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개인적 생각은 다릅니다. 역사학자 자의적 해석이며, 음운학적으로 " 타밀" <-> " 다물" 음차 과정에서 상호 변형 가능 사레로 선조들의 땅의 상징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려의 "다물" 정신이 있는것처럼, 인도 타밀 문화에도 상암 문화, 정신 있습니다.
인도의 대표적 상암문화는 "시가" 존재 하며, 한국의 향가 , 일본의 만엽집과 유사한 형태를 가집니다.
고 강길운 교수님의 경우, 한국의 고대향가 완전한 해석을 위하여 인도 타밀어를 적용하여 관련 저서를 내놓은 사실 있으며 " 향가 신해독 연구 " , 인도 타밀인들은 한국인을 가르켜 고대 타밀어에 능통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대표적 예시로 봄, 여름, 가을, 겨울 , 돌 (stone) 등은 고대 타밀어 음운학적 발음과 뜻이 동일하며 존재했으나, 현대 타밀어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 입니다.
본인이 이렇게 생각하게 된 배경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고대 한자 사용에 있어서, 외래어의 경우 음운을 차용 하며 일반적 입니다.
고대 한국인은, 중국인과 말이 달랐습니다. 한자를 빌려서 그당시, 한국어를 기록한것입니다.
첫째, 한국과 인도 타밀의 전통민속 놀이,음식문화,언어 동일, 유사하다.
부연하여, 일본 불교에서 사카족의 패망원인을 다룬 내용이 있었는데.
사카족을 패망? 시킨 인물이 유리왕(인도,사카족 노예 혼혈) 이라고 거론되더군요.
이상하리 만큼 고구려 유리왕과 이름이 동일하여 고개를 갸웃거린적 있었고, 국내 불교인이 올린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불교영상에 한글 자막을 입힌경우였는데, 지금은 삭제되었네요.
둘째, 기원을 알수 없는 세게에서 가장 많은 부를 소유한 인도 사원의 비밀금고 문양 (고구려,발해의 조우관, 가야 ? 문양)
둘째, 2019-20년 인도 고고학 역사에서 가장 큰업적이라고 거론 하는 proto-tamil brahmi script 문자의 발견입니다. BC 인더스 문명을 타밀(상암 문명)이 계승했다는 직접적 증거로 방송예시 5개를 제시하였고, 그중 3개가 아라 가야 도보호와 일치 하였습니다. 인도역사계 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계에서 가장 큰이슈였는데 이상하리 만큼 한국은 조용합니다.
개인 사견은 고조선은 인더스 문명과 인도 타밀 문화와 깊은 관련성 있습니다.
-. 기원전 2500년 ( indus - Harappan script)
-. 기원전 580년 ( proto-tamil-Brahmi)
; 고고학적 발굴성과 - 문자가 새겨진 토기의 탄소 측정 최소 추정 연대
: 인도 뉴스 예시 5개 문자 ( 아라가야 도부호 3개와 명백히 일치)
-. 기원전 300년 tamil-Brahmi
부연하여, 인도의 고대 무기를 살펴보니
한국의 비파형 동검과 동일한 형태, 시대적 변형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그 이후는, 무기의 모양이 다릅니다.
<가야사> 인도 타밀 역사학자 상당수 한국의 가야사에 등장하는 구지봉 명칭을 듣고, 인도 타밀라두 남단에 위 치한 Kurnji moutain (쿠룬지 마운틴)을 떠올리고, 한반도로 옮겨갔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갖습니다.
인도 타밀인들 한자음차 과정에서 변형되었다고 보는것입니다.
한국 역사가 가야사 정리 당시, 구지봉을 매우 큰산으로 알고 찿아다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야의 건국신화로 보기에는 산의 규모가 작습니다. ( 역사가 임시적으로 추정한것이라 판단합니다.)
