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나라가 요나라를 칠수 있었던것은..
첫번째.. 요나라가 최후의 전력을 다한 전투는 바로 고려와의 전쟁이었고..
그로 인해서 요나라가 패하면서 패잔병들만 남은것을 알고..
금나라는 북송과 연합해서 요나라를 점령한거죠..
그 후 금나라가 북송까지 점령하고요..
실질적으로 요나라에게서 금나라를 지켜준것도 고려이고요..
서희의 담판으로 고구려 옛땅을 회복하고..
그 고구려 옛땅에서 신라출신 고려인이 가서 여진을 귀합하면서 나라를 세운게 금나라이고.
여진이 세력을 확장하니까 요나라가 정벌하지 않고 고려가 정벌한 이유도 바로 고려의 세력권 안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요나라와 고려가 마지막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요나라는 패했고..
고려와 요나라는 전후 복구시간이 필요한 시기였고..
특히나 요나라는 패잔병들만 남은 상황에서 북송과 금이 연합해서 친것이죠..
한마디로 어부지리..
다소의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지는 몰라도... 고려-요나라 전쟁 후유증이
100년이나 지난 요-금 전쟁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요-금 전쟁이 벌어지던 시점의 전력차도 전쟁에 동원된 금나라군은 2만병력 규모였던 것에
반해.....요나라군 규모은 기록상의 70만이라는 것은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요나라 인구규모에 비추어 명목상 동원가능한 총 장정규모는 되었다고 하더군요)
최소한 금나라에 비해서는 10배 이상 동원이 가능했을 정도로
외형적 측면으로만 보면 넘사벽의 차이였습니다.
다만 거란족이 주축인 요나라 내부의 숙여진인-발해인-중국한인 등 여러 민족들에 대한
통제력이 요-금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약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금나라가 요나라를 멸망시킬때 북송의 전력은 거의 보탬이 되지 못했습니다.
요나라 주력이 이미 금나라에 와해된 시점이 지나고서야
연운 16주 일대를(요나라에게 빼앗긴 옛 땅) 탈환하기 위해서 20만 대군을 동원했지만....
북송군 규모에 비하면 겨우 1/10 규모에 불과한 요나라군을 제압하지 못하고 고전하다가
금나라에 SOS를 청해서... 결국 연운16주도 금나라군이 점령했습니다.
오히려 북송군의 취약성만 속속들이 노출되는 바람에... 금나라가 북송까지 도모할 욕심을
내게 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