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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7-13 22:33
[한국사] 낙랑군 25현 지도
 글쓴이 : 꼬마러브
조회 :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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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워서 퍼왔습니다.


자세히 볼려면

( https://www.google.com/maps/d/viewer?mid=1aGuYbjmBtpcunmt6vM-eYLAgaz0&ll=41.57962822119736%2C120.75657000000001&z=11 )


- 누르면 설명 나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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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7-07-13 22:36
   
호랭이해 17-07-13 23:11
   
유리 이사금

17년 가을 9월 화려(華麗)·불내(不耐)2현(縣) 사람들이 함께 모의해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했다. 맥국(貊國)의 우두머리[거수(渠帥)]가 군사들로 하여금 곡하(曲河) 서쪽을 막아 물리치게 했다. 왕이 기뻐하여 맥국과 우호를 맺었다.

신라 기록과 상이하네요
     
꼬마러브 17-07-13 23:13
   
사실 저도,, 지도에서 수성현의 위치를 포함해 의문이 들긴 합니다만..

삼국사기에서 신라와 백제를 공격했다는 낙랑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니라
이와 별개의.. [낙랑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호랭이해 17-07-13 23:27
   
낙랑이 아닌 현으로 적혀 있어서요
이걸 낙랑국으로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네요
               
꼬마러브 17-07-14 00:15
   
만약 저 기록의 낙랑이 중국의 낙랑군이라면
중국사서와 교차검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중국 사서를 보면 신라를 공격했다는 내용은 커녕 신라와 관련된 기록 자체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진한의 소국 중에 사로국이 있다 정도 뿐이지요.

애초에 당시 중국 입장에서 변방인 신라를 쳐들어갈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 기록은 무엇이냐?

저는 위만조선 멸망 이후 낙랑 세력이 한반도로 지명과 함께 이동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기록에 나오는 화려현과 불내현은 중국의 낙랑군이 아니라 독립국인 낙랑국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중국과 한국의 기록들과 고고학 유물들을 통합하여 보았을 때, 제일 합리적입니다.
                    
호랭이해 17-07-14 01:24
   
후한 건무 6년(A.D 30년)에 변군(邊郡)을 정리하였고 도위(都尉)도 이에 따라 폐지되었다. 그 뒤 현(縣)의 거수(渠帥)를 모두 현후(縣侯)로 삼으니 불내(不耐), 화려(華麗), 옥저(沃沮)등 여러 현(縣)이 모두 후국(侯國,후侯가 봉해진 현縣)이 되었다.

이적(夷狄)들이 다시 서로 공벌(攻伐)하였고, 오직 불내예후(不耐濊侯)만이 지금까지 여전히 侯國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해 공조(功曹) 주부(主簿) 등의 제조(諸曹,여러 관서)를 두어 예민(濊民)들이 모두 그 직을 맡고 있다. 옥저(沃沮) 여러 읍락(邑落)의 거수(渠帥)들이 모두 삼로(三老)라 자칭하니 즉 옛 현국(縣國)의 제도이다.

위 유리 이사금 40년대 이전 30년대의 위서 동이전 기록입니다 신라에 관한 기록은 찾지 못하였지만 불내, 화려현의 기록은 있네요 위치는 고구려 개마대산의 동쪽 그리고 바다에 닿는다고 합니다
                         
꼬마러브 17-07-14 06:17
   
개마대산의 동쪽이라는 구절이 어디 있지요..?

딱히 문제될만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만
                         
호랭이해 17-07-14 11:44
   
東沃沮는 고구려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그 지형은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나 된다. 북쪽은 읍루(挹婁)·부여 (夫餘)와, 남쪽은 예맥(濊貊)과 접하여 있다. 戶數는 5천戶인데, 大君王은 없으며 邑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長帥)가 있다. 그들의 말은 고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부분도 있다.



濊는 남쪽으로는 진한(辰韓)과, 북쪽으로는 고구려(高句麗)·옥저(沃沮)와 접하였고, 동쪽으로는 대해(大海)에 닿았으니, 오늘날 조선 (朝鮮)의 동쪽이 모두 그 지역이다. 戶數는 2만이다.

빼먹었네요
                         
꼬마러브 17-07-14 12:08
   
그러니까 옥저가 낙랑군의 후국이었는데
위서 동이전에 따르면 동옥저의 위치가 개마대산의 동쪽, 즉 한반도 동북부 지역을 가르킨다는 말씀이시지요?

저는 옥저라는 지명이 겹친다고 봅니다.
원래 옥저는 요서지역에 있었으나 위만조선의 멸망으로 한반도로 이동하였던 것이죠.
이는 [동옥저]라는 지명으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호랭이해 17-07-14 13:11
   
옥저가 아니라 동옥저에 실려있는 이야기입니다 위에 기록은 모두 동옥저에 실려있어요 제가 한꺼번에 기록을 가져왔어야 됐는데 따로 따로 가져와버렸네요


東沃沮는 고구려 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는데, 큰 바닷가에 접해 산다. 그 지형은 동북간은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나 된다. 북쪽은 읍루(挹婁)·부여 (夫餘)와, 남쪽은 예맥(濊貊)과 접하여 있다. 戶數는 5천戶인데, 大君王은 없으며 邑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長帥)가 있다. 그들의 말은 고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부분도 있다.

漢나라 초에 燕의 亡命客 衛滿이 朝鮮의 王이 되면서 沃沮의 [邑落들은] 모두 [朝鮮에] 복속케 되었다.

漢 武帝 元封 2년(B.C.109)에 조선을 정벌하여 [위]만의 손자 右渠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四郡을 설치하였는데, 沃沮城으로 玄菟郡을 삼았다. 뒤에 夷·貊의 침략을 받아 郡을 [고]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기니 지금의 이른바 玄菟의 故府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옥저는 다시 樂浪에 속하게 되었다. 한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單單大領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東部都尉를 설치하고 不耐城에 治所를 두어 별도로 領東 7縣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에 옥저의 [邑落도] 모두 현이 되었다.

후한 건무 6년(A.D 30년)에 변군(邊郡)을 정리하였고 도위(都尉)도 이에 따라 폐지되었다. 그 뒤 현(縣)의 거수(渠帥)를 모두 현후(縣侯)로 삼으니 불내(不耐), 화려(華麗), 옥저(沃沮)등 여러 현(縣)이 모두 후국(侯國,후侯가 봉해진 현縣)이 되었다. 

이적(夷狄)들이 다시 서로 공벌(攻伐)하였고, 오직 불내예후(不耐濊侯)만이 지금까지 여전히 侯國으로서의 면모를 유지해 공조(功曹) 주부(主簿) 등의 제조(諸曹,여러 관서)를 두어 예민(濊民)들이 모두 그 직을 맡고 있다. 옥저(沃沮) 여러 읍락(邑落)의 거수(渠帥)들이 모두 삼로(三老)라 자칭하니 즉 옛 현국(縣國)의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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