인도 kurinjim mountain은 인도 남부 매우 커다란 산입니다. "쿠린지" <-> " 구지"
<가야사> 가야 건국신화를 묘사한 최치원의 " 석리정전"을 보면
한자 음운을 차용했을뿐, 인도 타밀어를 적용하면, 인도의 시바신과 그의 아내 아들을 묘사합니다.
한국과 인도와의 고대사의 접점이 없지 않고는 민속놀이,음식문화, 언어 동일 유사할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가야사 허황옥 왕비가 시집왔다고.. 조선족,북한,남한 모두가 인도와 전통 민속놀이가 이렇게나 동일하기 힘든 경우입니다./ 개인적으로, 인도 타밀의 bc 1000년 추정 고대 유적지 _ 항아리 매장 유골 분석 결과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유골 분석결과 비중만 보면, BC 1000년 추정, 인도 타밀 초기의 민족은 다민족으로 코카소서이드인 35% (스페인, 프랑스 바스크인 추정) , 몽골인 30% 중심이였습니다.
님의 의견대로, 몽골어에 기반했을수도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인도 타밀 초기 역사의 중심은 코카소서이드인과, 몽골인 이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몽골인은 " 남몽골인"을 말합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몽골인을 말하는것 아닙니다.
단지, 인도 "타밀" 동일 연장선에서 " 다물"을 생각해 봤습니다.
인도 " 타밀 " = 몽골 " 타무르" = 고구려 " 다물 " 한자 차용.. 동일 개념일수도 ??
타밀역사초기에는 현재 인도 남부 짙은 갈색피부의 타밀인의 비중은 불과 8% 미만 이였습니다. / 현재 인도 남부 타밀인과는 민족 구성 자체가 다른경우 이지요.
인도 타밀 문화의 독특한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피부색깔, 인종을 우선하는것이 아니라, 동일 언어, 풍습, 문화를 중시 합니다. 인도 타밀의 문화를 상암문화라고 하는데,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맥락이 유사, 동일 하다는 느낌 가진적 있습니다. 인도 타밀 문화의 특징에 대해서 전문 서적 참고 하세요!
대다수 한국인 역사학자, 국민들이 인도 타밀 초기역사를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오판하기 때문에,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 답을 구하지 못하는것으로 추정하며, 악의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자 하는 이들도 존재 해 보입니다.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을 통한 한반도 침략 합리화 목적으로 중국인들 추정하며.. 주된원인은 한국과 인도와의 고대 역사적 접점이 밝혀지면 역사 왜곡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부여옥갑에서 켈트족 문자가 나오는 배경을 설명할수 있는 내용입니다. 부여 패망후 훈족이 있는 서쪽으로 갔다는 중국 사서 기록 내용 있다고 전해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들이 현재 스페인,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바스크인으로 추정하며, 그들을 상징하는 문장은 졸본부여의 문장과 유사하며 , 그들의 선조 고인돌 유적지에서 발견된 삼족오 유물은 시사점이 많습니다. ( 바스크 민족들의 거주지 방문했던 다수 한국인의 댓글을 보면 .. 한국과 유사한 풍습과, 어휘, 익숙한 느낌을 가진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o1TC_3nCRI
--. Sathyamurthy 박사는 Adichanallur에서 발견된 유골이 혼합된 인종 기원이라고 말한다. " “다양한 유형의 민족들이 그곳에 살았습니다...... " 문제는 사람들이 드라비다인이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 약 40년 후 Raghavan 박사는 Sathyamurthy 박사의 발견에 대한 자신의 보고서를 첨부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인종 표현은 14% 흑인, 5% 오스트랄로이드, 30% 몽골로이드, 35% 코카소이드, 8% 드라비다인 인종 및 나머지 혼합 특성 인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According to his study, the racial representations constituted - 14% Negroids, 5% Australoids, 30% Mongoloids, 35% Caucasoid, 8% ethnic Dravidian and the remaining of mixed trait popu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