려 서북방 유목민)와 함께 거론하고 있는것으로 발해를 지칭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퀼테긴은 684년생이고 비문은 8세기에 쓰여졌지만 뫼클리를 언급하는 부분은 돌궐의 시조를 말할때 나오는 553년생 부민가한의 조문행렬에서 언급됩니다.
누가 어줍잖다는건지 사료가 똥인지 된장인지조차 구분 못하면서.. 그리고 말은 바로합시다. 일제때 뭘 억지로 강요했습니까? 창씨개명하지 않으면 총독부산하 교육기관 취학이 안되는 등 제도적으로 불편함이 많도록 하여 유도한 것이지. 하지 않고자 하면 하지 않을 수 있었고 실제로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창씨개명을 안한채로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님 할아버지께 여쭤보세요, 창씨개명 했었는지.
가생이 동아시아판이 이런수준이라는 겁니다. 일단 사이트 특성상 몰리는 분들이 민족주의를 깔고 들어가니 불리하든 유리하든 역사적 '사실'만을 판단해야 하는 역사학에서 수준이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친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고등학생 때 동네 할아버지들께서 동네 슈퍼에서 술 드시면서 하시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일제 말엽에 창씨개명하고서 일본 순사 있는 곳에서는 개명한 일본식 이름으로 불렀고,
조선사람끼리 있는 곳에서는 조선이름으로 불렀다고
일본이라면 이를 가시던 분들이 하신던 말씀을 지금도 기억 합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 당시 창씨는 공기관 취직이나 취학이 안되도록 하거나 열차수하물을 취급해주지 않는 등 갖은 방법으로 등록하도록 유도했지만(그럼에도 대부분 하지 않았고 법령에 따라 6개월의 자체 신고 기한이 지나면 총독부가 일괄로 호주 성씨를 따른 형식상의 자동 창씨만 함. 실제 대부분이 사용되지 않음) 개명은 애초에 행정관리상의 부하를 우려해 수수료를 별도로 받을정도로 장려하지 않았습니다. 총독부 지침이 아닌 단순 선택사항이었구요. 그런데 일본이름으로 불렀다구요? 수수료까지 지불하고 개명하는 적극적 친일분자셨나보군요.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지신것에 비해 그 지식이 그 당시에 뭘 의미하시는지는 잘모르시네요
수수료까지 지불하고 창씨 개명하면 친일분자입니까?
이혼이나 토지매매등 상거래나 법적 문제에 부딪치면 창씨개명해야 편했습니다
그것이 행정적 편의를 보장받기 때문이죠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송사에 직면한 사람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자신의 성씨 발원지나 연고를 바탕으로 개명한것이 수수료주고 개명한 친일파로 매도되어야 할 사안인지요
저의 할아버지는 개명했습니다
성의 발원지의 산이름을 성씨로 (2자) 바꾸시고 이름은 그대로 해서 성이름이 3자에서 4자로 늘었습니다
일제시대 토지대장 보셨습니까? 지금은 모르겠지만 20년전 군청 토지과에서 토지대장 열람하면 다 일본식 이름입니다 실제 일본인도 있지만 자기 재산지키기 위해 개명한 우리내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고작 학교 취학 못하게 하고 상거래나 송사에 불이익을 준것같고 그걸 강압적 개명이라고 할 수 있냐는 님의 논리는 참 가관이군요
열차에 의존해 물류 유통하던 업자들은 친일파요
땅을 사고파는 사람도 친일파요
소학교에 취학한 사람도 친일파입니까?
님집안에는 그런분 안계신가요?
안계시다면 무식자집안이거나 사고 팔게없는 빈민이셨나보네요라고 제가 말하면 기분 좋으시겠쎄여?
역사라는 것은 지금의 눈으로 파악하는게 아니라 그 시절의 눈높이와 상황으로 판단해야합니다
역사나 고고학을 연구하시는 것 같은데 역사는 암기하거나 당시의 상황을 나열하려고 존재하는 학문이 아닌것으로 압니다
우리 어르신 이름중에 순자 미자 춘자 다 일본식 이름 아닌가요. 이름에 종자 웅자 들어가는거 다 일본식 이름아닌가요. 창씨에다가 미자 붙이면 바로 일본이름이고 창씨에다가 종길붙이면 일본이름이예요. 일제시대에 태어난 분들 이름보세요. 대부분 그래요. 여자이름은 죄다 미자 순자 이렇고 남자이름 태웅 종길 이런식이예요. 불이익을 줬던 어떻든 일제 말기에는 대부분 일본식 이름이었어요.
