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신라 경덕왕때 지명들을 한자 2자의 중국식으로 개명한 것을 말하는 것 같네요.
후기신라 경덕왕시기에 신라의 전제왕권이 귀족세력의 부상으로 흔들리고 있던 때입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경덕왕은 왕권의 재부상을 위해 행정체계와 관제정비에 대대적인 개혁을 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전국의 행정체계 즉 지명들을 전부 중국식(한화 漢化)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말 -> 한자어) 지금의 지명들도 대부분 이 때 바뀌어 아직까지 사용되는 곳이 많죠 (예 : 길동군 -> 영동군, 사벌주 -> 상주 , 고타야군 -> 고창군 , 답달비군 -> 화령군 , 달구화 -> 대구 , 텰둥글 -> 철원 , 곰나루 -> 공주 , 누스키 -> 유성 등등.. 많음.. 아마 지금 대부분의 지명들이 이 때 바뀐 것임) 즉 지명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어버려 우리도 이제 중국과 같은 나라다! 라는 것은 천명한 것이죠. 과거와 같이 왕과 귀족들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왕 혼자 다스리는 전제왕권을 성립하고자 했던 겁니다. 뭐.. 지리지에 원 지명과 한화(漢化)지명을 나란히 적음으로서, 원래 땅이름의 음과 뜻을 추정하고 복원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었으나, 순우리말이 크게 힘을 잃었던 첫번쨰 사건입죠
이렇게 후기신라 경덕왕때 모든 지명들을 중국식의 한자명으로 전부 바꿔 버린 것이 첫번째 사건이고 두번째 사건은 일제 때 전국에 있는 지명 (신라 때 바꾼 것이 큰 행정단위 였다면 이번에는 작은 행정단위까지 전부 다) 한자어로 바꿨습니다. 현재 대도시 지명 중 ‘서울’만이 유일한 순우리말 지명으로 남아 있죠
제 얕은 상식으로는... 신라시대 이두문자로, 일본과 다르게 뜻과 음을 구분해서 한자를 적었고...
한글이 발명되기 전에는, 감각에 따라 한자를 음독, 훈독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일본처럼요.ㅎ
오늘날 각 지명이랑, 이름이 중국식 3,2 자로 변한건 조선시대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山을 뫼라고 읽었다기보다는 뫼를 山으로 표기했다고 봐야겠죠.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중국에서 온 외교 문서 같은 것을 읽을 때 차이가 납니다.
전 당나라 문서에 적힌 山은 '산'이라 읽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보는 글에는 이두식으로 적어서 山을 뫼라고 읽었겠지만요.
그렇지 않고서는 당나라 때의 중국 한자음이 거의 그대로 우리나라 한자음으로 고착된 것을 설명하기 어렵죠.
잘은 모르지만 한자를 음독하라고 강제한 왕은 없었을 겁니다.
한자를 공부할때 자형, 자음, 자의 를 기본적으로 공부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외우지만 중국에서는 이렇게 공부합니다. 자음(字音)에 관한 사항인데 중국의 자음서인 광운(廣韻)이나 강희자전(康熙字典)에는 반절법(反切法)이라는 음표기법이 있는데 거기에 따른면 됩니다. 광운과 강희자전의 음표기법이 지금 우리가 발음하는 한자의 음과 거의 같습니다. 현재의 중국음표기와는 많이 차이가 나더군요 수,당시대의 중국한자의 음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우리 한자의 음표기와 거의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