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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9 16:28
[한국사] 한국사 가장 바보 짓 예송논쟁과 경신대기근
 글쓴이 : history2
조회 : 4,165  

사실 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바보같은 일로 보이는 것이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는냐로 싸웠던 예송논쟁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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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이해없이 단순하게 이 싸움을 볼 때 가지는 생각은, 도대체 '왜 이런 것으로 싸우나'. 하는 것이다. 특히 일제 사학자들이 조선을 폄훼할 때 유용하게 사용한 사소한 그러나 심각한 국론분열의 대표적인 예로 예송논쟁을 들기 때문이다.

 

예송논쟁은 단지 상복을 얼마 입는지 마는지에 관한 사소한 일인데, 조선인들은 예전부터 형식적인 것에 목숨을 걸었던 의미없는 짓으로, 싸움이나 해 대는 민족으로 평가 절하하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적인 모습대로라면, 이런 논쟁이 벌어지면 상대 측 진영에 처들어가서 싸그리 다 죽여버리고 장렬하게 할복하면 그만이니 일본인들 에게 이러한 말싸움이 이해 안가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피상적인 이해에 불과할 뿐, 이 예송논쟁에는 유교와 종법, 예법, 복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에 내리는 해석이다.


물론 이 입장은 사대부 측의 의견이다...일반 백성에게는 경신대기근이 제일 큰 문제였고, 어쩌면 사대부들도 그렇게 느꼈을 지 모른다.    



예송논쟁은 양란과 당쟁으로 인한 사회 질서 붕괴와 지배층과 피지배층 사이의 혼란이 가중되어가는 시대를 맞아 유학자들이 조선 질서 회복을 위해 종법과 예법을 더욱 강하게 매듭지으려는 가운데, 성리학 사회의 견해가 엇갈린 사건으로, 양란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다. 게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임금의 정통성, 아니 왕실과 국가의 관계에 관한 논쟁의 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즉 누구의 의견을 따르느냐에 따라 지금의 임금이 정통성이 있는 임금인지(남인), 가짜 임금인지까지 갈 수 있는 것(서인). 이는 왕조 자체를 뿌리채 흔들 수 있는 것이다.

 

또 누구의 편을 보느냐에 따라 왕실이 국가의 법을 따라야 하는지(서인), 왕실이 법위에 있는지(남인)까지 갈수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의 예송논쟁이 사소한 것 같아도, 서양에서는 이런 것 보다 훨씬 더 사소한 교리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교회가 쪼개져 나가는 상황이 비일비재 했다.

 

예송논쟁을 짧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6742, 현종의 어머니 인선왕후가 사망하자 정국이 혼란스러워 졌다. 왕후의 시어머니인 자의대비(인조의 두번째 부인)가 며느리 상()을 당해 상복을 몇 개월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이 자의대비 에게서 시작이 된다. 그녀가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지나친 건지...)

 

오늘날 상복이 정치 현안으로 된다면 웃을 일이지만 당시 예()는 헌법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조는 1년으로 정했지만, 정승들의 반대로 9개월로 줄었다.

 

인선왕후의 아들인 현종은 의아해 했다. "왜 이리 금방 바뀌는가." 임금의 관심은 정국에 파란을 일으켰다. 역사는 이를 2차 예송논쟁((禮訟論爭)이라 부른다. 현종은 1년으로 정리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논쟁은 15년 전 1차 예송 논쟁이 벌어진 효종 사망 때로 달려갔다.

 

당시에도 효종의 계모인 자의대비의 상복이 문제가 됐다.

효종이 왕이지만 소현세자의 동생이라는 게 문제였다. ''을 강조하면 3, '동생'을 강조하면 1년 상복을 입어야 했다. 당대 최고 성리학자였던 서인(西人) 이조판서 송시열은 1년을 건의했다. 그러나 남인(南人)3년을 요구했다.