자 자가 붙는게 일본에서 코로 끝나는 일본식 여자이름인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그게 강제적인거면 오륙십년대 태생 여자들이 자 자로 끝나는건 어떻게 설명하실건데요? 이승만 박정희가 친일파라 강제했답니까? 그리고 그 80프로란것도 어떤 대상으로부터 80인가요? 네이버 사전에 대충 뭉뚱그려놓은거 저도 이미 글쓰기전에 확인 했습니다. 과연 그게 전체 호구의 80일까요?
무구리님, 그렇게 이곳 유저분들을 모두 묶어 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됩니다.
이곳은 전문가들의 공간이 아니라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관심이나 흥미를 가진이든 무지한 이든 누구나 어울려 자신의 생각이나 의문을 글로 풀고 또 어울릴 수 있는 장입니다.
불만스러운 감정과 견해를 가지고 계시고 있는 것으로 보여 이해는 갑니다만 그렇게 하실 일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저 본인의 견해나 가지고 계신 지식만을 나누는 선에 그쳤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지금 명백히 드러나는 기초어휘가 다른데 고작 고구려 대형, 소형을 뜻하는 힐지, 실지와 백제에서 임금을 이르는 건길지와 단순 발음 유사성으로 같은 말이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힐지 실지와 건길지가 같다는 것도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일본어와 한국어도 비슷한 단어는 얼마든지 있는데 그렇다면 둘이 서로 같은 말이 됩니까? 같은 어족으로 묶을 수는 있어도 일부 단어의 유사성으로 같은 말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근방의 국가니 일부 어휘는 유사할 수 있으나 그 뿌리는 기초어휘로 봐야 합니다. 마치 미국과 한국이 모두 컴퓨터를 컴퓨터라고 부른다 해서 영어와 한국어가 같은 말이라고 하는 꼴입니다.
게다가 지금 말씀하시는 대부분의 사례가 음차자대응등의 고음재구방법론의 적용 없이 당시의 음차표현을 현대 한국 한자음의 유사성만으로 근거를 들고 있습니다. 환빠들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수도 이름이 아사달과 같다고 하는것처럼 들리는군요. 아스타나는 원래 아크몰라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니 허무맹랑한 소리죠.
게다가 저는 학자나 학계의 의견을 소개하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는데 정신차려님은 아마추어식 어설픈 접근을 하면서 근거도 없이 확신에 차있군요. 고구려에서 머리를 머리라고 불렀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수리' 외에는 사료에 머리를 뜻하는 음차자 사례가 없는데요.. 또 마립간을 말씀하셨는데 삼국사기에서 신라계 고려인 김부식은 마립간의 마립은 말뚝을 뜻한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거가 어라가라든지 거의 이병도시절 얘기들만 하고 계시네요. 논문 검색하면 무료로도 얼마든지 나오니까 몇편이라도 읽고 오세요.. 접미사에 지가 들어가서 같은말이면 몽골도 전문직업인에 저부 '치'를 붙이는데 같은말인가요? 장사치 벼슬아치 이치 저치..
삼국을 구성한 지배층 민족이 다르고 한반도 남부와 북부는 고려 이전까지 한번도 통합상태를 가져본적이 없는데 뭔 사투리 운운하고 계십니까.. 그냥 님의 희망사항일 뿐이지
"고대 한국의 발음"이 궁금하다고 질문하신건데 답변들은 뜬금없이 "문자"에 대해
내가 이런걸 이만큼 알고 있다로 귀결되는것 같내요....
질문자님은 "발음"이라고 하셨으니
정확한 답변은 "절대 알 수 없다"입니다.
언어의 "음가"는 여러 환경적 요소로 끊임없이 변합니다.
현대 언어도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는 요소를 찾을수 있는것도 있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 알수 없는 것들이 태반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 사용되고 발음되는 "오빠"라는 단어는 ‘오랍아’에 어원을 둔 말로 ‘오라비’를 부르는 말입니다
‘오랍’은 남자 동기간을 뜻하는 옛말입니다. ‘오랍아>옵아>옵바>오빠’로 변천했다고 보고있습니다.
오랍아>옵아>옵바>오빠...............왜 "음가=발음"가 변한 걸까요? 우리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심지어 옵아에서 오빠로 변한건 불과 수십년 전 입니다.
