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태 -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 출처
나는 정자라는 물건이 신기하다. 여름에 앉아 있으면 햇빛을 가리는데 다 가리는 것도 아니고 일부만 가린다. 처마와 난간 사이가 너무 좁으면 공기의 흐름이 빨라져 센 바람이 들어올 것이고 사이가 너무 넓으면 공기가 흐르지 않아 바람이 없을 텐데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바람이 불어온다. 요란하지도 않고 무디지도 않은 버선 끝 모양의 처마가 예뻐 보인다. 중국의 자금성도 좋고 일본의 오사카 성도 좋지만 역시 나에게는 한국의 건물이 제일 멋있다.
돌아다니며 만나는 붉고 푸른 들과 얕고 높은 산들의 풍경이 좋다. 화보에서 보는 파미르 고원도 멋있고 몽골의 초원도 멋있고 미국의 그랜드캐니언도 장관이지만 아무래도 가슴에 박히기는 한국의 산과 들이다. 보고있노라면 또 슬퍼진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이것저것 찾아서 하루나 이틀 돌고 나면 배불리 먹은 듯 등이 따뜻하고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깨닫는다. 죽으나 사나 나는 이 땅에 살거라고, 지지고 볶아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고 편하다고, 나는 아마도 우리나라를 많이 사랑한다고,
나는 고대의 우리나라가 컸어도 작았어도 상관없다. 역사가 오래 되었어도 오래 안되었어도 상관없다. 나는 우리나라가 그냥 좋고 그 어느 쪽이든 앞으로도 그냥 좋아할 것이다. 나아가 이는 지구상의 어떤 나라의 대중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도시국가였다. 그런데 그 손바닥만한 국가로 고도의 문화를 꽃피우며 번영을 누렸다. 그런 아테네의 국민이 이웃 페르시아의 대제국을 부러워하며 자기 나라가 작다고 싫어했을까? 오늘날의 미국은 그 역사가 300년도 안된다. 그 나라의 시작은 전유럽의 가장 후진 지역이자 온갖 유랑민과 이민자와 도망자와 범죄자들의 혼합이었다고 한다. 프랑스도 영국도 처음엔 미국이 나라라는 이름으로 성립하리라 믿지 않았단다. 그들은 명백히 영국 귀족과 국왕의 식민지 백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미국민 중 자기 나라의 역사가 짧고 그 시작이 초라했음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