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blog.naver.com/puretrue7/80212936610
서양인들은 석가모니를 단군조선 사람이라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의 산스크리스트어 사전에 기록하고 있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기록 하였을까?
우리는 단군은 신화라 매식자들이 지랄하여 복원이 지연되고 있는데 석가모니가 단군조선 사람이라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http://www.kjdaily.com/read.php3?aid=1502186548415285147
스라랑카를 지배하고 있는 ‘싱할리족’은 놀라운 역사를 말하고 있다. 자신들이 석가모니의 혈통을 이어받은 종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석가모니 선조에 대한 역사(족보)를 아직껏 유품(치아, 머리카락 등)과 함께 보관해 오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가모니 선조들에 관한 기록인 ‘1만년의 역사’ 책자다. 사찰에 보관돼 있고, 워낙 귀중한 책이어서 일반인은 쉽게 접근하거나 볼 수가 없다고 한다. 사실 확인조차도 곤란해 뭐라 말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은 학교에서 정식으로 ‘부처님의 1만년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팔리’ 문자로 쓰인 두꺼운 역사서다. 팔리어 문자는 우리 한글과 아주 비슷하다. 일설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팔리어를 본따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환단고기’의 ‘구주신가’의 가림토문 비석이나 ‘이세신궁’의 가림토문 청동거울은 스리랑카 패엽경사 발위글(팔리문자)과 흡사해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석가모니의 선조들 고향(시원지)이 동방의 나라 ‘한반도’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때문에 석가모니가 한국인의 혈통을 이어받았고, 싱할리족인 자신들도 한국인과 같은 혈통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즉, 부처는 한민족 출신의 뛰어난 ‘현자’이며, 그가 한국인의 후예라는 사실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 역사서에 의하면, 조선(고조선)은 물론이오, ‘주신’(主神)까지 상세히 기록돼 있고, 만주벌판은 물론이거니와 한민족의 영역이 완벽하게 기술돼 있다는 놀라운 점이다.
http://nc.asiae.co.kr/view.htm?idxno=2018011103440047830
‘산해경(山海經)’에 따르면 ‘조선천독(朝鮮天毒)’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진(晋, 265-420년) 대의 학자 곽박(郭璞)이 주(註)를 달은 바에 따르면 ‘천독(天毒)’은 바로 천축국(天竺國)이며 ‘조선천독(朝鮮天毒)’에서 부도[浮屠, 불타(佛陀)]를 배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조선(朝鮮)’이란 나라가 있었는데 바로 ‘천축국(天竺國)’이라는 의미이며 부도(浮屠)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뜻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조선천독(朝鮮天毒)’ 출신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070
<금강산 유점사 사적기>라는 문헌에는 한반도 최초의 불교 사찰이 신라 남해왕 원년(AD 4년)에 창건된 것으로 등장한다.교과서에 나오는 고구려 소수림 왕 2년(372년) 전래설보다 370년 빠르고, 불교가 처음 중국으로 전래된 것보다 63년 빠르다.허황옥이 가락국에 온 시기를 추정해 보면 대략 1세기경이니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흥미로운 것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온 허황옥은 배에 석탑을 싣고 오는데, 이 탑이 불탑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이다.
-중략-
“동해의 안쪽, 북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는데 이름하여 조선·천독(天毒)이라고 한다(東海之內, 北海之隅, 有國名曰朝鮮天毒).”학자들은 천독이라는 국명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천독은 천축(天竺)이라 불렸던 Sindu, 그러니까 인도 지역을 의미했기 때문이다.그것은 풍수지리의 대가로 사기(史記) 지리지를 주해했던 곽박(郭璞)의 해석이기도 해서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도대체 고조선 옆에 인도를 뜻하는 ‘천독’이 함께 있었다는 점은 수수께끼였으나 달리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적극적인 해석이 보류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