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역사를 보면 운빨이 지지리도 없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개인이나 나라나 운칠기삼인데 하는일마다 꼬이고 재수가 없더니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하고 결국 나라를 빼앗겼네요임진왜란 불운1, 신립이 기병전술을 하는데 비가 와서 탄금대가 진흙창이 됨 -기동력이 떨어져 왜군 조총병에게 학살에 가까운 패배를 당함(반면 가토는 만주의 노토부락을 침공했는데 기병에 의해 개털림)2. 진주성 1차 전투의 영웅 김시민 장군이 전투가 끝나고 시체더미에 겨우 숨만 쉬고 살아있던 왜군에게 저격당해 숨짐진주성 2차 전투 시 유능한 성주가 없어짐3.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조선군을 떠받치고 있던 황진 장군이 전투중간에 성밖을 관찰하다가 시체더미에 겨우 숨만 쉬고 살아있던 왜군에게 저격당해 숨짐. 진주성 2차 전투 패전의 결정적 요인이 됨4. 진주성 2차 전투에서 큰 비가 내려 성벽이 무너짐.진주성 2차 전투 패전의 또하나의 결정적 요인이 됨5. 울산성 1차 전투에서 가토가 목이 말라 전멸직전이었으나 비가 내려 가토를 살려줌병자호란 불운1. 조선 제1 정예병인 이괄의 1만5천 병사(궁병,기병,조총병,항왜)가 반란으로 토벌되어 평안도 방어선이 뻥뚫려버림 -> 조선이 청에 항복하게 되는 직접적 계기가 됨구한말 불운1. 정조의 후사가 너무 늦어 정조 붕어시 순조의 나이 겨우 10살이라 정권이 외척에게 넘어감. 가장 중요한 구한말 시절 60년간 세도정치로 나라가 급속하게 기움2. 정조의 재림이라고 불리던 순조의 세자 효명세자가 4년간 대리 청정하다가 22살에 요절함 -순조는 절망에 빠져 국정을 포기하고 4년뒤인 1834년에 죽음, 세도정치가 본격화 됨효명세자가 죽었을 때 순조가 직접 쓴 제문의 일부아! 하늘에서 너를 빼앗아감이 어찌 그렇게도 빠른가. 우리나라를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내가 장차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허물하며 어디에 의지하고 어디에 호소할까. 말을 하려고 하면 기운이 먼저 맺히고 생각을 하려고 하면 마음이 먼저 막히며 곡(哭)을 하려고 하면 소리가 먼저 목이 메니, 천하(天下)와 고금(古今)에 나의 정경(情景)과 같은 자가 있겠는가. 슬프고 슬프다.네가 태어나면서부터 내 마음에 즐거움은 남의 아비가 되는 데 그칠 뿐만이 아니고 나라의 근본이 튼튼해져 황고(皇考)와 열성(列聖)의 유업(遺業)을 의뢰하여 펼칠 수 있어서였다.또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총명하고 타고난 자질이 일찍 성취가 되었으므로 어찌 나 한 마음의 즐거움이며 한 몸의 경사(慶事)라고 말하겠는가. 자못 천하 국가에서 드물게 있고 드물게 보는 일이었기에 내가 망령(妄靈)되이 근심(謹心)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믿었었는데, 하루아침에 재앙(災殃)을 내려 만사(萬事)가 기왓장처럼 깨어질 줄을 누가 생각이나 하였으랴. 슬프고 슬프다세자의 책임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것인가. 진실인가 거짓인가. 누구를 좇아서 바로잡겠으며, 귀신의 짓인가, 사람의 짓인가. 누가 이를 주장하는가. 슬프고 슬프다.근심스러운 나의 여생은 장차 나라를 운명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지금 나의 슬픔은 너로 인한 슬픔일 뿐만이 아니고 4백 년의 종묘 사직으로 하여금 위태롭기가 하나의 털끝 같지만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슬퍼하는 것이니, 오히려 다시 무슨 말을 하겠는가. 슬프고 슬프다. 아! 애통하도다.순조는 효명세자의 죽음에 가슴깊은 절망을 느꼈으며 국정을 포기한 것 같습니다. 순조 사후 7살짜리 헌종과 나무꾼 철종이 뒤를 잇죠제문을 보면 순조의 애끓는 비통과 절망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이런 불운이면 나라가 망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조선은 극도로 불운했습니다
어느 나라보다도 열심히 국정을 챙기고 국민의 안전과 민복을 챙긴 조선을 하늘은 왜 이토록 미워했을까요?
조선이 못나서 망한게 아니라 어떤 강력한 힘에 의해 운명되어졌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겁니다
그 여파로 우리민족은 악몽같은 일제시대를 겪고 625전쟁으로 3백만영이 죽고 천만 이산가족이 고통받고 남북분단으로 지금껏 고통받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에게. 불의한 고통을 준 일본은 지금도 피해자를 비웃고 있습니다
왜 역사는 이렇게 흘러 흘러가는 걸까요
역사에 정의란 없는것일까요?