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에 만주 요하(遼河, 중국명 랴오허) 서부지역에서 신석기시대 유적이 차례로 발굴되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는 내몽고 적봉시(赤峰市)에서 서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오한기 소하서 유적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서기전 7000년까지 올라가는 동북아시아 최초의 신석기시대 유적으로 황하 유역의 앙소문화(仰韶文化)보다는 2500년 이상, 장강 하류의 하모도문화(河姆渡文化)보다는 2000년 이상 앞선다.
소하서문화는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사해문화(渣海文化), 부하문화(富河文化), 조보구문화(趙寶溝文化), 홍산문화(紅山文化)로 이어지는데, 이 일련의 문화를 요하문명(遼河文明)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1) 홍산문화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의 유적으로서 초기국가가 출현하였을 가능성이 높아 주목을 받고 있다.
홍산은 적봉의 동북방에 있는 산의 이름이다. 홍산문화는 내몽고와 요녕성(遼寧省)의 접경지역인 적봉, 조양, 능원, 객좌, 건평 등을 중심으로 유적지들이 분포되어 있다. 홍산문화는 서기전 4500년까지 소급한다. 홍산문화는 청동기시대로 가면서 적봉 일대의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 서기전 2500-1500년), 하가점상층문화(夏家店上層文化, 서기전 1500-700년)로 이어진다.
2) 홍산문화 만기(晩期, 서기전 3500-3000년)에 해당하는 우하량(牛河梁) 유적은 능원과 건평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서기전 3,500년까지 올라가는 거대한 제단(祭壇), 여신묘(女神廟), 적석총(積石塚)이 발굴되었다.
이 시기에 이미 사회계급이 분화되고 사회적 분업이 이루어져 초기국가단계 또는 초기문명단계에 진입하였음을 보여준다. 중국 최초의 국가라는 하(夏)나라가 설립되기 전에 이미 초기국가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이는 대규모 유적이 발견된 것이다. 여기서 발굴된 옥기 중에는 곰 형상의 웅룡(熊龍)과 돼지 형상의 저룡(猪龍) 등이 있다.
또한 재단터에서는 희생(犧牲)으로 사용된 곰의 아래턱뼈가 발굴되었다. 이를 근거로 학자들은 홍산문화를 주도한 세력이 곰을 토템으로 하는 종족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적석총은 고구려, 백제, 일본으로 이어지는 북방계통의 묘제이다.
홍산과 한반도 중도 적석총의 유사
중도의 적석총
하가점하층문화(초기 청동기문화, 중국최고)는 노합하(老哈河) 유역과 대릉하(大凌河) 유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하가점하층문화는 상한이 서기전 2500년이고 하한이 서기전 1500년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시기에 청동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중원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인 이리두(二里頭, 중국명 얼리터우)문화는 상한이 서기전 2100년이고 하한이 서기전 1500년이다. 이를 근거로 중원지역에서는 서기전 21세기에 하나라가 건국되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원지역보다 더 이른 시기에 지금의 요서지역에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이 시기의 유적에서는 청동제품뿐만 아니라 금이나 납제품도 발견되고 있다. 청동제품을 주조할 수 있는 토제용범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1킬로그램에 달하는 청동과(靑銅戈)도 제조한 것으로 보아 당시 청동제품 주조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취락은 대개 하천 부근 평지에 위치하지만 구릉 위에도 밀집 분포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의존하여 방어를 위한 유기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락은 담장을 두르고 그 밖에는 호구를 설치하였다. 담장은 보통 돌과 흙을 혼용한 구조이다. 취락 가운데는 석성 유적도 발견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커다란 돌로 담장을 쌓아 매우 강력한 방어기능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기후는 지금에 비해 온난하고 다습하였으며, 이러한 기후조건에서 적응력이 비교적 강한 조를 심고 가축을 기르면서 농사와 목축을 병행하는 생활을 영위하였다.