국어표기법 5항에 "이유없이 된소리나는것은 된소리로 적는다"라는 조항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현대국어 마져도 추측만할 뿐이지 "왜" 변하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대 한국의 발음"이 궁금하시다고 하셨지요.
추측만 가능할 뿐,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ㅈ"의 음가를 고구려 사람들이 현대의 우리처럼 "ㅈ"음가 그대로 발음했을지도
우리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녹음한것이 있다면 모를까....
"고대 언어를 복원했다"라는 의미는 "문자=Text"를 복원했다. 즉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꾸 착오를 일으키는 이유가 문자와 소리(말)를 자꾸 동일시해서 그런것 같내요.
물론 문자와 언어는 아주 밀접하게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입니다.
단, 이 글의 질문자께서 질문하신 내용이 "발음"에 관한것이므로
발음만 독립적으로 "고대 한국의 발음"을 알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어떤 소리에 가까울것이다" 정도의 추측만 가능할 뿐입니다.
맞습니다. 제주도는 지리적 특성상 고립되어 언어변화 요소가 내륙보다 적은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변화를 겪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내려온 오라방이 원래 태생부터 오라방이였는지 아닌지 알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글 이전에 우리는 오랜동안 한자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한자의 표의문자여서 더더욱 우리말로 어떤 소리를 냈는지 알길이 없습니다.
그 이유를 한글과 비교해서 설명하자면
아시다시피 현재까지 진정한 의미에서 사용되어지는 언어중에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창제자가 누구인지
또 가장 중요한 "어떻게 발음 하는지"를 설명하는 언어가 한글입니다.
혀의 상하 전후 비음과, 성대음, 입술 모양등을 설명하여
자음과 모음을 설명한 해례본이 존재합니다.
즉, 예를 들어 몇 천년 후에 한국어가 사라지고
훈민정음과 해례본만 남았더라도 후세의 사람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거의 정확하게 소리낼수 있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 이전 시대, 즉 한자를 사용하던 시대의 기록인
한자들은 우리 조상이 어떻게 발음했는지 알수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나마 한글창제 이후에 쓰여진 한자와 한글을 비교하여
한글로 주석을 달았거나 토시를 달아논 기록으로 창제 이전시대의
한자 발음을 추정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단, 몇백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어떻게 발음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다시 설명하자면 훈민정음 창제 이후
어떤 책에 "義"라고 쓴 한자옆에 "의"라고 한글이 쓰여 있다면
그 시대 우리 조상은 "義"를 "의"라고 발음했다는것을 한글덕에 정확히 알수 있지만
훈민정음 이전 500년전에 "義"라 써진 한자를 그때도 "의"라고 발음했을꺼라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물론 이건 극단적인 예이긴 하나
말씀드렸듯이 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하는
생물같은 것입니다.
"아래아"의 경우에서도 보듯이 이제 우리는 더이상 아래아 소리를 사용하지도
구분 할 수도 없습니다. 사라진지 불과 얼마되지 않은 우리 말소리입니다.
제주도에 그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데 연세 많으신 어른들은
아래아 소리를 구분가능하다는 얘기를 하는 분도 계시더군요.
결론은 텍스트 기록인 한자만으로는 정확한 언어의 소리값을 알 수 없고
구어로 남아있는 말소리 자료역시 현대의 발음이 그 시대의 발음과
동일한지 역시 알길이 없는겁니다.
고로 질문자님이 말하신 "고대 우리나라 말의 정확한 발음"을 알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려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의견입니다.
의견들이 많이 분분해서 어느게 진실이라 말하기 어렵죠.. 제가 개인적으로 그럴듯하다 여기는 주장은
만주어와가장 유사했을거란 주장입니다. 물론 기원을 따지면 중앙아시아 알타이까지 거슬러가지만
그건 너무 파는거구, 현 만주어가 우리어원의 가장가까운 조상격이라 생각되네요.
일단 어순,문법이 사실상 같죠,, 이런 언어구조땜에 만주가 오랫동안 중국과 동화되지 않았던
거라 봐도 됩니다. 청이들어 자체동화를 하면서 달라지지만요
만주어는 지금 거의 사라져가는 지경인데.. 이들이 고구려어와 가장 유사했을건 부인할수
없겠죠 백제는 그 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왔구 당시 가장 약체 신라도 기원은 서북방
출신이라 고구려,백제의영향하에 언어부분도 쉽게 동화되었을거라 봅니다
영향을 받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