 

이때 막 즉위한 현종은 1년을 따랐지만 그 과정에서 송시열이 체이부정(體而不正)이라 한 말이 불씨로 남았다. '효종이 몸()은 아버지를 이었으나 적장자()는 아니다'라고 한 것을 남인들은 '효종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역적의 발언'으로 몰았다.

 

남인 윤선도는 상소까지 올렸다. 이를 '서인 타도' 음모로 본 서인은 윤선도를 죽이려 들었다. 현종이 집권 서인의 편을 들어 남인은 패했고 윤선도는 귀양갔다.

 

2차 예송논쟁에는 남인의 이런 시퍼런 원한이 깔려 있었다. 남인은 죽을 힘을 다해 과거를 파냈다. 현종도 "당시에는 자신이 나이가 어려 분위기 파악을 못해서 내린 잘못된 결정이었다고"남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서인들은 줄줄이 귀양갔고 남인 정권이 들어섰다.

파장은 계속돼 정쟁은 꼬리를 물었고 뒤를 이은, 숙종 시대의 정치권은 보복의 피로 점철됐다.(남인은 장희빈지지, 서인은 인현왕후 지지 그 이후에는 장희빈과 남인의 동반몰락 후,서인은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을 지지하는 소론과 영조를 지지하는 노론으로 나뉘고, 노론은 다시 사도세자 문제로 또 시파와 벽파로 나뉘게 된다)

 

소장파 역사학자 이덕일은 "조선 정치가 공생에서 살육으로 치닫게 된 계기가 예송논쟁"이라면서 "수십년 전 일을 파내 사상 논쟁으로 몰고 가는 파행적 정치 행태"라고 개탄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당시 이상기후로 발생한 경신대기근에 시달리던 일반 백성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었다



경신 대기근(庚辛大飢饉)은 조선 현종 재위기간인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에 있었던 대기근이다. 한국 역사상 전대미문의 기아 사태였으며, 임진왜란 때부터 살아온 늙은이들이 ‘전쟁 때도 이것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경신 대기근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조선 8도 전체의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당시 조선 인구의 1200~1400만 명중 30~40만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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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4-09 17:35
   
[[1674년 2월, 현종의 어머니 인선왕후가 사망하자 정국이 혼란스러워 졌다. 왕후의 시어머니인 자의대비
(인조의 두번째 부인)가 며느리 상(喪)을 당해 상복을 몇 개월 입어야 하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이 자의대비 에게서 시작이 된다. 그녀가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면
지나친 건지...) ]]
.
.
자의대비의 나이가 아들인 효종과 며느리인 인선왕후의 나이보다 몇 살 더 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들인 효종이 승하할 당시의 자의대비의 나이는 겨우 36살, 며느리인 인선왕후가 승하할 당시에는
51세였습니다.




[[경신 대기근의 결과는 파멸적이었다. 조선 8도 전체의 흉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으며,
당시 조선 인구의 1200~1400만 명중 30~40만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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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학계에서 추산하기로는 2년 동안 지속된 경신대기근으로 인해 제명에 못산 인구규모를
최대 100만명까지도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숙종대의 을병대기근 시기에는 제명에 못산 인구규모를 200만에서 최대 400만까지도
보고 있는 것 같더군요~~~
history2 18-04-09 17:53
   
^^ 당시 평균수명을 감안해서요.....경신대기근 중에, 그녀가 던진 파장이 너무 커서요.....뭐 그일이 아니어도 사실 효종의 지위를 놓고 싸움이 일어났겠지만요
포미 18-04-09 18:23
   
예송논쟁의 시작은 인조죠.... 소현세자를 죽이고 봉림대군 효종을 밀다보니 효종, 현종은 평생 정통성 컴플렉스에서 빠져 나오질 못했죠.....

조선의 최악중의 최악의 왕은 인조였다고 생각합니다. 즉위부터 다스리던 때의 병크, 죽으면서 뿌려둔 똥까지.....
6시내고환 18-04-12 22:53
   
진짜 선비들은 예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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