상나라의 갑골문자
한반도에서 발견된 복골(해남 군곡리)
3) 홍산유적에서는 상나라에서 사용한, 그 복골(卜骨)양식이 널리 발견된다. 복골은 골복(骨卜)의 흔적이다. 골복은 뼈에 열을 가해서 그 위에 나타난 균열의 무늬를 근거로 길흉을 점치는 것이다. 거북의 껍질이나 짐승의 뼈로 점을 치는 습속은 만주, 한반도, 일본에서 널리 행해졌다. 반면에 중원지역에서는 시초(蓍草)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점서법(占筮法)이 시행되었다.
중원의 점서법
하가점하층문화가 지속된 시기는 중국의 하나라가 일어나기 전부터 하나라와 상나라의 교체 시기까지에 이른다. 유적과 유물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본 결과 이 지역에서는 하나라에 필적할 만한 고대국가가 성립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성립한 고대국가는 어떤 나라일까?4) 중국에서는 하가점하층문화가 발견됨에 따라 상나라의 기원을, 홍산지역에서 찾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다. 상나라를 세운 세력의 문화가 이 지역과 유사할 뿐만 아니라 인종 또한 동일한 근원을 갖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상나라의 시조 설(契)의 어머니는 유융(有娀)씨의 딸인데, 제비가 떨어뜨린 알을 먹고 임신해서 설을 낳았다고 전해진다.
난생설화는 동북지역과 한반도에 많이 있다.
상나라의 청동기 수준은 하나라의 그것과 차이가 많다. 타이완 출신의 재일역사학자 진순신(陳舜臣)은 이를 극도로 뛰어난 청동기가 갑자기 나타난 느낌이 든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청동기 기술이 외부에서 유입되었음을 시사한다. 자생적인 기술이라면 유치한 단계로부터 점차적으로 개량되는 단계를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중국의 청동기는 최고의 것이 상나라 때 갑자기 출현한 것이다. 상나라의 청동기제품에 제기(祭器)와 주기(酒器)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아 상나라 사람들은 제사와 술을 좋아한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에 새겨진 동물무늬는 풍부하고 다채롭다. 이것은
5) 상나라가 목축이나 수렵사회에서 온 외래 정복왕조(홍산에 기반을 두었던) 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상나라가 도읍지를 자주 옮긴 것도 유목사회에서 유래하였음을 보여준다. 상나라에서는 거북의 껍질과 짐승의 뼈를 이용하여 점을 치는 골복이 유행하였다. 이것은 만주, 한반도, 일본 등 북방계의 습속이다. 중원지역에서는 시초를 이용한 점서법이 시행되었다.
6) 상나라의 귀족무덤에서 출토된 두개골을 측정한 결과 북아시아 몽고인종과 동아시아 몽고인종이 서로 혼합된 형태임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들은 상나라가 하가점하층문화 유역에서 앞선 청동기문명을 이룩한 세력이 중원지역에 진출하여 세운 나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말해준다.
7) 홍산문화 유역은 상나라를 세운 세력의 근거지였다. 상나라는 북방계가 중원지역을 차지한 최초의 국가였다. 이후 수천 년 동안 중원지역을 둘러싸고 북방계와 남방계의 대립 투쟁이 이어진다. 그러나 상나라가 홍산문화 유역에서 발생한 최초의 고대국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상나라는 서기전 1600년경에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는데, 홍산문화 유역에서는 서기전 2500년 이전에 이미 고대국가가 성립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홍산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한 최초의 국가는 상나라보다 훨씬 먼저 성립하였다. 그리고 서기전 1600년경 권력에서 밀려난 일부 세력이 중원지역으로 들어가서 상나라를 세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나라 이전에 홍산문화 유역에 존재했던 고대국가는 어떤 국가일까?
하가점하층문화가 분포된 지역은 노합하 유역과 대릉하 유역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오늘날 요서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삼국유사 三國遺事>에 따르면 기자(그 사실의 신빙성과 상관없이)가 조선으로 와서 기자조선을 세우자 그곳에 있던 단군조선은 도읍지를 백악산 아사달에서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한다. 즉, 기자조선이 성립한 지역에 이미 단군조선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8) 북한학자 리지린은 동호(東湖)라고도 불렸던 북방계통의 예맥족(濊貊族)이 남하하여 요녕성 일대에 조선(단군조선)이라는 국가를 건설했다고 주장해서, 홍산문명과 고조선과 그리고 상나라 와의 관계성을 언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